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 김솔 짧은 소설
김솔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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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자들이경험하는방식

#김솔 #아르테 #arte

 

P34. 회중들은 자신들을 코끼리라고 폄하하는 그를 도저히 용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제히 코를 뻗어 주변에 널린 똥 덩어리와 나뭇가지를 그에게 집어 던졌다. 그 행동만으로 분을 삭이지 못한 자들은 일제히 엄니를 쳐든 채 마치 허공을 통째로 옮기려는 듯 날뛰었다. 한낮의 소란에 깜짝 놀라 점심 식사를 중단하고 공터로 돌아온 사육사들이 채찍과 갈고리를 휘두르면서 코끼리들을 제압하려고 애썼고, 이 볼거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관광객들이 여기저기서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폭죽처럼 터뜨렸다.

 

살인자였던 동생이 밀림으로 도망쳤다. 아니 더 이상 그를 감당할 수 없었던 간수가 그를 밀림에 놔주었다. 그 사건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들었던,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을 나열하며 흥분하기 시작한다. 그 모든건 떠도는 소문일 뿐, 본질은 사람에게서 깊은 상처를 받은 코끼리가 인지능력을 상실해 통제가 불가능 상태로 없어졌다는 것이다. 2-5장 안팎의 짧은, 농담 같은 이야기 안에 담겨 있는 본질을 만났을 때 겹쳐져 오는 생각들을 멈출 수 없었다. 학대, 편견, 가치관, 차별. 이야기의 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균열들을 만났고,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방식에 감탄했다.

 

내가 느끼는 단편의 한계는 부족감이다. 기대한 만큼 결론을 끌어내지 못하거나, 과정 없이 갑자기 나타난 결론에 당황하게 만들거나. 물론 모든 단편이 그런건 아니고, 최근 읽었던 단편들이 꽤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가지고 있던 편견들이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쉽게 손이 가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 단편이다.

 

40편이 넘은 짧은 단편들이 있다. 그 짧은 이야기 안에 작가가 담고 싶은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난해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만큼 그 이야기를 깊이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는 작가의 의도와 다른 의미를 가졌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일상의 아이러니를 포착해낸 깊이와 일상의 흔드는 작가의 시도에 놀라게 만들었다. 단편이란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작가의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P109. 형사님은 아직도 고독사가 뭔지 이해하지 못하시겠습니까? 그건 태어나지 않는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아니면 사지나 몽통만 태어난 자가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한 채 살해당하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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