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사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과 표지만으로는 무슨 내용일지 도통 짐작이 되지 않던 예브게니 보돌라스킨의 <비행사>. ‘러시아 문학’ 앞에서 잠시 쭈굴 모드가 되었으나(왜인지 어려울 것만 같은 편견...) 우려와 달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비행사>는 한 병원에서, 기억을 잃은 듯한 남자의 시점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남자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이유로 병원에 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며, 의사와 간호사가 자신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느낌만 받을 뿐이다.


자신의 신상이나 과거에 대한 질문을 해도, 의사는 ‘직접 기억해 내야한다’며 기억이 나는 모든 것들을 기록의 형태로 남기길 권한다.


남자의 신분이나 기억을 잃은 사유에 대해, 독자 역시 함께 몰입하여 추측을 하게 되는데... 조각난 기억이 맞춰지면서, 슬슬 남자의 정체를 눈치채게 된다. 


주인공인 플라토노프는 1900년에 태어난 남자로, 공포 정치 시대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힌다. 강제 노역에 동원되며 무생물보다도 못 한 대접을 받고, 각종 고문과 살인, 잔인한 행태를 목격하고 경험한다. 


솔직하게 쓰여진 묘사에 읽기 괴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덤덤하게 묘사했지만, 결코 덤덤히 읽을 수 없었던 것은 이 소설 속 사건들이 작가의 상상력만이 아닌, 실제 있었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좀 더 읽기 수월할 듯 하나, 지식이 없더라도 어려운 책은 아니다.  


생명을 겨우 부지하며 사는 거 같지도 않게 살아가던 그는 결국 인간을 냉동하는 실험에 동원되고, 기적적으로 몇 십년 후 해동되어 살아 남게 된 것이었다. 


그가 경험했던 끔찍했던 과거와, 그런 그가 죽지 않고 마주하게 된 미래인 현재. 플라토노프는 의외로 미래의(하지만 현재의) 삶에 잘 적응을 하는 듯 보이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가정을 꾸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의 일기를 통해 그가 혼란을 극복하지 못 했으며, 여전히 과거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나 보냈지만 자신이 겪지 못 한 세월의 조각들을 쫓으며 집착한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의미를 찾고 싶어하고, 그가 역사적 사료로써 남길 기대한다. 하지만 정작 그가 기억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모두 개인적인 기억들이다. 그가 어떤 정치적 상황을 겪었는지, 그런 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상황은 어떤지... 세상은 궁금해 하지만 정작 그의 관심사는 아닌 것이다. 


역사적 흐름과 흐름 속의 개인의 이야기를 함께 있는 예브게니 보돌라스킨의 <비행사>. 조금 지루한 구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예측할 없는 이야기의 흐름을 쫓는 재미가 있다. 러시아의 움베르트 에코라더니... 방대한 지식과 섬세한 서술이 돋보인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솔직한 감상을 적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꼭 읽어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라는 말로 소개하고 싶은 책, <사이보그가 되다>.


읽는 내내 든 생각은, '대체 이 책의 리뷰를 어떻게 남겨야 할까...'.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책이다.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썼다 지웠다, 또 썼다 지웠다 했다. (아마도 여러 번에 걸쳐서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초엽 작가와 골격계 질환으로 휠체어의 도움을 받는 김원영 작가가 장애에 대해, 장애와 테크놀로지의 관계에 대해 화두를 던져가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이다. 사는 지역, 성별이 다르며, 세대 또한 다르다(김원형 작가가 10살 정도 많다.). 장애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성질 또한 다르다.


때문에 장애에 대한 두 작가의 경험은 같은 듯 다른데,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흔히 생각하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장애인 +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비장애인 중심적인가'인데, 대부분 평소 전혀 깨닫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과학의 발전은 분명 장애가 있는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고 고통을 줄여나가고 있다. 나는 이러한 과학적 발견과 기술의 응용을 지지한다. 그러나 과학이 장애에 관한 정체성 물음을 '장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네가 인간이며, 조만간 그 장애는 극복될 것이므로 너는 더 '온전한' 인간 공동체에 포함될 수 있다고 전제하는 이상, 장애 그 자체의 의미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성찰해야 한다. 과학이 장애를 여전히 '없음의 상태(결여)'로만 바라본다면 휠체어는 기술적으로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여전히 보행 능력 '없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보조기기로만 간주될 것이다. 60p


흔히들 장애를 '비정상적인' 상태, '고치고', '극복해야 할' 상태로 본다. 과학 기술의 발전 또한 그들에게서 장애를 '없애'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미디어와 함께 장애를 동정의 대상,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정작 장애인들이 바라는 건 좀 더 편안한 생활... 장애를 가지고도 불편함 없이 사회생활 및 외부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들이 좀 더 잘 들을 수 있게- 혹은 걸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그런 기적을 '감동적'으로 표현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걸을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하기 보다 지금 당장 휠체어로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과 각종 시설들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가시적으로 드라마틱한 효과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기업들은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들보다, 먼 미래의 테크놀로지에 투자를 한다.


장애인이 기기의 도움을 받아 장애를 '극복'했다는 류의 광고들을 예시로 들고 있는데, 나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는 광고였다. 가령, 기가 지니 AI 음성 합성 기술을 적용하여 농인인 김 씨에게 '목소리'를 선물하는 과정을 담은 광고가 있다(나는 책을 읽고 찾아봤다.). 김초엽 작가는 <그러니까 기가 지니가 김 씨에게 선물한 '목소리'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청인들이 청각장애인에게서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다.>라고 지적한다. 한 번도 그러한 시선으로 생각해 보거나, 잘못된 점을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미디어에서 보여주고 홍보하는 그 기술들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거나 이용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휠체어나 보청기의 가격 또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고, 기본을 지키는 일 마저도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그에 이어 역시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은, 만약 그 기술을 소비할 재력이 된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 기술에 '자격'을 매긴다는 점이었다. 스티븐 호킹 박사나 아이언맨 같은 영웅이 첨단 기기,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일반 장애인이 그런 기술을 사용할 때는 의문스러운, 곱지 않은 시선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보조 기기를 이용함에 있어서도 능력주의가 따라온다니... 여러모로 웃음만 나오는 이야기, 현실이었다.


이외에도 두 작가가 던지는 화두나 이야기는 모두 함께 생각해 보고 고민해 봄 직한 내용들이다.


마지막 장은 두 작가의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대담만 보더라도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조사와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챕터 하나 쉬이 읽히지가 않았다.


모두가 읽고, 더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학교에, 직장에, 거리에 좀 더 많은 장애인들이 활동하고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어렸을 땐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그 가치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왜 어느 것 하나 쉽지가 않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출판사에서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금전적 대가 없이 솔직하게 작성한 평입니다*

그 미래는 언젠가 노화하고 취약해지고 병들고 의존하게 될 모든 사람이 마주할 미래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어떤 시기에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밀려난 존재가 된다. 단지 그것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 사이보그를 이야기하는 것이나 기술과 취약함, 기술과 의존, 기술과 소외를 살피는 것이 결국 모든 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다. 독립적이고 유능한 이상적 인간과 달리, 현실의 우리는 누구도 취약함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 P40

과학의 진보가 언제나 장애인 삶의 진보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기술에 대한 기대는 때로 장애를 대상화하고, 장애 극복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기여해 왔다. 산전 검사, 유전자 치료, 인공 와우, 보철과 같은 진보한 기술들은 종종 장애의 존재를 아예 제거하거나, 장애를 ‘유난하게‘ 교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 P18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뭐든 다 배달합니다
김하영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배달 기사가 인터뷰한 것을 보게 되었다. 흘리듯 보았는데, 배달이 늘어 배달 기사가 떼돈 번다고들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라는 요지였다. 


코로나로 인해 외식이 어려운 상황에서, 원래도 배달의 민족이었던 우리나라는 이제 정말 배달하지 않는 가게를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배달이 작년 대비 90%가량 늘었다는 이야길 들으며 나 역시 ‘배달 기사들은 돈 많이 벌겠네...’라고 언뜻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은 <뭐든 다 배달합니다>이지만 배달업만을 다루고 있진 않다. 쿠팡 피커맨, 배민 커넥트, 카카오 대리기사 등의 플랫폼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가 직접 200일간의 기간 동안 해동 업종에서 근무를 했고, 그러면서 알게 된 정보나 경험담이 담겨있다. 


해당 업종들은 한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전면으로 내세워, 젊은이들은 물론 나이가 드신 분들도 많이 찾는 일자리라고 한다. 하지만 결국 비정규직, 최저 시급 또는 그보다도 적은 급여를 받게 되고 그 어떤 제도도 보호해 주지 않는 일자리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책의 3/4 가량은 저자가 쿠팡, 배민, 카카오에서 플랫폼 노동자로 근무했던 수기가 적혀있으며 마지막 1/4 가량은 우리나라의 특수 노동자, 비정규직의 현실과 부의 불균형을 꼬집고 있다. 


플랫폼 노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가볍게 읽기에 나쁘지 않은 책이다. ‘어떤 일을 하지?’라는 단순한 질문에 답변이 될 수 있다. 


좀 더 심도 있는 이야길 원했던 입장에선 많이 아쉬웠다. 세 업종에서 총 일한 일수가 200일이니... 어떤 직업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기엔 짧은 기간이다. 저자의 수기는 굳이 일해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한 수준이었다. 실제 관련 업종에 오래 종사한 이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다른 부분도 많았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꼬집은, ‘산업만 있고 사회는 없는’ 현주소에 관해서는 공감한다. 계속해서 산업은 발전하고 일자리는 변화하는데... 모든 책임과 부담을 개인이 다 짊어지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솔직한 감상을 적었습니다 :)

그런데 울고 싶은 건 영세 자영업자뿐만이 아니다. 편의점 사장님들은 모여서 시위라도 하지만, 최저임금 받는 408만 명 노동자들이 모여서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지키라"라고 시위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나. 편의점 알바들이 "교통비와 식대를 보장하라"며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내가 쿠팡에서 일을 하다 너무 힘들어 "시급 1만 원은 받아야겠다"고 주장하면 받아줄까? 하루마다 새로 계약하는 내게 쿠팡은 그저 "죄송합니다. 공정 모집이 마감됐습니다"라고 문자 한 통 보내면 그만이다. 나는 쿠팡에 얼씬도 할 수 없다. - P41

새로 생겨나는 좋은 일자리들은 진입장벽이 높고 점점 그 수가 적어지고 있다. 대신 최저임금 수준의 단순 업무 일자리가 늘어난다. 그 결과가 지금의 불평등이다. 21세기 불평등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인적 자본의 양극화다. - P226

어느 정책이든 완벽할 수도 100%를 만족시킬 수도 없다. 1보 전진을 위해서는 반 보 후퇴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항상 1%의 프리라이더, 블랙컨슈머, 좀도둑이 생기는 꼴은 못 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99%를 포기한다. - P2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이 시끄러울 때는 책 역시 소화가 잘 되는 책을 골라 집어 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선택이었던 백수린 작가의 산문 <다정한 매일매일>.

요즘같이 조금은 쳐지고 우울감이 느껴질 때. 추운 날씨와 함께 마음까지도 얼어버린 듯한 시기에 읽기 좋은 책이다.


백수린 작가의 글은 단편 소설을 제외하고는 처음 접해본 것이었는데, 야금야금 조금씩 떼어먹고 싶은 단단하면서도 달콤한 스콘 같은 글이었다. 조금씩 아껴서 먹으려 했지만, 그 매력에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마는...! 아껴 읽어야지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마지막 장을 덮고 말았다......


<내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읽고 쓰는 나날을 기록한 소박한 글들이 온기, 라는 단어와 어울렸으면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고양이가 앉았던 자리만큼의 온기가 되어주었으면. 이상하고 슬픈 일투성이인 세상이지만 당신의 매일매일이 조금은 다정해졌으면. 그래서 당신이 다른 이의 매일매일 또한 다정해지길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여유를 지였으면. 다정한 매일매일, 백수린, 6p>


작가의 말부터도 서윗-한 이 책에는 빵과 책이 어우러져 있다. '빵'에 관한 에세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책까지 더해져 있다니... 마침 최근 읽고 있던 책 또한 부부가 함께 책에 관한 단상을 담은 <우리는 나란히 앉아 각자의 책을 읽는다>여서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책에 관한 책은 모르는 책이 나오면 모르는 대로, 아는 책이 나오면 아는 대로 반갑기 마련인데 특히 <다정한 매일매일>에선 나의 최애 책들이 많이 등장해 더 반가웠다.)


작가가 푹 빠져있는 취미인 베이킹, 빵과 함께 떠올린 책뿐만 아니라 소설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더욱 즐거웠던 <다정한 매일매일>.

머물며 소리 내어 읽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는데, 작가의 다른 책들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중간중간의 따뜻한 삽화들도 좋았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너무 좋았던 ...ㅠㅠ

내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읽고 쓰는 나날을 기록한 소박한 글들이 온기, 라는 단어와 어울렸으면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고양이가 앉았던 자리만큼의 온기가 되어주었으면. 이상하고 슬픈 일투성이인 세상이지만 당신의 매일매일이 조금은 다정해졌으면. 그래서 당신이 다른 이의 매일매일 또한 다정해지길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여유를 지였으면. - P6

올해는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처럼 억지로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어떨까? 마치 내일이면 세상이 끝장날 것처럼 모든 일을 당장의 손해와 이익으로 계산하지도 말고. 싫어하는 노래를 다른 사람들이 부른다고 해서 억지로 따라 부르지 않는다면. 고통을 쉽게 외면하거나 누군가의 상처에 대해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면. 새해에 당신과 내가 들여다보았으면 하는 것은 오직 마음 - P58

우리는 살면서 사랑하려 애쓰거나, 그러지 않거나 두 가지밖에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렇다면 가능한 한 나는, 언제나 사랑의 편에 서고 싶다. - P193

사람들은 쉽게 타인의 인생을 실패나 성공으로 요약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좋은 문학 작품은 언제나, 어떤 인생에 대해서도 실패나 성공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 P2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틀거리는 소
아이바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년 전에 일어난 미해결 사건을 수사하게 된 다가와. 한 프랜차이즈 선술집에서 벌어진 강도 살인 사건으로 피해액은 58만엔 정도이지만, 두 명의 남자가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당시 단순 강도 사건으로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진행했으나, 범인은커녕 용의자도 특정하지 못 한 사건이었는데… 집요하게 사건을 파고들던 다가와는 이 사건이 단순 강도 살인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회파 미스터리’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아무래도 화차의 미야베 미유키나 종이달의 가쿠타 미쓰요인데, 그래서인지 경제 문제나 금융권의 이야기일 거라 생각을 했다. ‘비틀거리는 소’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닐까? 그런데 정말로 소가 등장하는 이야기로 ㅎㅎ 대기업의 상권, 유통 독점뿐만 아니라 정계 유착, 식품 위조를 낱낱이 파헤치고 비판하고 있다.

읽는 내내 소설이 아닌 한 편의 르포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데,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들인 탓이다. 그래서일까. 읽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대기업의 독점이나 소상공인들을 위협하는 시장 형태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는 항상 있다. 나 역시 항상 동의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기를 하나 일부러 개인이 운영하는 업장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기를 하나… 핑계를 대자면, 하고자 하는 마음은 늘 있으나 접근성이나 편리성에서 늘 지고 마는 것이다… 이게 안전한 먹거리가 맞는지, 반신반의하면서도 편리함에 그냥 구매를 한 적이 있지는 않은지…? 많은 반성과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소설.

아이바 히데오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는데, 이 ‘비틀거리는 소’는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한 게, 범인과 동기를 추적하는 과정의 짜임새가 촘촘하고 정교하다. 어느 정도 범인이 밝혀진 상황에서도 긴장감은 이어지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울컥… 눈물이 났다.

대부분의 일본 소설이 그러하듯이 너무 비장한 감이 있고, 결말은 판타지같이도 느껴진다. 하지만 소설이 아니라면 언제 이런 결말을 볼 수 있겠나 싶다…



#도서협찬 #비틀거리는소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았으나 솔직한 감상을 적었습니다 :)

"편리해 보이는 서비스는 많지만, 그건 인프라가 갖춰진 도시에나 해당되는 얘기지. 그 모친은 전형적인 쇼핑 난민이었어."
(중략)
"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니, 이게 무슨 도시예요." - P111

디스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소비자의 저가 선호가 강해진 까닭에 판매자는 납품가를 낮추려 했다. 제조업자는 한층 더 압박을 받았다. - P2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