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역사 3 - 군상(群像):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 땅의 역사 3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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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수험서로는 불량하고 교양서로는 불온하다.

이 땅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잔뜩 삐뚤어진 이야기를 이 책은 담고 있다.

 

땅의 역사를 펼치자 작가의 '이 책을 읽는 법'에 나와 있는 글귀가 강렬하게 마음을 사로잡았다.

학교에서 교양을 위해 가르치던 포장된 옛이야기가 아닌 조금은 아프더라도 민낯이 공개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땅의 역사를 읽어보게 되었다.

30년 차 여행전문기자 박종인 저자가 집필한 땅의 역사는 몇 년 전에 같은 이름의 TV프로그램으로도 방영이 되었으며, 책은 시리즈로 나오고 있다.

1권 소인배와 대인들/ 2권 치욕의 역사, 명예의 역사를 거쳐 3권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에서는 조선시대에  벌어졌던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왜곡되거나 은폐되었던 사실을 써 내려간 책이다.

08. 흙으로 만든 국과 종이로 만든 떡을 누가 먹으랴!

실용주의 관리 서유구는 화훼와 음악, 회화와 건축, 기상과 천문과 의학과 문화예술, 가정경제까지 다룬 내용을 한자로 250만 자가 넘는 '임원경제지'라는 백과사전을 30여 년의 세월 동안 집필한 학자이다.

정조 이후 혼란의 시대 속에서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간 서유구는 18년 후 정계에 복귀할 때까지 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며 큰 깨우침을 얻었는데, 실용주의 가풍 속에서 성장한 그였지만 현실에서 느끼는 사대부와 백성의 생활 차이는 컸던 것이다.

그래서 서유구는 방향을 틀었다.

공자 왈과 맹자 왈을 담은 경서와 현실적 준비 없이 세도정치의 모순을 깨뜨리겠다는 이상주의적  경세론은 '먹지 못할 흙 국이요 종이로 만든 떡 (土羹紙餠)이니,

자기는 백성이 현실에서 스스로 부국 할 길을 트겠다는 것이다.

 

서유구는 경세론을 포기하고 농촌 경제를 열여섯 분야로 나눠 설명한 '임원경제지'를 만들어 직접 국을 끓이는 방법, 먹을 수 있는 떡을 만드는 방법, 밭고랑 간격과 깊이에 따른 농사법, 구리/철과 같은 금속을 채취하고 가공하는 법, 물건을 사고팔 때 가까운 장터는 몇 리쯤 되는지 거리표 등까지 삽입해 놓은 실용적인 책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만의 힘으로 바꿀 수 없듯이 '임원경제지'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세상 빛을 못 보다가 1930년대 식민시대, 조선 지식인계에 국학 부흥 운동이 벌어지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다산 정약용과 함께 실용주의 철학으로 눈길을 끌게 되었다.

땅의 역사를 읽으면서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파트다.

책을 읽기 전에 차례를 쭉 훑어보았을 때 왕과 유명한 정치인 외에는 아는 역사적인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서유구라는 인물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읽게 되었는데, 읽을수록 너무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혼자서 방대한 내용을 정리해서 만들었다는 점도 놀라웠고, 실생활에서 꼭 알아야 되는 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심지어 장터의 거리까지 표기가 되어있다니, 이 분은 조선시대 내비게이션을 만드신 것이다.

서유구가 벼슬에서 물러나 여러 차례 이사를 하면서 힘든 일을 하고 궁핍하게 살게 되면서 손에 못이 박혔는데, 이 손을 본 어머니 말씀하시길 "도시에 살면서 호미도 못 알아보며 배에 곡식 채우고 몸에 비단 두르는 이들은 천지를 훔치는 도적 놈이로다" 이에 서유구가 각성을 하고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이 열렸다고 한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역사 책은 참 재미없고 지루한 이야기의 나열로 느껴질 수 있다.

나 역시 역사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아는 내용이 나오거나 재미있는 내용이 전개될 때 몰입도가 높지 중간 중간 출처와 한자가 섞이면 힘이 들어진다.

땅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재밌는 내용들의 조합은 아닐 수도 있고, 소설처럼 쉽게 풀어쓴 책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깊은 끌림과 읽을 때마다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에 가슴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그 두근거림이 억울하고 슬퍼서 먹먹하기도 하고, 설레며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우리 땅의 곳곳에 이런 사연이 있다는 것에 존경심을 표한다.

땅의 역사 곳곳에 삽입된 사진과 글을 보면서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며 보았던 비석에도 이런 사연이 있구나를 알고 되면서 새로웠고, 책을 들고 책 속에 소개된 가까운 장소를 찾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하는 게 인문 기행서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서평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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