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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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겨울 #아들린디외도너

#아르테 #arte

 

나는 두렵지 않았다. 나는 약하지 않았다. 나는 열다섯 살에 내 아픔을 끌어안았다.

 

P223. “엄마, 엄마는 왜 인생을 놓아버렸어요?”

 

얼마전 휴머니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트로피 헌터들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돈을 주고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 비싼 취미를 가진 사람들. 그들도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무리의 늙은 수컷만 사냥한다는 것, 자신들이 낸 돈이 아프리카에 도움이 된다는 것..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사냥의 정당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큰 소리를 쳤다. 방금 총에 맞아 피가 흐르는 동물 사체를 붙잡고 더 멋진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 박제된 동물들을 집 안 가득 전시해 두고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들. 너무도 쉽게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 인간의 잔인함이 역겨웠다.

 

책을 읽으면서 그 때 느꼈던 역겨움이 떠올랐다. 소녀의 아버지도 사냥을 하고 전시를 하는 취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기적인 가정폭력으로 아내와 아이들은 두려움 속에 살아가야 했다. 주인공인 소녀는 이름이 없다. 소녀의 가족 중 유일하게 동생의 이름만 알 수 있다. 소녀보다 4살 어린 질이다. 소녀는 질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아이스크림 기계가 폭발하는 사고로 주인 아저씨가 죽는다. 그 사건을 목격한 소녀와 질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웃음이 예뻤던 질은 빛을 잃어간다. 빛을 읽어가는 그 모습과 과정이 꼭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었다. 동물을 학대하기 시작하고, 누나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소녀는 동생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다. 오로지 동생의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서. 그렇게 시작된 과학과 수학에 대한 공부는 소녀에게 또 다른 인생의 지름길이 되어준다.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아버지의 잔인성과 동물들이 학대 당하는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특히 소녀와 질을 데리고 나간 사냥터에서 보인 아버지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미 무기력해져 아이들의 보호막이 되어줄 수 없었던 엄마와 아버지와 똑같이 닮아가는 질. 그 안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소녀.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자신의 힘을 찾아가는 소녀의 삶. 그 안에서도 희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이들은 내일을 살아간다.

 

P84. 나는 질의 눈 속에서, 자기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흥분하는 기생충을 보았다. 그 기생충은 내 동생의 머릿속에 얼마 남지 않은 아직 살아 있는 비옥한 땅을 지배하고 황폐하게 만들며 번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질이 손을 붙잡았다.

 

P107. “폭풍우에 대해선 거짓말을 했지만, 다른 건 아니야. 마리 퀴리에 대해서도 아니야. 넌 용감한 아이야. 네겐 위대한 일을 해낼 용기가 있어. 오늘 네 얼굴을 무척 단호했단다. 다만.....계속 싸워라. 미안해, 나는 요정이 아니야. 그래도 넌, 넌 특별하단다. 꼬마 아가씨.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이렇게 말해 줘. 꺼져 버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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