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그런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책의 제목을 본 순간 ‘아 이 책이다!‘해서 집어 들어, 첫 문구를 읽는 그 순간부터 깊이 빠지게 되는 책.

그런 의미로 오랜만에 마음에 꼭 맞는 책을 발견했다. 어쩌면 책이 나에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머릿속에서 막연히 떠돌던 생각들을 쉽고 명료하게 정리해주는 그런 느낌으로 가득한 책이다.


어느 사회나 그 나름대로의 문제와 병폐를 안고 흘러간다. 그것은 중세, 근대, 현대 등 시대를 망라한 공통적인 현상일테다. 현재 존재하고 발생하는 각종 사회적 이슈들이 비단 이 시대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님을 누구라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는 되었으나, 나 자신이 그 문제들에 질린 나머지 눈을 돌리고 무관심해지려는 찰나,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현상들에 대해서 조목조목 쉬운 말로 짚어냄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어떤 방식이라도 해나가자는 말이 나에게는 꾸짖음으로 다가왔다. 세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답시고 나 자신만의 우물에 갖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저자는 첫 머리에서부터 이렇게 독자들에게 권한다.


˝먼저 내 발 아래 유리 조각을 줍는 일.˝


머리말을 읽는 그 순간부터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나는 그저 생각에서만 그칠 뿐 행동에 옮기지 않고 있었다.


이어서 소비 사회의 무서움, 가족 해체 현상, 격차 사회의 실상, 현 교육 제도의 기저에 깔린 문제점 등에 대하여 담담히 풀어 나간다.

개인적으로 가장 뜨끔했던 부분은, 자신의 소비 행위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나 자신의 개성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는 문구였다.


원래 그렇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사실은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 행동에 있어서 한계치는 개개인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를 다름이 아닌 우위 혹은 열위로 받아들이게 되어, 더 이상의 주체적인 소비 행위는 어려워진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비단 소비 뿐만이 아니라 삶을 영위함에 있어서도 주체성이 결여될 수도 있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자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다. 또한 현재 개인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가 ‘돈‘임을 알고는 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풍요롭지는 않아도 나름대로의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기에는 외부에서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좀 더 풍족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만, 현재와 같은 격차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데 말이다.


이러한 세태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저자는 급진적인 개혁이나 뒤엎음이 필요하다고는 하지 않는다. 

비록 ‘어른 없는 사회‘이며,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고 권하는 세상이지만, 그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조금씩 바꿔나가길 권한다. 앞 세대의 과오를 교훈 삼아 같은 우를 범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하고, 공동체성을 되찾고자 한다. ‘되찾기‘라고 하면 약간 여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에 맞는 공동체성을 세워나가자는 편이 더 적합한 표현일지도. 또한 타자를 인정하고, 서로 간의 연결 고리를 이어나가며, 스스로가 작은 부분부터라도 행동에 옮기자는 내용으로 글은 마무리된다.


현상을 자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은 세상을 위해 ˝먼저 내 발 아래 유리 조각을 줍는˝ 그런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을 고르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영화 ‘Me before You‘를 보게 되었으나, 시간이 모자라 끝까지 보지 못했다. 다만 딱히 TV에서 돈을 내고 보거나 다운로드할 생각까지는 없었기에, 엔딩을 보지 못한 약간의 아쉬움만을 안고 있었다. 여주인공이 사랑스러웠고, 냉소적인 남주인공이 점차 변해가는 모습이 마음 한 켠에 머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영어공부나 할 겸 서점에서 원서를 둘러보던 중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원작이 있는 영화가 맘에 들면 책을 찾아 보는 일이 작은 취미 중 하나였기에, 망설임없이 책을 골라 들었다.


배경이나 설정 자체는 사실 비현실적이다. 남주인공인 Will의 집은 너무나도 풍족했기에, 사고를 당해 사지가 마비되어 죽지 못해 살아갈지언정 살아감에 있어 금전적 문제는 없다. 여주인공인 Louisa는 빠듯하게 살아가는 working class 가정으로, Will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마주칠 일 조차 거의 없다.


이런 부분은 소설이기에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차치한다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주인공-Louisa(Lou)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생기 넘치고 사랑스러운 Lou가, 회색빛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Will을 점차 변화시키는 과정이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Lou는 Will의 부모처럼 그를 지나치게 염려하지 않고, Will의 친구들 혹은 타인들처럼 지나치게 연민하거나 가엽게 여기지도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Will의 삶에 색을 되찾아주고 의미를 부여해주고자 최선을 다한다.


한편으로는 Will이 Lou를 변화시키는 모습 또한 놀라웠다. Lou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남을 신경써 줄 처지가 아니지만, 어쩌면 이것만이 Will이 살아가는 이유이며 희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의지로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아니 유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마지막으로 존엄사, 혹은 안락사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존엄사를 두고 찬반은 분분하며, 그만큼 조심스러운 주제이기도 하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삶과 죽음은 온전히 본인 자신만의 것은 아니지만, 이에 대해 옳고 그름을 부여하기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다.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 삶이 가진 가치, 죽음의 가치는 모두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