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 - 인생을 바꾸는 독서혁명 프로젝트
김병완 지음 / 아템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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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서 독서법과 의식 독서법을 배우게 된 책. 실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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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엄마처럼 격려 + 질문으로 답하라 - 하브루타로 세계 최고의 인재를 키워낸
전성수 지음 / 국민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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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마되기를 준비하면서 사랑하는 자녀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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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사를 꿈꾸다 - 기독교적 수업을 향한 한 교사의 평생 분투기
소종화 지음 / IVP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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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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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중심의 교회 - 그 교회에 가고 싶다!
매트 챈들러 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경기도 안산에서 초등학생 때부터 살다가 결혼을 하면서 성남이라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자연스레 이쪽 지역으로 교회를 옮겨야했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안산의 교회는 나의 초, 중, 고, 대학생활 전체, 그리고 청년기 일부의 면면을 함께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났고, 치열하게 성장했으며 오랜 시간 다양한 모습을 서로에게 보이며(좋은 모습, 부족한 모습, 진지하거나 혹은 우스운 모습 등등)함께 커 온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남편과 나, 단 둘만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외로이 서 있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만큼 전에 섬기던 교회는 남편과 나(남편도 같은 교회에서 고등학생 때 만난...교회오빠!?^^;;)의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다닌 나의 교회가 있을 때는 하지 않았던 고민, 교회란 어떤 곳이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떤 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교회지? 나를 어릴 때부터 알던, 편안한 사람들이 없는 새로운 교회에서 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지?'라는 고민은 예상 외로 복잡한 것이었다. 믿음의 멘토들께서 추천해 주신 새로운 교회를 섬기고 있는 근 3년 정도의 시간에도 그 고민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새로운 교회에서는 여전히 변두리인 같은 느낌이 들어 고민하던 요즘, <예수 중심의 교회>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굵고 큰 글씨의 제목보다 제목 위의 붉은 글씨 '그 교회에 가고 싶다'라는 구절이 더 눈에 들어왔다. '어떤 교회이길래 가고 싶은 걸까?', '많은 현대인들이 교회를 욕하고 하나님을 욕하는 이 시대에 어떤 모습을 가진 교회길래?'등의 궁금증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 시기적절! -
 안산의 교회에서 나는 정말 바빴다. 이런 저런 사역들과 만남들 속에서 가끔 피곤에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받는 은혜가 더 풍성했다. 그런데 새로운 교회에서는 180도 달랐다. 별다른 봉사나 사역 없이 예배만 딱 드리고 집으로 왔다. 주일의 평화와 한가로움도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잘 누렸지만 뭔가 봉사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은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그렇다. '불안감'이란 표현이 참 적절한 것 같다.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너무 게으른 건 아닌지, 이렇게 주일날 한가한 날 보며 주님이 '뭐하니?' 하실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던 차에 작년부터 조금씩 도와드렸던 어떤 사역에 대해 이제 조금 더 깊이 들어오기를 원하시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불안감이 있었으니 얼른 '예스!'를 할 법도 하건만 또 고민은 시작되었다. 바쁘고 피곤해질 것에 대한 염려에 더하여, 내 마음 편하자고 이 사역을 이용하는 거 아닌가? 괜히 잘못된 의도로 시작했다가 제대로 못하고 해만 끼치는 거 아닌가? 그럴 바엔 안 하는게 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주저하고 있었다. 결정할 시간이 다가와서 일단 첫 모임에는 참석을 했고 그 곳에서 무언가 평안함과 기쁨은 주셨지만 고민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그 날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서는 금방 깨달았다. 나의 고민들의 해답이 '복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교회에 대한 고민(예배, 연합, 섬김, 전도, 교회의 문화, 설교, 주일학교, 리더십, 실무, 선교, 사역)뿐만 아니라 나의 삶 전체에 대한 고민은 '복음 중심이냐 아니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은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임을 명확히 이야기해주고 있다. (21쪽) 매일 복음으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받는 자녀가 언제든지 편하게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는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무언가를 할 때 하나님의 눈치를 보며 불안에 떨던 나의 모습도 알게 되었다. 아,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모습이었을까? 그 큰 사랑을 믿지 못하고 눈치만 끊임없이 보는 나의 모습. 목숨을 주어 사랑했는데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며 무언가 계속 잘 보이려는 나의 모습.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정말 시기적절한 하나님의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안 그랬으면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나 스스로가 순전한 동기인지를 계속 돌아보며 불안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 신기해라!

 

 - 교회 그리고 사랑하는 학교 -
 예배와 공동체에 대한 부분도 깊이 다가왔다. 이 부분은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하나님께서 은혜로 맡겨주신 나의 일터인 학교에 대해 돌아보게 해 주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매일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리고 교회와 기독대안학교인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아직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런데 복음은 한 번 알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귀찮은 일을 해치우듯 예배하는 시늉을 할(65쪽) 때는 복음이 내 안에 거의 남아있지 않을 때다. 찬양도, 설교도, 의식도, 그리고 학교에서 하는 큐티와 전체 예배도 복음에 흠뻑 빠졌을 때 참된 예배가 되는 것이다.
 또한 확실한 복음의, 그리스도의 은혜의 기초 위에서 성장하는 공동체에 대한 부분은 지금 만나고 있는 교회의 셀 모임과 사역팀, 그리고 학교의 동료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기억하면서 읽어내려갔다. 가면을 벗으라 / 죄인은 품고, 죄에는 맞서 싸우라 / 사랑과 존경으로 대하라 / 진리를 상기시켜주라 /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라의 각 부분을 읽으며 나의 모습이 생각나 많이 부끄러웠다. 주께서 주신 귀한 사람들을 너무나 잘못된 모습으로 대하고 있었던, 그래서 완벽한 공동체를 약속하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모습을 정직히 돌아보며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담당하셔서 회복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지하여 새로운 희망이 몽글 솟아올랐다. 나의 어떠함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심에 의지하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이다.

 

- 복음, 정말 복된 소식 -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 이 생각은 교묘하게도...죽어도 괜찮다는 생각과 맞닿아있다.) 천국에 가면 슬픔도, 눈물도, 고민도 없다고 하셨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천국에 가면 나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고민 안해도 되고 주님 찬양하면서 기쁘기만 할텐데...라는 생각들을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많이 하곤 했다.(요즘도 아예 안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봄 나무에 돋는 새 이파리처럼 참 푸르렀던 그 시절에 왜 그런 생각을 했을지 그 이유를 지금 생각해보면 알 것 같기도 하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긴 했지만 복음의 은혜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예수님을 만나고 정말 행복했고 세상이 달라보였다. 예수님을 정말 사랑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이 싫어하시는 행동과 생각을 자꾸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보다 더 심하게 절망했다. 해도해도 안 변하는 나라는 사람이 참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천국에 대한 생각을 했다. 천국가서 하나님을 빨리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더하여 이 거추장스러운 죄된 나의 모습을 버리고 싶었다. 후자의 이유가 더 컸을테니 천국에 대한 소망의 많은 부분은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동기였다.
 지금도 여전히 넘어지고 쓰러지고 죄에 빠지는 모습이 참 속상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또 하나 깊이 깨달은 것은 '복음, 복된 소식'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내가 주체가 아니기에, 죄악된 내 모습이 싫고 또 싫지만 다시 주께 나아갈 수 있는 것. 그리고 또 다시 넘어질 때 삶을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울면서 다시 아버지 하나님께 가면 된다는 것. 이 얼마나 복된 소식인지. 눈물 나도록 절절한 복된 소식인지...나의 나 된 것이 나로 인함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함이라는 이 복음을 삶의 중심에 견고히 세우는 모두가 되기를 기도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기쁨인지 매 순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가기를, 한 번 안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 복음 안에 흠뻑 젖어들기를 또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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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부이치치의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
닉 부이치치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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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의식은 마음 속의 평화를 온전히 없어지게 한다'라는 구절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이 구절이 명백한 사실인 것은 수년 간에 걸쳐, 매우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느끼곤 했다. 나에게 없는 것, 내가 부족한 것을 매의 눈(?)으로 찾아내고 그것이 있다고 여겨지는 다른 이와 하나하나 비교해가다보면 어느새 마음 속에 시기와 질투, 부러움, 원망이 가득차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닉 부이치치는 마음만 먹었다면,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비교의식이 심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큰 사람이었다. 우리는 '왜 나는 저 사람보다 키가 작지? 왜 나는 저 사람보다 뚱뚱하지? 왜 나는 저 사람보다 못 생겼지? 왜 나는 저 사람보다 이걸 못하지? 왜 나는....'이라고 때때로 생각한다. 그런데 닉은 비교하는 문구부터 다른다. '왜 나는 팔이 없지?(왜 나는 팔이 짧지?가 아니다.) 왜 나는 다리가 없지?(왜 나는 다리가 길지?도 아니다.) 왜 나는 걸을 수 없지? 왜 나는 달릴 수 없지?'(왜 나는 섰을 때 맵시가 나지 않지? 왜 나는 달리기가 느리지? 역시 아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비교의식의 최고봉에 오를 수 있는 사람임에도 닉의 마음 속에는 완전한 평화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표지에서부터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저렇게 빛나는 웃음을 가질 수 있다니.
 닉에 대해서는 예전에 짧은 영상을 보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강연을 하는 모습을 찍은 짧은 영상이었다.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는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면서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살면서 넘어질 수 있는데 그럴 때는 이렇게 일어나면 된다고하며 머리를 사용하여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다. 아, 그 순간의 찡한 떨림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닉은 TV에도 출연하고 책도 냈었는데 접할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이번에 참 귀한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시 만난 닉, 좀 더 자세히 알게 된 닉은 정말 하나님께 꼭 붙어있는 사람이었다. 책에서 인상깊은 구절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p. 19  당신 앞에 닥친 어떤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라. 그러면 문제는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것이 될 것이다.
 p. 27  사실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이 설계하신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태도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당신의 진면목을 알아보고야 말 것이다.
 p. 102  우리의 꺼져가는 소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p. 106  이사야서 40장 31절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이 말씀을 듣자마자 팔다리가 꼭 필요한게 아님을 깨달았다.
 p. 119  갑자기 닥친 끔찍한 일조차도 하나님의 선한 계획의 일부라고 여기며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삶 자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진다.

 정말 놀라웠다. 위에 적은 구절 외에도 닉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그가 어쩌면 그렇게 힘있고 밝게 살 수 있는지 참 놀랍다. 그리고 그 모든 원동력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닉을 보며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닉은 크신 하나님, 선하시며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께 삶의 모든 초점이 맞춰져있다. 우리가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거나, 현미경 또는 망원경을 볼 때 초점이 정확히 맞춰져있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디에 초점을 두고 사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과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닉을 보며 팔과 다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닉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진 사람, 그래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오늘 나의 삶의 자세를 되돌아본다. 닉은 팔다리가 없는데 나는 있어서 감사하다라는 식의 단순하고도 다소 무례한 감사는 참 낮은 수준임을 깨닫는다. '과연 나는 하나님과 깊이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속삭이시는 사랑의 밀어를 수시로 귀 기울여 듣고 있는가? 그리하여, 삶의 굽이굽이마다 하나님이 가득하여 누구와 비교하고 말고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완전한 평화가 있는가?' 그리도 또 깨닫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이리 제대로 못 살지?'라는 자책은 하나님도, 닉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닉은 그래도 우리의 삶이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신실한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족한 듯해도 나의 삶 역시 여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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