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자연과 미디어 - 고래에서 클라우드까지, 원소 미디어의 철학을 향해 컬처룩 미디어 총서 12
존 더럼 피터스 지음, 이희은 옮김 / 컬처룩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커뮤니케이션이 세상에 일어나는 작용일 때, 미디어는 무엇이 되며 그 미디어를 인식할 때 어떤 또다른 커뮤니케이션(생성)이 가능한가. 이전 내용(형상)을 질료삼아 계속 전개해나가는 책. 읽기 어렵지만 겨뤄볼 가치가 있다. 주기적으로 꺼내읽는 책. 독서 전후가 삶에 영향을 준 몇 안 되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증명과 변명 - 죽음을 계획한 어느 청년 남성이 남기는 질문들
안희제 지음 / 다다서재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사실 이 책이 공존에 관한 믿음을 가지고, 우정을 무기삼아 (자기)재현에 대해 고심하는 책으로 읽혔다. (스스로도 젊은 축에 속하는 남성이지만) 젊은 남성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추구하는 책이라기보단, 한국에서의 젊은 남성 재현을 '다르게' 시도해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상을 복잡하게 바라봐야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복잡성을 전제한 재현은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보려는 시도에 가까울 것이다. '다르게'와 '있는 그대로'는 늘 비슷한 선상에서 도달할 수 없는 이해를 향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애초에 저자와 인터뷰이는 하이픈으로 묶이기 어려운 차이, 즉 둘다 '젊은 남성'이라는 범주 안에 욱여넣기 어려운 관계 속에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또 내가 살아가며 온오프라인에서 접하는 '젊은 남성'과 이 책 속의 두 남성은 사뭇이라는 부사로 묘사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다. 일단 거울 속의 일그러진 나의 모습과 책 속 두 젊은 남성과의 차이 또한 그러하다. 분명 닮은 점도 있지만 그저 무작위로 개인을 골랐을 때 나타날 법한 공통점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은 '나이' 하나로, 지정성별 하나로 같은 범주로 '우리'로서 재현된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하지만 이 이상함은 너무 당연하다. 너무 당연해서 어떻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도 잘 모를 때가 있다. 같은 범주 속 다른 젊은 남성이 어떤 양상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이들을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이나 어렵다. 그럴 때는 이 책처럼 아주 구체적인 대상으로부터, 그리고 나를 둘러싼, 나에게 밀착한 세계로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그것도 이미 충분히 어렵다.


그리하여 이 책이 마주하는 질문, <'젊은 남성'에 대한 복잡성을 내가 왜 알아야 하지?>, 조금 더 거부감을 반영한 직관적 표현으로 쓴다면 <이대남 이야기를 왜 읽어야 하지?> 아마 이 책의 저술 과정에서도 작가는 그런 두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에게 물어가면서 쓰지 않았을까. 그리고 실제로 그런 질문을 독자로부터 맞닥뜨리고 있지는 않을까. 이 책 너머에서, 즉 이 책의 독해과정과 책을 덮은 이후에 생겨나는 텍스트들은 이 질문과 다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의도했든 안 했든, 이 책은 독자에게 위와 같은 질문과 만나게 한다. 그리고 "질문을 비판하는 것에 의해 행해지는 새로운 질문의 발견과 개념의 창조 [...] 들뢰즈에 의하면 그것이야 말로 질문을 발견하고 유일한 방식이고, 개념을 창조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요새 내 세계에 침투한 극우 콘텐츠를 열심히 보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대답이 생긴다. 대척점으로 놓인 듯한 이들을 단순하게 악마화하거나, 무지몽매한 이들로 고정시켰을 때,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나의 사고 또한 절대 사유가 될 수 없다는 확신이 든달까. 결국 나는 이들과 같은 세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로 일치하지 않는 단편과 같은 합성요소로 억지로 응축"**해서 생겨나는 것이 개념이라는 관점에서 각각의 단편은 복잡해질수록 괜찮은 사유가 나오지 않는가? 그 사유가 무엇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몰라야 하지만.


*고쿠분 고이치로 <들뢰즈 제대로 읽기> 박철은 옮김, 2015, 동아시아, 42쪽

**위의 책, 4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물의 시간 - 서로를 책임지는 느린 존재들의 이야기 오봄문고 5
안희제 지음 / 오월의봄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식물을 집에 들이면서 식물과의 관계 맺기 시작한다. 이 말만 보고 '식물도감'으로 책이 흘러갈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식물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저자의 끈질긴 고민이 책의 처음과 끝이다. 그 '고민'을 재현에 대한 책임, 혹은 재현 윤리라 부를 수 있겠다. 그 고민은 다큐멘터리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삶을 카메라나 펜을 통해 들여다보려는 모든 이들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무이다. 


 그 고민을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이 책을 일독, 아니 2,3독을 권한다. 자신만의 재현 윤리를 세우는 사람도 드물 뿐더러, 재현관을 정립한 후엔 고민을 멈추는 경우를 보일 때도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식물의 시간>에서 '차이'를 자신이 보고 싶은 바에 맞게 조작하지 않고, 혹은 조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계속 검토하며 "차이가 생동하는 관계"(98쪽)로 나아가려는 저자의 시선은 유의미하다.


 대상화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재현에 있어 주체-대상의 구분은 필연적이다. 다만, 그 필연성을 무기삼아, 혹은 재현의 취지가 도적적이고, 소수자/약자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것을 면죄부처럼 이용하여 대상화를 오남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인터뷰이를 찾아가고, 그들의 삶을 주장의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 파편화한다. '이런 말'을 해달라며 카메라 뒤에 숨어 (뻔뻔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저자가 인용한 '유도체화'의 단면이기도 하며 그 끝판왕은 어쩌면  일부 '기사'일 수도 있겠다. 


 반면, 저자는 식물에 대해 말하기 위해 우선 자신의 위치를 점검한다. '반려식물'을 말하기 위해 '반려인간'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조정한다. 스피박이 지적하듯, 서구 지식인의 재현 문화엔 '거리두기'가 뿌리깊이 박혀있다. 그는 '재현representation'을 뜻하는 두 가지 독일어 단어인 표현Darstellen과 대표Vertreteng 중 대표로서 재현하는 자세를 취하기를 요구한다. 단언컨대 <식물의 시간>에는 대표로서 재현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 곳곳에 스며있다. '인간과 같은' 식물이 아닌 '식물과 같은' 인간으로 접근하며 그는 '식물인간'으로 자신을 호명한다. 식물을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108쪽)로 보자고 제안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식물의 꿈을 꾸며 식물인간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109쪽)  


 잡초에 관한 단상에 이르러 그의 응시/행동은 몇 걸음이고 더 나아간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책 전체를 읽기 어렵다면 잡초에 관해 이야기한 127~129쪽이라도 꼭 접했으면 한다.) 잡초는 불현듯 등장한다. 선택하지 않은 존재가 기존 질서에 개입한다. 사실은 이미 전부터 꾸준히 있었지만 어느 순간 시선을 강탈한다. 느린 존재로서의 식물을 말하면서도 그 안에 호명되지 않은 또다른 존재가 있는 것이다. 있지만 없는 존재, 즉 유령의 소환은 기존 질서의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미 잡초를 "생이 있는 식물"(127쪽)로 바라보게 된 저자에겐 균열을 통한 재배치가 일었다. 저자는 그 균열을 '차이'로서 환대하고자 갖은 노력을 한다. 잡초를 따로 화분에 옮겨 심으며 벌어지는 시행착오의 과정, 그럼에도 잘 자랄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저자의 시도를 읽으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벅차오름에 가까운 이 울렁거림을 나는 대개 희망을 볼 때 느낀다.


 어젯밤, 에필로그를 덮으며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기분이었다. 책 자체가 미시에서 시작해 거시로 확장되는 흐름이라 그런지 몰라도, 재현과 소통에 대한 부단한 고찰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시작이 어떻든"(76쪽)  이 책이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재현을 시도하는 모든 이들이 읽어야 한다는 확신에 가까운 판단이 들었다. 저자는 인류학 전공자로서 필드워크를 하며 카메라를 들며 재현에 관해 직접적으로 고민하기도 한다. "그 사진들로 다른 사람들이나 나 스스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던 걸까. 이런 고민 없이 계속 사진을 찍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144쪽) 


 재현을 목표 삼는 대부분의 제작/창작자들의 시선은 과연 <식물의 시간>저자가 수행한 재배치까지 닿고 있는가. 데리다는 인간의 우정은 무한한 이질성의 견지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친구는 유사한 정신이나 영혼을 가진 이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한 사람과 또 다른 이와의 우정은 실제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나 정의처럼 언제나 여전히 다가오는 것이라 주장한다. 저자는 식물과의 관계에서 그 생동하는 '우정'을 발견한 듯 보인다. '대상'을 '피사체'를 넘어 '우정'을 나누는 관계로 보는 감각을 가진 또다른 재현자/대표자들의 출현을 기대한다. 이 책은 분명 대표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꽤 깊은 잔상을 남길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러하였다.


 "피사체들의 역사를 내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잘 알기에"(145쪽) 찍지 않지만 여전히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는 그가 혹시라도 찍을 다큐멘터리가 기다려질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아찔한 노동 현장이 세세히 기록돼 있다. 기록의 힘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책.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둑맞은 손 - 살아있지만 인격의 일부라고 말할 수 없는 인간적인 어떤 것에 대한 법적 탐구
장 피에르 보 지음, 김현경 옮김 / 이음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몸을 물건으로 볼 수 있는 이유에 비해 성스러운 물건으로 봐야할 이유에 대해선 설득되기 어려웠다. 절대적인 무언가..에 의존해 논리를 풀어나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인격을 성역화한 현대를 천 년 후엔 중세 보듯 볼지도 모르겠다. 더 과감한 책을 읽고 싶다. (읽고 소화할 자신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