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날
조지 실버 지음, 이재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읽은 로맨스 소설 덕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기적 같은 사랑이야기지만 흔히 생각하는 구구절절 눈물과 사랑이 펼쳐지는 사랑이야기만 담긴 소설은 아니다. 물론 사랑스럽지만 현실적이고, 주인공들이 자신과 타인의 말과 행동에서 읽어내는 행간의 감정과 변화는 꽤 단단하게 묘사되어 있다.

 

12월의 어느 날, 움직이기도 힘든 만원버스 퇴근길. 주인공 로리는 기분도 별로였다. 그러다 우연히 본 창밖에서 눈이 마주친 남자. 눈이 마주친 둘은 각자의 선택길에서 망설이다 서로를 놓치고 만다. ‘버스에 타라는 신호를 담아 눈빛을 계속 보냈지만 그 남자의 움직임은 한 발 늦었고, 버스는 출발해 버렸다.

 

P16. 만약 누군가 내게 첫눈에 사랑에 빠진 적이 있는지 물어보면, 이제부터 나는 그렇다고 g야 한다. 20081221일의 어느 어느 눈부신 1분 동안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세라는 로리의 룸메이자 가장 친한 친구다. 같이 방을 쓰기로 한 그 날부터 마음에 쏙 들었던 아름다운 여자. 외모부터 성격까지 부족함이 없는 그녀다. 세라는 로리가 버스 창 밖으로 눈이 마주친 그 남자를 버스보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둘은 1년이 넘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버스보이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결국 그를 찾지 못한다.

 

그 후 다음해 12월의 어느 날. 로리는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버스보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버스보이와 로리, 세라, 오스카.. 주인공들의 복잡하게 얽힌 사랑 이야기와 그들의 묘한 심리와 감정들이 잘 들어나 안타까움과 아쉬움, 사랑스러움, 즐거움 등을 느껴가며 읽었던 소설이다. 또한 로리와 세라의 우정 이야기도 꽤 감동적이었다. 마음을 깊이 나누는 친구가 어떤 건지 그 둘을 보면 알 수 있다.

 

2008년 버스 보이를 본 이후 2017년까지 10년간의 그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 표지만 보고 생각했던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없어, 단숨에 끝까지 볼 수 없었던 소설. 12월의 어느 날. 지금 딱 어울리는, 읽어야하는 소설이다.

 

P42. 초록. 그의 눈은 초록색이다. 생생한 나무 이끼 색 홍채. 동공 주위로 배어드는 따뜻한 금빛. 하지만 지금 나를 이렇게 뒤흔드는 건 그의 눈 색이 아니다. 이 순간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그의 눈빛이다. 놀람. ‘알아봄의 번득임. 아찔한 정면충동의 충격. 그러다 그 눈빛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만 의심 속에 남겨두고. 방금 그의 눈에서 본 건 그간 쌓인 내 갈망의 에너지가 만들어낸 찰나의 상상이었나.

 

P243. “나는 항상 네가, 뭐랄까, 좀 더 어름스러운 일을 찾을 줄 알았지만.” 이러는 내가 나도 자랑스럽지 않다. 지금의 직장이 로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뻔히 아는 내가. 로리가 그 일에 누구보다 적입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그녀처럼 10대의 고민을 하찮게 보지 않고 그들의 문제에 성의 있고 친절하게 답해줄 사람도 없다. 내 모욕적인 언사가 그녀에게 상처로 맺히는 게 보인다.

 

P288. 나는 세라를 두 팔로 감싸고, 세라는 내 어깨에 머리를 얹는다. 세라가 잠이 들면서 숨소리가 느려진다. 나도 눈을 감는다. 기억을 떠올린다. 세라를 처음 만난 말, 잭을 처음 본 순간. 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 인생이 얼마나 뒤얽히고 복잡해졌는지. 우리는 삼각형이다. 하지만 변의 길이는 항상 변했다. 어느 것도 어느 한 순간도 동등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기보다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울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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