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중심의 교회 - 그 교회에 가고 싶다!
매트 챈들러 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경기도 안산에서 초등학생 때부터 살다가 결혼을 하면서 성남이라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자연스레 이쪽 지역으로 교회를 옮겨야했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안산의 교회는 나의 초, 중, 고, 대학생활 전체, 그리고 청년기 일부의 면면을 함께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났고, 치열하게 성장했으며 오랜 시간 다양한 모습을 서로에게 보이며(좋은 모습, 부족한 모습, 진지하거나 혹은 우스운 모습 등등)함께 커 온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남편과 나, 단 둘만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외로이 서 있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만큼 전에 섬기던 교회는 남편과 나(남편도 같은 교회에서 고등학생 때 만난...교회오빠!?^^;;)의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다닌 나의 교회가 있을 때는 하지 않았던 고민, 교회란 어떤 곳이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떤 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교회지? 나를 어릴 때부터 알던, 편안한 사람들이 없는 새로운 교회에서 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지?'라는 고민은 예상 외로 복잡한 것이었다. 믿음의 멘토들께서 추천해 주신 새로운 교회를 섬기고 있는 근 3년 정도의 시간에도 그 고민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새로운 교회에서는 여전히 변두리인 같은 느낌이 들어 고민하던 요즘, <예수 중심의 교회>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굵고 큰 글씨의 제목보다 제목 위의 붉은 글씨 '그 교회에 가고 싶다'라는 구절이 더 눈에 들어왔다. '어떤 교회이길래 가고 싶은 걸까?', '많은 현대인들이 교회를 욕하고 하나님을 욕하는 이 시대에 어떤 모습을 가진 교회길래?'등의 궁금증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 시기적절! -
 안산의 교회에서 나는 정말 바빴다. 이런 저런 사역들과 만남들 속에서 가끔 피곤에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받는 은혜가 더 풍성했다. 그런데 새로운 교회에서는 180도 달랐다. 별다른 봉사나 사역 없이 예배만 딱 드리고 집으로 왔다. 주일의 평화와 한가로움도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잘 누렸지만 뭔가 봉사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은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그렇다. '불안감'이란 표현이 참 적절한 것 같다.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너무 게으른 건 아닌지, 이렇게 주일날 한가한 날 보며 주님이 '뭐하니?' 하실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던 차에 작년부터 조금씩 도와드렸던 어떤 사역에 대해 이제 조금 더 깊이 들어오기를 원하시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불안감이 있었으니 얼른 '예스!'를 할 법도 하건만 또 고민은 시작되었다. 바쁘고 피곤해질 것에 대한 염려에 더하여, 내 마음 편하자고 이 사역을 이용하는 거 아닌가? 괜히 잘못된 의도로 시작했다가 제대로 못하고 해만 끼치는 거 아닌가? 그럴 바엔 안 하는게 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주저하고 있었다. 결정할 시간이 다가와서 일단 첫 모임에는 참석을 했고 그 곳에서 무언가 평안함과 기쁨은 주셨지만 고민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그 날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서는 금방 깨달았다. 나의 고민들의 해답이 '복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교회에 대한 고민(예배, 연합, 섬김, 전도, 교회의 문화, 설교, 주일학교, 리더십, 실무, 선교, 사역)뿐만 아니라 나의 삶 전체에 대한 고민은 '복음 중심이냐 아니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은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임을 명확히 이야기해주고 있다. (21쪽) 매일 복음으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받는 자녀가 언제든지 편하게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는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무언가를 할 때 하나님의 눈치를 보며 불안에 떨던 나의 모습도 알게 되었다. 아,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모습이었을까? 그 큰 사랑을 믿지 못하고 눈치만 끊임없이 보는 나의 모습. 목숨을 주어 사랑했는데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며 무언가 계속 잘 보이려는 나의 모습.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정말 시기적절한 하나님의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안 그랬으면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나 스스로가 순전한 동기인지를 계속 돌아보며 불안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 신기해라!

 

 - 교회 그리고 사랑하는 학교 -
 예배와 공동체에 대한 부분도 깊이 다가왔다. 이 부분은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하나님께서 은혜로 맡겨주신 나의 일터인 학교에 대해 돌아보게 해 주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매일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리고 교회와 기독대안학교인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아직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런데 복음은 한 번 알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귀찮은 일을 해치우듯 예배하는 시늉을 할(65쪽) 때는 복음이 내 안에 거의 남아있지 않을 때다. 찬양도, 설교도, 의식도, 그리고 학교에서 하는 큐티와 전체 예배도 복음에 흠뻑 빠졌을 때 참된 예배가 되는 것이다.
 또한 확실한 복음의, 그리스도의 은혜의 기초 위에서 성장하는 공동체에 대한 부분은 지금 만나고 있는 교회의 셀 모임과 사역팀, 그리고 학교의 동료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기억하면서 읽어내려갔다. 가면을 벗으라 / 죄인은 품고, 죄에는 맞서 싸우라 / 사랑과 존경으로 대하라 / 진리를 상기시켜주라 /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라의 각 부분을 읽으며 나의 모습이 생각나 많이 부끄러웠다. 주께서 주신 귀한 사람들을 너무나 잘못된 모습으로 대하고 있었던, 그래서 완벽한 공동체를 약속하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모습을 정직히 돌아보며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담당하셔서 회복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지하여 새로운 희망이 몽글 솟아올랐다. 나의 어떠함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심에 의지하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이다.

 

- 복음, 정말 복된 소식 -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 이 생각은 교묘하게도...죽어도 괜찮다는 생각과 맞닿아있다.) 천국에 가면 슬픔도, 눈물도, 고민도 없다고 하셨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천국에 가면 나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고민 안해도 되고 주님 찬양하면서 기쁘기만 할텐데...라는 생각들을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많이 하곤 했다.(요즘도 아예 안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봄 나무에 돋는 새 이파리처럼 참 푸르렀던 그 시절에 왜 그런 생각을 했을지 그 이유를 지금 생각해보면 알 것 같기도 하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긴 했지만 복음의 은혜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예수님을 만나고 정말 행복했고 세상이 달라보였다. 예수님을 정말 사랑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이 싫어하시는 행동과 생각을 자꾸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보다 더 심하게 절망했다. 해도해도 안 변하는 나라는 사람이 참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천국에 대한 생각을 했다. 천국가서 하나님을 빨리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더하여 이 거추장스러운 죄된 나의 모습을 버리고 싶었다. 후자의 이유가 더 컸을테니 천국에 대한 소망의 많은 부분은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동기였다.
 지금도 여전히 넘어지고 쓰러지고 죄에 빠지는 모습이 참 속상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또 하나 깊이 깨달은 것은 '복음, 복된 소식'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내가 주체가 아니기에, 죄악된 내 모습이 싫고 또 싫지만 다시 주께 나아갈 수 있는 것. 그리고 또 다시 넘어질 때 삶을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울면서 다시 아버지 하나님께 가면 된다는 것. 이 얼마나 복된 소식인지. 눈물 나도록 절절한 복된 소식인지...나의 나 된 것이 나로 인함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함이라는 이 복음을 삶의 중심에 견고히 세우는 모두가 되기를 기도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기쁨인지 매 순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가기를, 한 번 안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 복음 안에 흠뻑 젖어들기를 또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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