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소통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꼭 지금 당장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언어는 특정 지역의 문화, 역사, 사상이 담여있다. 이러한 점에서 라틴어는 현재의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는 아니다. 영어처럼 당장 누군가와 라틴어로 대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라틴어인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라틴어는 고대의 로마를 포함해서 서구 문명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전공한 역사를 배우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할 수 있는 것이 라틴어를 공부하는 목적이다. "고대 서구에서 벌어진 일들을 살피고 난 다음에는 또 다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p.6) 하지만 확실히 라틴어는 어렵다! 우리 말과는 다른, 영어와도 다른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 체계를 알아야 한다. 명사가 무려 36가지로 변화한다.(여섯가지 '격', 세 가지 '성', 두 가지 '수') 명사가 이러한데 형용사가 조합되면 더 경우의 수가 많아지고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는 확실히 진입장벽과 낯설음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라틴어를 공부하는 것은 역사와 사회, 문화를 만나기 위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목적을 독자와 공유하고 있다. 학습자의 시각으로, 전공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누구나 볼 수 있게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겁먹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설사 라틴어의 큰 장벽을 넘지 못하더라도 책을 따라가다보면 최소 친숙함이라도 느낄 수 있다. 목차를 보니 "모든 것은 작게 시작합니다!"라는 격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저자인 배태진 선생님의 얼굴도 있으니 뭔가 선생님이 옆에서 응원해주는 느낌이 든다. 라틴어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덜고 14강으로 된 내용을 급하지 않게 천천히 한강씩 넘어보리라 각오해 보면서 1강부터 공부를 시작해보았다. 친절한 설명을 밑줄 그으면서 하나하나 읽고 이해하다보면 어느새 라틴어를 따라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쓰기" 부분의 빈칸을 채우며 쓰다보면 라틴어를 조금이라고 끄적이며 쓸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해졌다. 또한 잘 이해가 안된다면 QR코드를 찍고 학습영상을 시청할 수도 있으니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진다. 마치 선생님이 옆에 계시는 것만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한 부분은 "라틴어 표현 익히기" 이 부분을 볼 때 한층 라틴어에 대해 친숙해지는 느낌이고 문화와 역사를 같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 이 표현이 라틴어였어! 라는 문장도 찾아볼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은 낯설고 두렵지만 기분좋은 경험이다. 특히 책으로 만나는 세계는 안전하다. 라틴어라는 세계에서 완벽하게 이 언어를 정복한 것은 아니지만 책으로 만나는 안전지대 안에서 충분히 향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