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정치학 - 기독교 세계 이후 교회의 형성과 실천
스탠리 하우워어스 지음, 백지윤 옮김 / IVP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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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자유주의적 기획 속에서 ‘종교의 자유’는 한 사회의 자유를 나타내는 하나의 대전제로서 존재해 왔다. 이러한 기획을 실천하는 가운데 교회는 본래 그것이 가지고 있던 (그것이 부정적이었든 긍정적이었든) 사회적 기능들을 잃고 개인의 사적인 영역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근래에 와서 이러한 개인화에 대한 문제의식들이 확대되면서, 공적 영역, 특히 정치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을 재정립하고자 하는 신학적 논의들이 촉발되어 왔다.

 

종전의 논의들이 교회의 정치 참여에 당위를 부여하고, 그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었다면, 하우어워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가 ‘참된 교회’로 존재하기 위한 ‘신학적 정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교회의 정치학>을 저술했다. 이를 위해 그가 수행한 작업은 교회 공동체와 사회를 둘러싼 담론들에 내재된 자유주의적 가치와 방향성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하우어워스는 우선 가장 논의의 가장 큰 전제인 자유주의 그 자체를 공격한다. 미국이 그간 추구해 온, 세계가 마땅히 지향해야할 바로서의 자유주의적 기획이 ‘거짓된 보편주의’임을 지적한다. 또한 자유주의를 뿌리내리게 한 계몽주의의 승리는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는 일을 멈추게 한 대신 민족국가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게 했으며, 자신들의 자유와 행복을 지켜주는 존재로서의 국가가 신의 존재를 대체한 것으로 본다.

 

그 교회 역시 이러한 자유주의적 기획에 적응하거나, 혹은 적극적인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지금의 교회는 세상에 반대하며 세상을 뒷받침하고 있는 권세에 대응하는 대신 자신의 안전함 속에 안주하며 ‘길들여진’ 채로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우어워스는 ‘기독교 윤리학’이나 ‘정의’의 문제까지도 재검토되어야 할 대상으로 본다.

 

그는 현재의 윤리학에 대한 강조가 공동체적 규율에 의한 것이 아닌 자율적인 도덕에의 추구가 만들어내는 틈을 메꾸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종교나 예의와는 별개의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즉, 교회가 여러 영역에 필요한 윤리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인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유주의적 질서를 확립하는 데 ‘기독교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정의에 대한 담론 역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기 쉽다. 즉, 교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옳은 일이라고 믿지만, 실제로 이들이 추구하는 ‘정의’의 개념은 이를테면 롤스의 정의와 같은, 자유주의적 정의론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이러한 정의의 방향성이 ‘권리의 회복’과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복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하우어워스는 흥미로운 논점을 제시한다. 그는 교회가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사회와 협력하는 일에 대한 약간의 의구심을 표출한다. 이러한 일은 자유주의적 가치에 기반한 정의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배제함으로써 여전히 자유주의 사회의 주류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의 반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자유주의적인 정의에 대한 동의는 교회의 상상력을 자유주의가 말하는 정의에 긴박되게 함으로써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기독교가 제시할 수 있는 실제적인 설명들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렇듯 거짓된 보편주의로서의 자유주의에 길들여진 현재에 맞서기 위해, 하우어워스는 구원의 본질적 서사를 회복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보편주의에 맞서는 소수성, 내지는 부족성의 회복이다.

 

기독교적 구원은 세상이 추구하는 보편주의적인 기획, 바꿔 말하면 제국주의적인 기획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기독교적 구원의 서사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바는 세상의 거대한 기획에 동참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우리다움’을 회복하는 것이며, 그것은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구원의 서사를 전하는 증인의 위치에 스스로를 위치 짓게 만드는 일이 된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우어워스의 이 책은 많은 부분 다소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언어들로 가득차 있고,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학, 사회 및 정치 이론, 그리고 내(하우어워스-필자)가 고급문화 저널리즘이라 부르는 것을 섞어 놓은 이상한 혼합물”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단서들을 찾아내기란 다소 막연한 일이다. 그리고 하우어워스 역시, 그 스스로도 대안으로 제시할 만한 사회 이론이나 정치 이론을 갖고 있지 않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하우어워스는 이러한 답답함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놓치 않는다. 그는 “우리는 계속 나아감으로써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말로써 ‘우리’를 격려한다. 기독교가 한때 세상의 권위를 지녔던 크리스텐덤(Christendom) 이후의 시대를 지나는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대로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존재로 회복되기를 그는 기원한다.

 

우리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자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가진 존재라면, 그 믿음이 도달하는 지점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이라면, 그리고 ‘소망’이란 대체로 우리의 힘으로 완성될 수 없는 것이라 믿는다면, 우리는 ‘바라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인 하나님 나라 만나는 지점으로서의 ‘상상력’에 도달하게 된다. 교회의 가능성, 구원의 가능성이 상실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는 다원의 시대에 세상의 생각과 기획을 아득히 뛰어넘는 다양한 상상의 회복과 실천을 통한 증인으로서의 교회가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쓴 것이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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