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 모든 수고에서 얻은 것은 물과 바람과 같았다.
-오마르 하이얌, 페르시아 시인

시편에서는 지혜가 현실과 기도에 적용된다. 잠언은 삶의 현실에 지혜를 적용하고, 전도서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한 채 즐길 수 있도록 지혜를 적용한다. 참된 즐거움은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 때 가능함을 보여 준다.

어떻게 고통을 당하는가는 욥기에, 어떻게 기도하는가는 시편에,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잠언에, 어떻게 즐거워하는가는 전도서에, 어떻게 사랑하는가는 아가서에 담겨있는 것이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19-25)

솔로몬은 담대히 현실을 그대로 대면한다.

산 정상에서의 신비적 체험, 하나님을 뵌 체험, 고독의 체험을 했더라도 복잡한 현실의 삶이라는 시험을 치르고 통과해야 한다.

히브리 지혜는 당신이 변화산에서 본 비전을 더러움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가져가 그 비전대로 살라고 요구한다.

사람은 현실 속에서 안식을 구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이는그 어디서도 안식을 찾을 수 없다.

성경은 사람이 언제나 자신의 강한 부분에서 쓰러지는 것을 지적한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불신에 빠졌다.
온유한 모세는 혈기를 부렸다. 용감한 선지자 엘리야는 여인 앞에서 용기를 잃었으며 가장 지혜롭고 부유하고 화려했던 최고의 왕 솔로몬은 유치하고 감각적인 우상에 빠졌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바르게 해석하면서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믿음을 두는 것이다. 사람의 제일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상황을 변화 시킬 수 있는 분이다.

인간은 무언가 부족한 것들을 채우려고 하지만 부족함은 끝이 없다.

솔로몬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사상이나 지혜라 할지라도 반드시 더 나은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나님 안에서 얻는 지혜와 지식은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온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얻은 지혜 안에서 이 세상의 짛와 지식은 헛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은 쌓으면 쌓을 수록 번뇌만 많아질 뿐이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기 때문이다.

눈물로 주께 구하며 그분을 추구하라. 곧 이어 당신도 눈물을 흘리시는 주님을 보게 되리라.
무서운 꿈과 같이 한 대 하나님을 쉽게 떠났으나 어느 곳에도 만족함이 없어 다시 능하고 강하신 주님 붙드네
-F.W. 마이어스, 영국 시인이자 교육가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맨 처음 인간의 문명이 살인자 가인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문화들이 그릇된 토대 위에서 발전됨으로써 본연의 기능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을 바르게 돕기보다 부패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성경의 모든 지혜서는, 이성주의에 바탕을 둔 순수 사고가 반드시 비관주의로 귀결됨을 입증한다.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여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신다.˝ (계 21:4)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과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전 3:8-21)

참된 즐거움은 우리의 행함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 위에 두고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신나는 마음을 가지며 살아야 한다.
교훈을 귀하게 여기고 끝까지 시도한 자들을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거룩한 성‘과 ‘새 땅‘은 자신의 모든 관계를 하나님께 맡기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으며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우리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상황에 대해 걱정과 의심이 생기면 용기를 내라. 옳고 그름에 있어 의심이 찾아든다면 멈추라. 영적으로 의심이 오면 기ㅣ도하라. 개인의 삶에 의심이 생기면 더욱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하나님과 특별한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면서 그분의 지시를 받도록 하라. 그 뒤 그 지시대로 현실의 삶을 살기 시작하라.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영적인 용기를 갖고 자신이 믿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자들에 의해 드러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전 4:5-6)

그러나 이 모든 시도가 사람들을 억압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패망하는 쪽은 도리어 힘으로 이겼던 자들이 아니던가? 모든 문명사회와 왕국의 가장 큰 실수는 언제나 강한 사람을 요구한 데 있었다. 아무리 강한 쇠사슬로 형성된 사회라도 가장 연약한 고리 하나에 의해 그 사회가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다. (경쟁에 의해 누군가 승자가 된다면 반드시 약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회는 약자에 의해 무너진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도 내면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참된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의 참된 활력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속에 있으며 오직 그 곳에서 참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꾸지람을 전혀 받지 않고 사는 것은 재앙을 겪는 지름길이다.

회개는 충동적인 반응이 아니다. 반면, 후회는 충동적으로 일어난다.




삶의 목적은 축적이 아니다.
최선의 삶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다 소모하는 삶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은 주님과의 관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당신의 믿음을 하나님께 두라.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의무부터 감당하면서 결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

명성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성품은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사람의 성품이 드러나는 곳은 바로 그 곳이다.
솔로몬은 인생 바닥에 깔려 있는 비극을 마주할 때 비로소 인생이 무엇인지 올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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