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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증보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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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이 망명을 신청했던 당시의 한국은 민주주의가 말살되어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다. 그는 머나먼 이국의 땅 빠리에서 택시운전사로 살아가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똘레랑스의 가치를 전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오늘날의 한국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민주주의는 어느정도 진전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사람들의 태도는 그때와 다를 바 없다.
이 나라에선 토론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대화조차 이뤄지지 않는다. 다른 의견은 이해보단 침묵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어떤 단어는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 주변을 서늘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자유롭고 모든 표현이 허용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대화 속에 정해진 규율이 있고 말해서는 안되는 금지어가 팽배한 나라. 바로 그런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케케묵은 관습에 지친 사람들은 말한다. 헬조선. 여기선 더 이상 못살겠다고.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 해외여행 간다는 말처럼 들렸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진짜로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한다. 그리고 떠난다.
홍세화 선생은 한국을 그리워하고 그곳에 닿지 못함에 애달파하며 책의 1부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오늘날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음에도 고국의 땅을 밟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그들은 여전히 한국어로 책을 읽고 한식을 먹고 케이팝을 들으며 살아가지만, 한국을 삶의 터전이라 여기진 않는다. 그저 망명하듯 떠나온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인생과 삶을 모색할 뿐이다.

얼마 전 무려 2,400만명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에서 업로드한 영상이 화제가 됐다. 제목은 이랬다. SOUTH KOREA IS OVER. 한국은 망했다는 뜻이다. 이런 말이 과장이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정말로 망해가는 중이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서 지금의 월급으론 제대로 된 집 한채조차 마련하지못하고, 청년층은 취업난에 시달리며 노인은 빈곤에 내몰린다. 사회의 꼭대기에 있는 기득권층은 불안을 이유로 변화 대신 보전을 택하고 그 외 다수는 피로감을 이유로 침묵한다.
이런 상황이 비단 사회구조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건 우리 모두가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얕보고 외면한 결과다. 변화에 무관심했던 다수의 침묵이, 연대의 가치 대신 돈의 가치에 무게를 두었던 지난날의 과오가 지금의 현실을 만들었다.
이 흐름을 바꿀 방법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현재의 거대양당 체제의 정치 구조와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젊은 감각을 가진 자에게 정책 수립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젊음은 단순히 나이가 어린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걸 제대로 꼬집을 줄 아는 혜안을 가진 사람에게 사회를 설계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정치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불편하고 까다로운 책임의 자리다. 책임을 감당하겠다는 정치인이 많아지고 그 책임을 묻는 시민이 늘어날 때 사회는 달라질 수 있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언어가 일상에 존재하고 혐오가 아니라 연대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리는 사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그런 모습이 아닐까.
책의 뒷면에 적힌 문구로 글을 마무리해본다.
혐오하기보다는 분노하라. 분노하기보다는 연대하고 동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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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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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들어오면 “우리 식구”가 되었다고 말한다. 당신은 이제부터 우리 가족의 대소사를 함께할 일원이라면서 집안의 온갖 미션을 해결할 것을 요구한다. 며느리로서 해내야 할 수행과제들은 상당한 적극성을 필요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족 내에서 며느리의 위치는 언제나 최하위에 자리한다. 식구라면서, 주어지는 역할은 식모와 다를 바 없다. 말이 좋아 며느리지 실상은 공짜로 부리는 가사노동자일 뿐이다.

며느리는 명절이 되면 하루 종일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남의 집안 제사상을 차린다. 김장철에 식구들이 아랫목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며느리들은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배추를 버무린다. 가족 식사가 끝나고 뒷정리와 설거지를 도맡는 것 또한 온전히 며느리의 몫이다. 이뿐인가? 자녀가 없으면 "언제 애 낳을 거냐"는 핀잔까지 감내해야 한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극진히 대접해주면서 왜 며느리에게만 무급의 강제 노동을 요구하는가. 며느리가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유교적 가족은 이제 해체될 때가 됐다. 아니, 해체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며느리가 남자라니”를 외치는 이 땅의 기성세대들은 가족의 해체를 두려워 하는듯하다. 그들이 내놓은 정책을 보면 어이가 없어 기가 찰 노릇이다. 저출산 대책이랍시고 고작 몇십, 몇백만 원의 지원금을 던져주며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 협상의 여지도 없는 쓰레기 같은 거래다. 내 커리어와 건강을 전부 포기하는 대가가 고작 그정도라니.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면 책상이 사라져있고, 비상식적으로 치솟는 물가 때문에 혼자 먹고 사는 것도 벅찬 현실 속에서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다. 그런데도 출산율이 낮다며 여성들에게 임출육을 당당히 요구하는 그들의 뻔뻔함에 치가 떨린다.

설령 출산을 결심했다 치자. 어렵게 열 달을 버티고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 끝에 아이를 출산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가 여자라는 이유로 이런 말을 듣는다. “요즘엔 딸이 최고야~” 여기서 ‘요즘’ 딸이 최고라는 말은 무뚝뚝한 아들보다 살갑고 애교많고 집안일도 척척 도울 줄 알고 나중에 부모 아프면 간병도 잘 해줄 딸이 최고라는 거다. 반면,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가문의 대를 이을 장남! 이라며 온 가족이 얼씨구나 좋다 잔치를 벌인다. 아들은 그저 존재만으로 든든해서 좋단다. 태어난지 하루 된 신생아에게조차 여성이라는 이유로 돌봄 노동자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회라니. 이 얼마나 기괴한가. 이러한 기성세대의 행태를 지켜보며 자란 지금의 여성들이 출산을 선택할것 같은가? 출산율이 0.7이라는 수치에 겁먹을 것 같은가? 어림도 없지.

출산의 전 과정을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진다고 해도 아이를 낳을까 말까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시의원이라는 자는 여성의 케겔운동을 저출산 대책이라며 내놓는다. 언제까지 여성을 출산 기계 취급하며 출산율을 논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받는 시대의 종말을 선언한다. 다가올 미래에는 유교적 정상 가족의 틀이 부서지며 돌봄과 연대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을 것이다. 가족의 의미는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한 사람들 사이에서 새롭게 정의될 것이다. 희생이 미덕이 되는 세상은 끝났다.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유지되는 가족이라면 그런 가족은 더 이상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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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양장)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소설Y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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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와닿지 않았다. 사실, 선택이 뭐고 책임이 뭔지 알 필요가 없었다. 그 시절의 고민은 친구랑 뭐하고 놀아야 할지, 쉬는 시간에 매점에 갈지 말지, 고작 그정도였으니까. 선택에 따른 책임 역시 가벼웠고 웬만한 일은 대충 웃고 넘기면 됐다.
그런데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선택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무심코 내린 결정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오고, 그 상황을 감당하고 수습하는게 오로지 내 몫이라는 걸 깨닫고 나니 두려움이 앞섰다. 선택의 기회가 많아질수록 자주 망설였고 자꾸만 뒤로 숨었다. 그렇게 뭐가 더 안전한지 재고 또 재느라 놓쳐버린 순간들이 쌓여갔다.
그래서 요즘의 나에겐 메모리얼 아몬드 스틱이 필요하다. 가장 두려웠던 기억을 마주하고 나면 앞으로의 선택은 조금 덜 무서워질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또렷해진 기억 위에 용기를 단단하게 쌓아 올려보고 싶다. 훗날 그 자리를 지나칠 땐 두려움 없이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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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삭제 완역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현대지성 클래식 37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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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창조한 자와 버림받은 존재, 그 사이에서 마주한 인간다움의 무게. 영화를 먼저 보고 읽으면 이해와 재미가 2배! <메리 셸리:프랑켄슈타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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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청소년 66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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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사과처럼 텁텁하고 싱그러운 여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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