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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헤어졌어 ㅣ 문지아이들 173
김양미 지음, 김효은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2월
평점 :
이 책은 김양미 작가님의 9번째 신작 동화집으로 5편의 동화로 구성되어 있다.
뒷표지에는 아동문학평론가 분의 추천사와 함께
3단계(초등학교 5~6학년 이상 권장)로
중학생으로 곧 넘어가는 아이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라고 써져 있었다.
동화책을 얼마만에 읽는것인가,
중간 중간 삽화들의 색감이 동화와 잘 어울리도록 아름다워서
글 한번 보고 그림 한번 찬찬히 보니 더 따뜻한 시간이었다.
어른이 읽는 동화. 글씨 크기가 다소 커서 읽기가 수월했다.
6살, 4살 조카들이 더 크면 같이 읽고, 읽어주고 싶었다.
*첫번째 이야기 - 내 친구의 눈
색각 이상의 불편함을 가진 공석찬이라는 친구.
놀리는 친구를 대신해 나섰다가 휘말린 친구 진오.
섣불리 도와주는 것보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게 무엇일까
먼저 살피는 태도와 배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캠프가서
자신의 나무를 찾아 그 곳에서(800년된 비자나무 아래)
뒤늦은 속내를 나누며 사과를 하는데
비슷한 것을 찾아 좋아하는 것이 아닌,
다름을 서로 인정했을때 그 관계의 향기가 짙어지는 것 같다.
서로 불편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건강한 관계를
뿌리부터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그러한 시간들이
충분히 필요한게 아닐까, 그런 부분들을 유년시절의
친구들과의 우정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두번째 이야기 - 그럴 수도 있지, 통과
제목을 처음 보자마자
영화모임의 한 친구를 떠올렸다.
그 친구가 으레 하는 말버릇이 '그럴 수도 있지, 암. 그럴 수도 있지...'
였다. 영화를 보고 나면 서로의 의견이 수만가지 나오는데
그 친구는 그럴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렇게 말을 흐리곤 했었다.
여기서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새 박사인 할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아이가 알던 할머니가 아닌 지금의 할머니와 새로 만나곤 한다.
할머니는 불안할때면 웃곤 하던 손자의 습관도 알고 있고
금고의 비밀번호를 잠깐씩 잊어버리는 거라 생각하니(p.69)
거실에서 낮잠자다 깬 것처럼(p.75)
낯설어진다. 아빠는 겁쟁이처럼 더 심해지면 요양원에 보내드릴까 고민 중이다.
그렇게 기억을 잃어가셔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p.82)
손자를 생각하지만
늘 대답은 '몰라, 그럴 수도 있지, 통과' 를 외치면서 따뜻하게 이야기가 끝난다.
누군가는 이미 할머니가 계시지 않을 수도 있고,
건강한 할머니가 계실 수도 있고, 이 책처럼
변해가는 할머니가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할머니의 함함한 새끼들이다. 오늘따라 보고 싶은 할머니 생각이 났다.
잊어버리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다르다는 글의 내용이
한 글자 차이지만 가슴에 남았다.
*세번째 이야기 - 누가 토요일을 훔쳐 갔다.
여기에는 도둑맞은 가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딱히 잃어버린 것은 없지만, 집에서 잃어버린 것이 없는지 찾다가
아빠의 비상금이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5편의 이야기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그 중에서도 한 가족이 같이 가게 된 삽화는 너무 재미있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자는 경우는 이제 거의 없을테니까.
"아빠가 베란다에서 한숨 쉬고 있어."(p.109)
집 분위기를 표현하는 부분의 대화들이 웃음이 나게 한다.
예전에 집에 도둑이 들어서 그 이후 불안한 마음에
한동안 문단속을 꼭꼭하고 가족끼리 더 뭉쳤던 추억이 떠올랐다.
*네번째 이야기 - 잘 헤어졌어
이 책의 표제작으로 제목을 동화책답지 않게 다소 강렬해서
긴 이야기가 담겨있어 긴장하고 책장을 넘겼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친구와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잘 살피는 아이로 이미 한달 전에 헤어진 7년을 알았던 13살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친구 사이 모든게 거짓없이 다 털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몰랐던 이야기 혹은 내가 너만 알고 있어야 해 하는 비밀들이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을때의 서운함 혹은 배신감.
'그 애한테 궁금한 게 하나도 없어져서요'(p.131)
정말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호기심과 관심, 궁금함이 없어지는 순간,
그 관계는 황량한 겨울거리에 서 있는 나뭇가지의 앙상함만 남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정이든, 사랑이든, 가족이든
그 관계에서 어떤 금이 가고 있는 문제점을 모르고
마냥 견뎌왔던 시간안에서 그저 만남을 지속하거나 오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서로의 편지(쪽지)를 주고 받으며 그 문제점을 찾으려 하고
솔직함으로 털어놓는다.
(이럴때는 동화속 내용이지만 정말 잘난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똑똑하고 어른스럽지 않나 생각한다.)
어떤 말들은 짧지만 글로서 진심을 더 담아 전달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이 어린 친구들이 어른들에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쓸쓸하다. 나는 네가 지금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헤어질 결심을 앞으로 살면서 여러번 하겠지만
지금의 첫 헤어질 결심을 열렬히 응원한다.
마지막 '상태씨와 이사' 까지
다섯편의 이야기 모두 나오는 아이들이
참으로 따뜻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깊고
그냥 아이같다고 생각했다. 요즘 아이같지 아이도 많고
어른같지 않은 어른도 많고 아이같은 어른도 많고
어른같은 아이가 많은 세상이라서 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나오는 헤어질 결심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도 잘 헤어져야 하고
아이들에게도 잘 헤어지고 새로운 만남도 건강하게끔 생각해보는
시간이 이 책을 읽으며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작가님도 마지막의 작가의 말을 통해서
'과거의 나와 잘 헤어지고, 오늘의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쓰게 된 동화들이다.'
라고 적어주셨는데 책을 읽고 나니 공감이 갔다.
오늘의 나를 찾으러 이만 가봐야겠다.
(*문학과지성사 에서 사전 서평단으로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