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잘해보겠다는 치구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공부가 안된다. 공부는 억지로 용을 써서 되는 게 아니다. 간절하되 자연스러워야 된다. 마음에 힘을 빼고 쉽고 편안하게 하라. 공부가 좀 되었다고 좋아하지도 말고 공부를 더 잘하겠다는 욕심에 억지를 쓰지도 말고 그저 알 수 없는 그 자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그게 공부다.
공부를 잘해보겠다는 치구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공부가 안된다. 공부는 억지로 용을 써서 되는 게 아니다. 간절하되 자연스러워야 된다. 마음에 힘을 빼고 쉽고 편안하게 하라. 공부가 좀 되었다고 좋아하지도 말고 공부를 더 잘하겠다는 욕심에 억지를 쓰지도 말고 그저 알 수 없는 그 자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그게 공부다
참선하는 방법을 설명할 때 ‘어미 닭이 알 품들이품듯이 고양이가쥐 잡듯이‘ 집중하라는 표현을 쓴다. 어미 닭이 알을이 알을 품고 있다가 이리저리 놀러 다니면 알은 이내 곯아버린다. 얼른 모이만 쪼아 먹고 다시 돌아와 알을 품어야 병아리가 나올 수 있다. 그이가 쥐를 잡을 때도 쥐가 들어간 구멍 앞에서 꼼짝 않고 지키고 서 있어야 한다.나는 이 표현을 ‘손흥민이 축구공 쫓아가듯이 추신수가 야구공 노려보듯이‘라고 바꿔 표현하고 싶다. 참선 수행을 할 때도 손흥민 선수가 포기하지 않고 공을 따라가듯, 추신수 선수가끝까지 공에서 눈을 떼지 않고 홈런을 치듯 나는 뭘까?‘ 하는 물음에 집중하고 지속해야 한다. 그냥 적당히 묻다가 말다가 대중해서는 안 된다. 오 분이든 십 분이든 지극한 마음의에 집중해야 한다.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야 되는 것이다.
복을 구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복은 누군가에게 빌어서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과란 것이 얼마나 무서울 정도로 분명한지, 우리가 한 생각 한생각 마음 쓰는 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똑똑히 이해해야 한다는뜻이다.복을 짓고 좋은 일 하는 것은 남이 하는 게 아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극락도 내 발로 찾아가고 지옥도 내 발로 기어든다. 그것을 자작자수라고 한다. 나의 무엇이 그렇게 하게 하는가? 내 행동, 내 말 한마디. 내 마음 씀씀이가 복도 짓고 화도 부른다.살면서 좋은 일이 생기고 죽어서 극락에 가기 위해 복을 짓는 것은 불교의 본모습이 아니다. 복이란 것은 그 과보가 다하면 언젠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나는 바위 밑 물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바위에는 조가비들이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스치기만 해도 살갗이 찢어진다. 물에 끌려들어간 순간 바위 쪽으로 다시 나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파도가 덮쳐 바위에 몇 번 부딪치면 몸이 걸레처럼 찢겨 죽을수도 있다. 나는 거꾸로 바다 한가운데로 헤엄쳐 나갔다가 낙산사 근처 설악 해수욕장으로 나와 겨우 살아났다. 이렇게 수영을 배우다 보니 나중에는 물 위에 드러누워 잠을잘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수영을 할 때 물속에서 힘을 주면그냥 가라앉는다. 그러나 힘을 완전히 빼면 일부러 뜨려고 하지않아도 저절로 뜬다. 그렇게 떠 있을 때 최소한의 힘을 들여 앞으로 나아가면 힘들이지 않고 오랫동안 수영을 할 수 있다. 수행도 마찬가지다.행자 시절에 선배 스님에게 대들었던 일도, 젊은 혈기에 수영을 하다 죽을 뻔한 일도 몸과 마음에 힘이 잔뜩 들어갔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