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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버는 여자 밥 잘 하는 남자 - 맞벌이 부부의 가사분담 이야기
알리 러셀 혹실드 지음, 백영미 옮김 / 아침이슬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점심은 식탁위에 차려 놓았으니까 먹고서 다음 주가 시험이니까 사회 ○○페이지까지 밑줄 그으며 2번 읽고, 내일 단소 수행평가 있으니까 5번 연주해야해…”
오늘도 어김없이 3시 반이 되면 이선생님은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아들과 통화를 한다. 늘 이런 대화를 아들과 하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지만 아울러 미래의 내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자녀를 둔 이선생님(48세). 맞벌이를 하고 있는 그녀는 최근 들어 자녀의 사교육비 과다 지출로 인해 점심도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회사 창립 이래 초창기 멤버로써 10년 근속을 했지만 회사에서는 그녀가 자녀들의 학교 일 때문에 회사일에 몰입하지 못하고 자주 자리를 비운다거나 늦은 출근과 칼퇴근을 한다는 이유로 암묵적으로 사직을 권고하고 있다. 이선생님도 그만 둔다 그만 둔다 라는 생각을 2년째 하고 있지만 일을 그만둠으로써 겪게 될 가정의 경제적 위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은 매우 성실하지만 성과에 따른 일자리라 이선생님은 지금 하는 일을 쉽게 그만 둘수 없는 상황이다.
“당신은 내 보험이야” 어느 대학원 박사과정선생님의 남편이 하는 말이다. 강선생님의 남편은 유명 전자회사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연구원으로의 생명력은 매우 짧고 그래서 불안함을 느낀 남편은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가정에서 전업주부로 있는 아내에게 공부를 더해서 직업을 갖는 것은 어떨지 제안하였다. 학업에 대한 열의가 있었기에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가사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강선생님은 매번 시간에 쫓겨 살고 있다. 수업이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반쯤 풀린 눈을 하고서 나타나서는 “오늘 핸드-아웃 자료 있어? 나도 복사 좀 해줘”라는 말을 건넨다. 어제도 초등학생인 아이의 학업을 봐주고 밤 12시에 들어온 남편에게 저녁을 차려준 후 대학원 과제물을 하다가 거의 밤을 샌듯하다. 이 수업시간이 끝나면 총알처럼 집으로 달려가 아들을 맞이해야 하고 밥을 먹인 후 학원을 보내야 한다. 학업을 즐기는 강선생님은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낄까?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이모씨(44세)는 자녀의 등교시간에 맞춰 함께 출근을 하고 하교시간이 되면 허겁지겁 품 안에 한 가득 일거리를 안은 채 퇴근을 한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려 피곤도 할 법하지만 그녀에게는 쉴 '여유'가 없다. 어린 자녀와 남편을 위해 저녁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밀린 빨래와 청소도 해야 한다. 이렇게 바쁜 일상이 쳇 바퀴마냥 반복된 것도 어언 9년재, 그녀는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곤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근래 들어 이런 사식을 할 시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한다.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 남편 옆에서 잠들기 전 잠시 사색을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유일한 '여유'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맞벌이 가정이 시대적 조류로 자리 잡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가정 안과 밖에서는 여전히 가사와 육아에 힘들어하는 여성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있다. 아니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세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여성이 경제시장에 뛰어든지 오래지만 아직도 여성의 경제활동은 '선택'이고 가정을 돌보는 것은 여성에게 '의무'라 보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현대 들어 대다수의 남성들은 '아내가 일 하길 바란다'는 마음의 속내를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내비추기 시작하였고, 이제는 여성의 경제 활동이 집안일처럼'의무'라 말하기 시작한다.
여성의 산업경제에의 뒤늦은 편입은 남녀관계, 부부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이혼률의 상승, 변화한 여성과 변하지 않은 직장․사회 간의 긴장을 발생(‘지연된 혁명’) 시켰다. 혁명이 지연된 사회는 맞벌이 부부의 삶을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고, 가사를 분담하는 남성들이 드문 사회, 이러한 긴장 때문에 많은 남녀들이 맞벌이 부부되기를 꺼리고 있다. 이 책의 연구관심사는 맞벌이를 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부부들을 통해 현재의 경제 구조와 지연된 혁명 하에서 맞벌이 가정들이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가를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연구에서는 가사분담의 경제적, 심리적 측면 뿐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가지고 있는 성 이데올로기, 표면적인 성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내면의 이데올로기 등을 탐색하였다. 성 이데올로기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중요시 해 집에서 하는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남편을 그의 직장일과 동일시 해 남편보다 적은 힘을 갖기를 원하는 [전통주의], 남편이 하는 일과 자신이 하는 일을 동일시하고, 결혼 생활에 똑같은 힘을 갖기를 원하는 [평등주의], 자신을 집안일과 직장에서의 역할 모두에 동일시하는 [과도주의]로 구분하였다. 연구 과정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남녀의 역할에 대해 말하는 것과 그러한 역할 구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일치하지 않기도 하고, 과거에서 비롯된 감정과 사회적인 관념을 무의식적으로 종합하여 성 이데올로기를 만들거나, 또한 현실 상황을 고려해 성 이데올로기 만들기도 하며, 남성의 경우 성 이데올로기를 실생활에 적용할 때 의식/무의식적으로 성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성 이데올로기의 균열, 당위적 감정과 실제적 감정 사이의 갈등, 내적 요구, 외적 조건으로 인한 성이데올로기의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의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파악하였다. 각각의 부부들은 가족신화(family myth)를 만들고 있는데, 이는 진실을 은폐하여 가정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관념적 현실을 예를 들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는 신화, ‘직업상 어쩔 수 없다’는 신화 등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회 각계각층에 포진되어 있는 맞벌이 부부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이제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맞벌이 부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시대에 맞는 맞벌이 부부 및 가족의 심리적인 복지향상을 위한 사회 전반에 걸친 지원과 인식의 변화와 사회적 차원의 교육의 필요와 다양한 교육 및 복지프로그램의 개발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에 따라 맞벌이 부부의 심리적인 복지를 위한 견해를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맞벌이 부부의 심리적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변인인 부모역할갈등에 있어 남편보다 부인이 더 큰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여전히 가정내에서 부인이 자치하는 역할 비중이 남편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역할에 다른 심리적 부담감과 책임감 등이 과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부인의 부모역할갈등의 수준을 낮추는데는 남편의 지지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남편은 가사도움이나 자녀양육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부인과의 상호보완적인 부모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갈등을 예방하고 부모로서의 어머니와 대등한 아버지상을 정립하여 심리적 안정을 찾고 보다 나은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맞벌이 부부의 부인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높이고, 자신을 위한 직업생활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긍정적 사고와 함께 자부심과 자아실현을 이루고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시간을 자신에게 할애하여야 한다.
또한 직장생활에서 경험하는 스트레스가 심리적 복지 수준을 낮추는데 기여한다고 본다. 남편과 부인 모두 자신의 직업에 보다 충실하고 만족한 결과나 희열을 느끼거나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적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부모역할에 대한 갈등이 감소한다. 개인의 생활만족도 등 전반적인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한 직업적인 기술 능력향상이나 만족도를 증진시키고 자신의 배우자에 대한 협력 또는 지지가 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자녀양육에서 있어 상당 부분 맞벌이 부부가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에 의한 양육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률적인 시설의 교육에 반하는 보육정책이 자녀의 나이에 적합하게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