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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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텁텁한 삶을 채우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촉촉함.

삶은 달걀을 먹을 때 가끔 그런 느낌이 있다.
분명 텁텁한 완숙인데 그 노른자의 한 가운데의 점이 반숙인 상태, 그러니까 그 작은 반숙 한 점이 전체의 뻑뻑함을 상쇄하여 촉촉한 부드러움을 입안 가득 퍼트리는 느낌.
그게 은희경의 글이라 생각한다.

“생각의 일요일들”에서 카페에서 마주친 남자들이 나를 더 많이 쳐다봐주고 갔으면 좋겠다던 발랄함이,
“새의 선물”에서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처럼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라고 말하던 숭고함이,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불운의 총량은 어차피 수정될 수 없다고 말하던 “중국식 룰렛” 에서의 관념적 사유가 모두 투여되었기 때문에 은희경은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겠지.


2. 현재보다 완성도가 높은 과거, 그 밀도 높은 재현.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는 타임슬립의 플롯에서는 보통 과거보다 현재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은희경은 달랐다.
이런 구조의 책을 읽으면서 현재보다 과거를 더 궁금하게 만드는 힘, 타임 패러독스, 그러니까 과거의 당신이 무엇을 했길래, 궁금해 더 보여줘야 하지 않아? 이런식이다.
호기심의 폭발점을 현재가 아닌 과거에 두는 매력적 전개.
그게 바로 은희경이, 이 소설이 일궈낸 구조적 승리다.

“나에게 그날 밤은 그 무렵에 나를 둘러싼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나로부터 배신당한 시간이었고 끝나지 않는 고배의 여정이었다.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배신한 것인지도 몰랐다.” __(300p)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__(335p)


3. 결국 우리들이 만들어낸 역사, 역사가 있었어.

우리는 각자의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
가장 처절하고도 찬란한 역사는 개개인의 마음 속에서도 싹트고 무릇 자라나 만개한다.
나라의 역사, 지구의 역사, 더 나아가 우주의 역사만이 역사인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분투와 치열함 또한 고스란히 하나의 역사를 이룬다.

그래서 “에드워드 카”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1977년의 미숙함을 고스란히 닮은 2017년의 성숙.
그 역사의 현장을 복기하고 기록한 은희경이라는 역사가를 거부할 이유는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욕망이나 가능성의 크기에 따라 다른 계량 도구를 들고 있었을 뿐 살아오는 동안 지녔던 고독과 가난의 수치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일생을 그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해도 나에게만 유독 빛이 들지 않았다고 생각할 만큼 내 인생이 나빴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면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나의 수긍과 방관의 몫도 있다는 것을 알 나이가 되었다.” __(278p)


* 덧, 소설 속 소개팅에 나온 고전문학 등장인물과 작품 매칭
(안나 카레니나__톨스토이) 안나 - 브론스키
(좁은문__앙드레 지드) 알릿사 - 제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__괴테) 롯데 - 베르테르
(사랑할 때와 죽을 때__레마르크) 엘리자베스 - 에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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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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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표지까지 압도적인 소설집. 김금희 작가의 책은 “오직 한 사람의 차지”가 아닌 “모든 독자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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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기 있어요, 동물원 반달 그림책
허정윤 지음, 고정순 그림 / 반달(킨더랜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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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마음을 알려주는 건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게다가 그림책 최강자 허정윤 작가님의 책이라니! 많은 아이들이 꼭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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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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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때로는 새롭게,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덤덤하게.

저는 문학상 수상집을 즐겨보지는 않습니다.
뭐랄까, ‘당신이 이 소설 좀 읽어줘’라는 간절함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요.
물론 작가의 온전한 몰입에 의한 베풂에 비하면 제 얕음의
소치를 탓할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에요.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던 탓이겠지요.
흡사 어벤져스에 해당된다고 봐도 무방한 작가들이
때로는 새롭게(강화길, 권여선), 때로는 무겁게(이승우, 정지돈
김혜진), 때로는 덤덤하게(한강, 정이현) 속삭였어요.
이래도 읽지 않을 수 있냐고.
사무치지 않을 수 있냐고.


2. 제12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에 대한 작은 예찬

표제작인 ‘작별’은 한강 작가님 소설 중 가장 가독성이 좋은
작품이자 가장 허구성이 강렬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빡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__ (13p)

첫 문장을 보자마자 ‘프란츠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릅니다.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가요.
하지만 카프카가 잠자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에 대한 사유를 표현했다면, 한강 작가는 “관계”에 중점을 둡니다.
물론 한강 작가 특유의 묘사와 은유는 덤이고요.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길고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그들을 연결하는 실체로서 존재하게 되고, 그 실의 진동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투명한 접지가 몸 어딘가에 더듬이처럼 생겨난 까닭을.” __ (30p)


3. 명불허전 ‘이승우’, 하지만 이번엔 ‘정이현’.

독자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수상후보작 중에서 가장 새롭고 연신 감탄했던 작품은 이승우 작가님의 <소돔의 하룻밤>이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여러 사람의 시선으로 서사하는 구조가 만들어 낸 상상의 자유범위 확대가 돋보였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김유정 문학상 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작가 나름의 도전의식이 깃들다보니 단편 하나하나가 무게감있고, 뭔가 잔뜩 힘을 주어서 쓴 느낌이 강렬합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힘을 빼고 “나는 이래. 넌 어떠니”라고 물어오는 단편 하나가 가슴을 저미네요.
정이현 작가님의 “언니”라는 작품입니다.
‘영선’은 대학 조교로 일하는 어렸을 때 알던 언니 ‘인회’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갑니다.

“고통이라는 것이 현실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그 순간 너무도 선명히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알려 들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그 구체적인 세부를, 그 고통의 질감과 깊이를, 끝 모를 바닥을.”__ (193p)

가끔은 가벼운 것이 좋아요. 가끔은 무게를 내려놓고 깃털처럼 붕 뜨고 싶을 때가 있죠. 그러다 문득 현상을 자각합니다. 가끔은 가벼움이 주는 무게감이 더 크다는 것을.
나에게 그런 존재가 정이현 작가님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없는 사람. 나는 그 네 글자만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들여다볼수록 검정색 잉크가 눈동자를 깊게 파고들었다. 땅바닥이 좌우로 흔들렸다.” __ (2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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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편의 작품, 성(性)과 시대를 고찰하다> 심연의 본질을 터치하는 압도적인 묘사와 간결한 문체. 온전히 작중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으로부터의 침잠. 감정을 어루만져 공감을 끌어낸 수작(秀作)이라 감히 평가합니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지만,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자신만의 “케렌시아(심리적 안식처)”를 꿈꾸고, 공허감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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