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ㅣ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우리는 살아가다 가끔씩 어떤 책에 대해 이야기 해야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흔히 담론의 주제가되는 책에 대해 읽지 않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런일은 비교양적이라고까지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우리가 읽은 책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었다'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꼭 어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어야만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가? 사실 책 읽기에는 여러가지 수준이 있으며 독서라는 말은 아주 상이한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저자는 비독서의 방식은 어떤것들이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읽지 않은 책에 관해 이야기 하게되는지 그리고 그 대처법에 대해 우리에게 일러 주고 있다. 


비독서의 방식은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독자라 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극히 일부를 읽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어떤 책에 대한 관념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의 개별성을 넘어 그 책이 다른 책들과 맺는 관계에 관심을 갖는 다면  하나의 책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책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갖게될 수도 있다. 그런의미에서 교양을 쌓는다는 것은 이런 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속에 놓을 수 잇다는 것이다. 사실 책에 대한 담론은 어떤 책에서 다른 책으로 금방 옮겨가버리기 때문에 전체속에서 책들의 관계를 숙지하고 있다면 읽지 않더라도 낯선 책이 아니며 그 책에 대해 토론을 하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두번째는 책을 대충 훑어 보는 경우이다.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대충 훑어본다고 해서 책에 대한 평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부 사실에 길을 일게 될 위험을 피하면서 책을 제 것으로 소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세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 한 경우이다. 책을 읽지 않고도 아주 명확한 관념을 형성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이 있는데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 책에 대해 쓴 것을 읽거나 아니면 그책에 대해 하는 말을 듣는 것이다. 사실 책이란 그 자체로 한정되는 게 아니라, 유포된 사람들이 그 책에 대해 주고받는 일련의 교환 전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는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이다. 독서는 단순히 어떤 텍스트를 인식하는 것, 혹은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은 아니며 읽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어쩔 수 없는 망각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또한 독서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책에 대해 대화를 한다기 보단느 상황에 따라 다시 손질된 불명확한 기억들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책은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면 펼쳐 본 책이건 그렇지 않은 책이건 모든 책은 결국 다른 어떤 책과도 같은 것이며 여기서 독서와 비독서의 경계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약호표인데 자신이 인용하고 있는 수많은 책들을 앞서 이야기한 비독서의 방식에 따라 UB-전혀 접해보지 못한 책, SB-대충 뒤적거려 본 책, HB-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책, FB-읽었지만 내용을 잊어버린 책으로 분류해서 표시해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책을 쓰고 이야기를 하는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실천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어떤 책에 관해 이야기할때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은 사실 각자가 속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에게 이해된 방식의 다른 책들이며 그러기에 어떤 누구도 정확히 같은 책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다. 또한 책 읽기란 어쩔 수 없는 망각의 연속이므로 결국 어떤 책을 읽어서 지식을 습득한 경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경우 혹은 대충 읽은 경우라도 본질적으로 차이점은 없다는 것이다. 즉, 책은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라 유동적인 오브제임을 인정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책들과 책들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 특정 책을 읽었다는 사실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 책에 대해 이야기 할 경우 자신이 특정 텍스트를 읽지 않았다고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으며 자신감 있게 이와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필요하다면 책 내용을 꾸며내거나 책을 통해 자신을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러한 담론의 상황들을 대처해 나갈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단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어떻게 담론을 펼쳐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기술을 나열한 책이 아니다. 사실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이며 내용 또한 잘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파묻혀 기계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경우 책 읽기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책 읽기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교양의 쌓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것 혹은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책 읽는 행위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텍스트에 파묻혀 기계적으로 책을 읽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과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해주며 우리를 보다 창조적이고 열린 책 읽기의 세상으로 안내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