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사회 - 인간 사회보다 합리적인 유전자들의 세상
이타이 야나이 & 마틴 럴처 지음, 이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대학 다닐 때 친구가 "너가 좋아할 만한 책이야"라며 이기적 유전자』를 생일 선물로 주었다기쁜 마음에 책을 들었지만 내게 그 책은 두껍고 어려웠다. 읽다가 다 못 읽고 덮었고, 끝까지 못 읽었다는 부끄러움에 책장 깊이 안 보이는 곳에 꽂아놓았었다. 그후 다른 책들을 통해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가 주장하는 바를 어렴풋이 이해했었다.  

(책장에 안 보이게 꽂아놓았던 나와는 정 반대로) 유전자 사회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각각 컴퓨터 과학자와 물리학자였다가 진화생물학자로 전공을 바꾼 두 저자가 쓴 책이다. 내가 이기적 유전자를 선물받았을 때가 십년 정도 전이니, 막연히 내 생물학적 이해도가 높아졌을 것으로 감안한다 해도, 유전자 사회』가 『이기적 유전자』보다는 유전자에 대한 일반론적인 설명이 많아서 읽기 수월했다. 『유전자 사회』 '들어가며''생물학적 배경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들'을 생각하고 썼다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그 일반 독자들에게 생물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가 조금 불타올라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들어가며'에는 10개의 장에 대한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어서 책을 읽기 전에 책 내용을 전반적으로 개괄해볼 수 있다. '유전자 사회'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은 2장에 실렸다.
16-21쪽
1장에서는 암이 어떻게 생기는지 언급한다. 발암 세포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가 되려면 그 성장을 촉진하면서 자제력을 잃어버린 세포의 증식에 대학하는 신체의 방어 작용을 무력하게 만드는 여러 돌연변이가 축적되어야 한다.
2장에서 우리는 인간 유전체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상이한 유전자들의 집단, 즉 유전자 사회라는 비유를 소개한다. 또한 박테리아와 척추 동물의 면역 시스템의 차이, 짧은 시간의 척도로 보면 라마르크적이라고 볼 수 있는 모유를 통한 면역 방어의 전달을 설명한다.
3장에서는 유전자 사회가 각 유전자에게 다음 세대로 갈 기회를 동등하게 주도록 진화시키는 전략에 대해 설명한다.
4장에서는 지구상의 두 인간이 99.9퍼센터 동일한 유전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종종 서로를 마치 다른 종에 속하는 것처럼 취급하는 뚜렷한 모순에 대해 다룬다.
5장에서는 인간의 많은 유전병들이 유전자 하나가 고장 난 탓일 수도 있지만, 유전자 사회 속 여러 구성원들 간에 뒤틀어진 상호작용이 병을 부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전형적임을 소개한다.
6장에서는 현대 인류와 침팬지의 진화에 대해 다룬다.
7장에서는 유전자 사회의 구성원을 크게 관리자 유전자와 일꾼 유전자로 나누고, 일꾼 유전자보다 관리자 유전자의 차이가 종을 구별 짓는다고 주장한다.
8장에서는 다양한 유전자들이 어떻게 중복을 통해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되는지 설명한다.
9장은 어떻게 10억 년 전에 서로 다른 박테리아가 합쳐져 우리의 세포가 생겼는지 공생 관계를 보여 준다.
10장에서는 지난 40억 년 동안 아주 다양한 기생 유전자들이 세포를 착취함으로써 생존해 온 과정을 소개한다.

각종 유전 현상을 '전자 사회'에 초점을 두어 소개하고 있지만 일반 독자들이 궁금해할 법한 건강, 성염색체 유전, 면역, 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전체 차이 등도 설명해준다.

아래는 1장을 읽고 정리한 내용이다.  

개인적으로는 '암의 위시리스트'라는 표현이 흥미로웠다. 암 연구자인 더글러스 하나한과 로버트 와인버그의 주장으로, 암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8단계의 '암의 위시리스트'가 차근차근 이루어져야 한다. 이 8단계를 거쳐야 암이 발생하기 때문에 암이 발생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42-44쪽(제목만 정리함)
1. 스스로 성장 신호를 제공하는 것
2. 세포 분열을 막는 신호를 무시하는 것
3. 영원히 사는 세포가 되는 것
4. 세포 사멸을 피하는 것
5. 면역에 의한 파괴를 피하는 것
6.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것
7. 새로운 혈관을 끌어들이는 것
8. 멀리 있는 부위에 침입하는 것
 
그렇다면 인간은 왜 더 안전하도록 9번째 방어기제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요? 라고 저자는 질문한다. 
55-56쪽 그렇다면 암 유전자는 왜 정확히 암의 여덟 가지 특징을 획득해야만 하는가? 왜 인체는 40대가 넘을 때까지 암에 걸리지 않게 해 주는 안전장치가 있는 것 같을까? 이는 마치 유전체가 생식기를 지날 때까지 암을 지연시키는 정확한 방어 횟수를 정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아마 실제도 그럴 것이다. 암세포들이 극복해야 할 여덟 가지 안전장치들은 조상들이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시킨 것이다. (중략) 그녀는 생식을 할 최적의 나이를 지날 때까지 암의 발생을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다행인 것은 암이 자식에게 그대로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52쪽 암은 개체와 함께 같이 죽는다. 암을 일으키는 데 기여한 새로운 돌연변이를 지닌 유전자가 인간의 다음 세대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유전자는 암세포 속에 있고 정자나 난자로 이동할 수 없다.
55쪽 암은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유전되지 않는다. 암을 진행시키는 유전자들은 정자나 난자보다는 체세포에서 진행된다. (중략) 그러나 특정 세포 유형에서 암으로 가는 각 단계를 형성하는 돌연변이는 유전될 수 있다.  
 
평소에 '탄 고기는 먹으면 안 돼!' '낮에는 꼭 선크림을 발라야 돼!'라는 신문기사들의 귀찮은 조언을 결국은 따라야 하는 구나...라고 결심하게 만드는 문장을 발견했다.
34쪽 우리 유전체는 유해한 화합물(담배연기 속 화학물 또는 탄 고기)이나 자외선(태양빛 또는 태닝숍)에 노출되어 더 많이 바뀔 수 있다.
이런 유해물질이 우리 유전체의 돌연변이를 많이 일으킨다는 것이다.  
 
또 나이가 들면서 자꾸 생기는 점(모반)의 이유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35쪽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는 모반 또한 체세포가 피부를 만들기 위해 증식할 때 생긴 돌연변이 때문이다.
36쪽 우리 유전체의 대부분은 태어나기 전에 복제가 일어나지만, 많은 세포들은 일생을 통해 계속 새로워진다. 예를 들어, 피부 세포는 한 달 주기로 새로운 피부 세포로 대체된다. 피부색의 균형을 깨뜨리는 돌연변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증가하는데, 이는 검버섯이 생기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결국 유전체의 돌연변이를 줄이기 위해, 점이 안 생기려면, 선크림을 발라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렀다.ㅎ
  
과학책은 언제 읽어도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읽는 호흡이 짧아지고 집중하는 데 힘이 든다. 내가 과학자도 아닌데 이 책을 읽어야 하나 하는 온갖 잡념이 들기도 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읽고 나서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뉴스를 보다가 아 그때 그 책에서 얘기한 게 이거구나 할 때가 있다. 한참 뒤에 깨달음이 오는 것을 과학책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유전자 사회』를 읽었으니 한동안은 암 관련 뉴스나 유전병 관련 소식이 귀에 번쩍 들릴 것이다. 그래서 과학책은 가끔씩 읽어주는 게 좋다. 과학 지식은 세상 살아가고 판단하는 데 어떻게든 도움을 주니까. 어쨌든 이번엔 『이기적 유전자』먼지를 털어 다시 읽어봐야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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