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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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좋아하는 영화 연출을 하는 친구에게 선물했더니 매우 좋아함. 일본 신문에 연재된 칼럼 모음집이기에 영화 이야기뿐 아니라 시사적인 내용(연출가로서 보는 세상)도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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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남성은 없지 않다!

점심을 먹으러 갈 시간인데, 막간 창고 정리를 한다. 이미 모스크바 통신에 '언어는 무의식적으로 탈구조화되어 있다'란 제목으로 올렸던 글에서 김훈의 <현의 노래>에 관한 대목만을 정리해서 옮겨놓는다. 2004년 7월초에 씌어진 그 글은 '김훈-김규항-고종석의 문체에 대한 생각'(업그레이드 버전은 '양파, 혹은 문체에 대하여')에 대한 보론의 성격을 겸하고 있었다(때문에 이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이라면 먼저 문체에 대한 글을 참조하시는 편이 좋겠다). 나머지는 나의 수다이다(단, 이 '수다'는 18세 이상만 접근가능한 이미지들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유의하시길).  

 

 

 

 

갑작스레 ‘정치론’을 꺼내들기 전에(*이 '정치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정리하겠다) 내가 몇 마디 거들었던 소설은 김훈의 <현의 노래>였다. 나는 김훈의 문체를 얘기하면서 그의 ‘허무주의’를 지적했고, 보다 구체적으론 그의 허무주의가 ‘가장(家長)의 허무주의’라는 걸 주장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이 질퍽거리는 구멍은 대체 무엇인가? 이 빨아당기는 속살이 어째서 왕의 무덤 속에 들어가 쇠와 함께 썩어야 하는가. 야로는 식은 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하였다.”란 구절을 제시하면서 ‘질퍽거리는 구멍’을 김훈 문학행위의 핵심으로, 라캉의 용어를 쓰자면 ‘아갈마’(=숨겨진 보물)로 규정했다. 지젝을 흉내내어 말하자면, 그의 문학행위는 그 ‘질퍽거리는 구멍’을 중심으로 순회한다.

이에 대해서 ***님은 (어제 읽어보니까) 이 ‘질퍽거리는 구멍’이 ‘여성의 성기’를 가리킬 뿐이라고 반박하는 답글을 달아놓았는데, 좀 의외의 답글이다. 내가 제시한 건 그것의 ‘지시적 의미’가 아니라 ‘해석’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그 ‘질퍽거리는 구멍’의 주인은 “왕의 죽어 썩어가는 육체를 피해 도망친” ‘아라’이다. 나는 인용한 구절에서 “‘야로’는 김훈 자신이며, ‘이 질퍽거리는 구멍’이야말로 그의 ‘허무주의’의 근거이고, 그의 표현을 빌자면, 풍경의 ‘적막’이다.”라고 했다. 즉, ‘야로=김훈’이며, ‘질퍽거리는 구멍=허무주의의 근거’라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하면, ‘질퍽거리는 구멍’은 ‘아라의 성기’일 뿐이라는 ***님의 지적은 ‘야로’는 ‘김훈이 아니라 야로일 뿐’이라는 얘기인데, 이게 ‘반박’으로서 성립하는 것인지? 혹은 ***님은 그것이 ‘반박’이라고 정말로 진지하게 믿고 있는 것인지? 이건 메타언어로서의 비평 원론에 관한 것인데, 나는 그냥 농담으로 간주하겠다(혹 진담이라고 밝혀주신다면, 다음 번에 제법 진지하게 ‘반박’하도록 하겠다).



김훈의 에세이들을 얼마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의 ‘형이상학적’ 상상력 혹은 묘사는 음(陰)과 양(陽), 즉 암컷-수컷의 대립과 교접을 근간으로 구축돼 있다(‘여자-남자’라고 말하는 건 김훈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암컷-수컷’이라고 말한다).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라는 시리즈의 제목 자체가 이미 그러하다. ‘질퍽거리는 구멍’이라는 음(陰)과 암컷(성)이야말로 (야로가 아니라) 작가 김훈이 “식은 땀을 흘리며 기진맥진” 채워 넣어야 할 구멍이고, 먹여 살려야 할 구멍이며, 궁극적인 미스터리이자 ‘적막’이다. 나는 이 또한 김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The Origin of the World'(1866).

내가 개진한 것은 그러한 상식을 좀더 보충하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보충하는 김에 더 확장하자면, ‘질퍽거리는 구멍’ 즉 바기나(vagina)는 ‘주인-기표(Master-signifier)’로서의 팔루스(phallus)에 대응하는 ‘여주인-기표(Mistress-signifier)’라 할 만하다. 라캉에게서 팔루스가 생식기관으로서의 남근, 즉 페니스(penis)와 구별되듯이, 바기나는 생식기관으로서의 음문(陰門), 즉 불바(vulva)와 구별된다. 프로이트에서 라캉으로의 이행, 혹은 정신분석학의 언어학적 전회가 <‘아버지’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페니스’에서 ‘팔루스’로>란 표어로 정리될 수 있다면(그리고 <‘징후’에서 ‘징환’으로> 또한 주요한 표어이다), 우리는 거기에 <‘불바’에서 ‘바기나’로>를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기표’의 짝으로 ‘여주인-기표’를 덧붙이면서 말이다.


 

 

 

라캉 정신분석은 ‘프로이트+소쉬르/야콥슨’으로 정식화될 수 있는바, “무의식은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것이 ‘구조주의자’ 라캉의 맥심이다. 실제로, 라캉은 야콥슨과 깊은 교우를 가졌는데, 레비-스트로스의 소개로 그는 미국으로 망명해 있던 러시아의 언어학자 야콥슨을 알게 되며, 야콥슨은 프랑스에 갈 때마다 라캉의 집에 머물곤 했었다(레비 스트로스의 회고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참조). 유의할 것은 여기서의 전회가 이중적이라는 점이다.

즉, 라캉은 정신분석학을 언어학적으로 전회시킴과 동시에, 언어학을 정신분석학으로 전회시킨다. 그 전회는 <‘랑그’에서 ‘랭귀스테리’로>란 표어로 정리될 수 있는바, 알다시피 ‘랭귀스테리’란 ‘랭귀지(언어)+히스테리’이다. 여기서 ‘탈구조주의자’ 라캉의 ‘또 다른’ 맥심이 나올 수 있는바, “언어는 무의식적으로 탈구조화되어 있다”가 그것이다(물론 이건 그가 직접 언명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정리한 것이다.)

단순하게 대비시켜 말하자면, <에크리>(1966)의 저자로서 구조주의자 라캉이 ‘무의식의 언어’에 관심을 집중한 데 반해서(그의 주된 관심은 ‘상징계’였다), 흔히 ‘후기 라캉’이라 불리는 탈구조주의자 라캉은 ‘언어의 무의식’에도 관심을 돌린다(그의 주된 관심은 ‘실재’였다). 조이스에 대한 그의 관심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사실, 이 ‘언어의 무의식’에 관해서라면, 이리가레와 함께 라캉의 ‘나쁜 딸들’의 하나인 크리스테바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는바, 그녀의 <시적 언어의 혁명>(1973)은 그 대표적인 저작이다(그녀의 국가박사학위논문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불가리아 출신의 이 여성 ‘사무라이’가 일약 프랑스 지성계의 히로인으로 떠오르게 되는 건 <바흐친, 말, 대화 그리고 소설>(1967)을 발표함으로써이다(그녀가 26세 때의 일이다). 이 논문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지만, 일부 오역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안 그래도 상당히 난해한 논문이지만). 해서 요컨대, 라캉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야콥슨에 대한 참조는 기본적이며, 크리스테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바흐친에 대한 참조는 필수적이다.

 

 

 



다시 ‘질퍽거리는 구멍’, 즉 바기나. 해부학적으로 ‘팔루스’란 단어는 원래 (남성의) 음경과 (여성의) 음핵, 즉 클리토리스를 가리키지만, 라캉 정신분석학에서는 “결여 혹은 상실의 기표”를 뜻한다(욕망은 언제나 이러한 결여와 관련된다). 그것이 ‘기표’라는 점에서, 음경과 무관하지만 한편으로 ‘결여/상실’의 기표라는 점에서는 음핵과 무관하지 않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여성의 음핵은 결여한/상실한 남성적 음경의 흔적이었기 때문이다(해서 팔루스는 페니스, 즉 남근이 아니지만 ‘남근적’이라는 이유에서, 라캉 정신분석학이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공격 받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반면에 바기나는? 해부학적 기관이 아닌 상징 혹은 기표로서의 그것은 ‘결여의 결여’, ‘상실의 상실’의 기표이며, 미스터리의 기표이고 ‘여주인-기표’이다. 즉, 남성에겐 미스터리가 없다는 의미에서(‘남성’은 다 드러나 있다!), 남성에게는 결여가 결여돼 있으며, 상실이 상실돼 있다. 카트린 브레이야의 표현을 가져오자면, 바기나는 ‘지옥’의 기표이며, 팔루스가 결여/상실하고 있는 것은 그 ‘지옥’이다.

라캉은 욕망을 ‘결여’하고만 관련짓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욕망의 반쪽이다. 나머지 반쪽은 바로 ‘결여의 결여’와 관련된 욕망이다.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 자’는 ‘무엇인가를 안 갖고 있지 않은 자’이며, ‘무엇인가를 안 갖고 있는 자’가 무엇인가를 갖고자 욕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안 갖고 있지 않은 자’는 무엇인가를 안 갖고자 욕망한다(즉 소유에 대한 욕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소유에 대한 욕망도 있다). 주인-기표가 무엇인가를 갖고 있음으로써, 혹은 갖고 있다고 가정됨으로써 ‘주인’ 행세를 한다면, 여주인-기표는 무엇인가를 안 갖고 있음으로써, 혹은 안 갖고 있다고 가정됨으로써 ‘여주인’ 행세를 한다. 즉 칼이 아니라 칼집이 주인이며, 마개가 아니라 구멍이 주인인 것이다. 즉, 여주인.



다시, 야로의 말, 김훈의 말을 보자. “이 질퍽거리는 구멍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결여/상실이며, 부재이고 적막이다. “이 빨아당기는 속살” 앞에서, “야로는 식은 땀을 흘리며 기진맥진”이다. 속수무책이다. 왜인가? 그는 구멍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는 결여의 결여이고, 상실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주인-기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편으로 그는 여주인-기표를 욕망하며, 상실이고자 결여이고자 한다.

나는 게이에의 욕망, 팔루스를 제거함으로써 상상에서건, 실제에서건 ‘여성’(=암컷)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이 구멍(=바기나)에 대한 욕망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은 ‘주인’이 아니라, ‘주인’을 지배하는 ‘여주인’이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신의 구멍으로, 부재로, 결여로, 상실로, 적막으로, 미스터리로, 지옥으로 여주인은 주인을 할딱이게 하며 지배한다(천문학에서의 反물질 혹은 ‘암흑물질’은 이 여주인-기표의 천문학 버전이라 할 만하다). 혹 이런 것이 라캉 정신분석학의 페미니즘 버전이 될 수 있을까? 혹은 거울상?


레비-스트로스가 <친족의 기본구조>(그의 국가박사학위논문이다)를 구성하면서 여성을 교환의 대상으로 한 것에 대하여 남성중심적인 시각이 아닌가란 질문을 받자, 그는 그것이 편의적인 것이었을 뿐이라고 답한다(즉, 남성을 교환의 대상으로 한 ‘친족의 체계’도 이론적으론 가능한 것이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많은 건 사실이고 따라서 더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그것이 오른손잡이에 대한 ‘필연성’을 보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어쩌다 보니 그러기가 쉬웠을 뿐인 것. 라캉의 욕망이론이나 ‘팔루스’론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라는 게 나의 짐작이다.

그렇다면, 유표적 언명으로서 “여성은 없다”란 그의 테제의 거울상 버전은 “남성은 없지 않다”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뒤집어서 얘기하면, 이상한 것은, 즉 유표적인 것은 ‘여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없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남자가 없지 않다고 상상해봐?”). 오, 없지 않아서 불행한 것들이여! 무덤 속에 들어가 썩을 것들이여!..

06.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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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수전 손택과 시사저널 사태

낮에 구내서점에 갔다가 뜻밖에 손에 든 책은 '주어캄프의 세계인물총서 01'로 나온 <발터 벤야민>(인물과사상사, 2007)이다. 저자는 '몸메 브로더젠'. 물론 이름도 생소한 저자의 지명도 때문에 책은 집어든 건 아니고 순전히 '주어캄프'라는 지명도(프랑스로 치면 '갈리마르'쯤 되나?)에다 문고본 판형에 끌린 것이다.

 

벤야민의 전기가 처음 소개되는 것도 아니고 또 대략적인 전기라면 생소하지도 않은 형편이어서 책에 대해서 특별한 기대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요즘 우리도 이만한 포켓북 형태의 책들이 많이 기획되고 있는 듯해서 어떻게 씌어지고 편집되는가를 살펴볼 필요성은 있겠다. 체게바라가 2권으로 같이 출간됐지만 일단은 내가 더 잘 아는 벤야민을 읽어볼 계획이다. 그런 생각으로 '벤야민'을 검색했다가 예기치 않게 읽은 기사는 작년말에 게재된 이재현의 가상인터뷰 최종회이다. 2004년 겨울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비평가/작가 수전 손택을 다루고 있는데, 우연찮게도 어제오늘 '문제'로 불거진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코멘트가 포함돼 있다. 적절한 '타이밍'이다 싶어서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6. 12. 26) [가상 인터뷰] <42·끝> 수전 손택

미국의 에세이스트, 소설가, 액티비스트, 문화비평가. 에세이집으로는 <해석에 반대한다>(1966) <사진에 관하여>(1977) 등이 있고, 소설로는 <미국에서>(1999) 등이 있다. 친아버지는 중국에서 모피상을 했었는데 손택이 다섯 살 때 죽었다. 손택의 원래 성은 로젠블라트(Rosenblatt)였고, 손택이란 이름은 법적으로 자신을 입양하지는 않은 의붓아버지의 성을 딴 것이다. 대학 생활의 출발은 버클리대학이었고, 시카고대학으로 옮겨 가서 문학비평가 케네스 버크와 보수주의 정치학자 레오 쉬트라우스 등에게서 배우며 석사를 마친 뒤, 하바드대학, 옥스퍼드대학, 소르본느대학 등에서 문학과 철학 등을 공부했다.

17살 때, 열 살 연상의 대학 선생과 만난 지 열 며칠 만에 결혼을 해서 아들을 하나 두었으며, 8년 뒤에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남편과 이혼하고 그 때부터 아들을 홀로 키웠다. 1963년부터 서평 등을 쓰기 시작한 손택이 최초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게이 감수성에 관한 에세이인 <캠프(camp)에 관하여>(1964)였다. 나중에 이 글은 정치적 관점을 강조하는 동성애 진영, 즉 ‘퀴어(queer) 정치학’쪽으로부터 비판을 받게 되지만, 당시에는 대중문화와 관련해서 대안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선구적이고 충격적인 글이었다.



손택은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등 20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지식인들과 이오네스크, 아르토, 브레송, 고다르 등 유럽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1960년대의 뉴욕 지식인 사회 및 문화예술계에, 그리고 결과적으로 미국에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1967년 <파르티잔 리뷰>에 쓴 글에서 “백인종은 인류 역사의 암이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켰고 나중에 가서 자신의 발언이 암 환자들의 고통을 무시한 것이라는 점을 들어 사과를 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베트남전 반대 행동을 위해 하노이를 방문하기도 했고 1993년에는 내전 중에 포위된 사라예보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사라예보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 바 있다. 2001년 9ㆍ11 사태가 터진 직후 발표한 글에서 손택은 당시 미국 주류의 정치적 견해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그렇지만, 미국은 강하다” “모든 게 잘 되어 가고 있다”고 허풍을 떨던 부시를 ‘로봇과 같은 대통령’이라고 지칭하며 대놓고 반박함으로써 또 다시 충격을 준 바 있다.



손택의 사인은 백혈병으로 인한 합병증이었는데 이 백혈병은 30대 중반에 생긴 유방암과 60대에 생긴 자궁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었다.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1978)과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2003)는 바로 자신의 병 체험에 바탕을 두고 저술된 것들이다. 죽기 몇 년 전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손택은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혔는데, 평생 “실제로 아홉 번, 다섯 명의 여자와 네 명의 남자”와 사랑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손택의 좌우명은 “늙은이처럼 행동하지 마라, 바로 그 순간부터 늙기 시작한다” “우정이란 다른 사람들 안에서 기뻐하기 위한 욕망이다” “작가라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당신을 당신 안에 가두지 마라” “변화는 나의 장기이다” 등이다.



이재현(이하 현) 선생님, 무덤 안은 어떠세요? 죽으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나요?

수전 손택(이하 수전) 그냥, 수전이라고 불러, 동업자끼린데 뭘. 죽어서 좋은 점은 다른 사람들이 내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거야.

선생님은 평소에 “난 시골에서 살지 못한다, 도시가 좋다”고 말씀하신 전형적인 뉴요커인데다 워낙 명망가이셨으니까 다른 뉴요커들이 커피숍이나 술집에서 선생님의 사생활을 가십 거리로 삼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가장 궁금한 건데요, 성을 왜 스스로 바꾸셨지요?

수전 ‘장미꽃잎(Rosenblatt)’이란 말이 간지러워서 그랬어. 손택이란 이름이 더 단순한 게 맘에 들었지. 내 의붓아버지는 장교 출신의 참전 영웅이었지만 사춘기의 내가 보기에 지적으로는 정말 바보 같았거든.

독일어의 일요일(Sonntag)은 n이 두 개인데요. 손택이란 이름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수전 그런 데 관심 없어. 이번 기회에 분명히 말하건대, 한국 페미니스트들 중에는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둘 다 붙여쓰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어. 하지만 그건 머저리같은 짓이야. 정확히 따지자면, 어머니 성이 아니라 외할아버지 성이잖아.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의식이 없어서 뭐가 되겠니? 차라리 성, 그러니까 ‘아버지의 이름’을 없애자고 해야지.

역시, 선생님은 거침이 없으시군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답니다. 한국의 지적, 문화적 분위기는 미국으로 치자면, 소설가 잭 케루액이라든가 시인 윌리엄 버로우즈 등과 같은 비트 제너레이션이 활약하던 때인 1950년대 수준도 될까말까지요. 아직, 정치적, 문화적 검열에 관한 문제라든가 드럭(drugㆍ마약) 문제에 관한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의 인식이 아직 형편없어요. 다들 앵무새처럼 말할 뿐이지요.

수전 미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건 아니야. 다만 나에 대해서는 미국의 주류 사회가 속으로 ‘저 년은 원래 저런 년이지’라고 생각하면서 약간 봐준 정도일 뿐이지. 또 내가 뉴욕 토박이가 아니었더라면, 9ㆍ11 이후 미국의 파쇼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대외 군사정책에 대한 나의 비판적인 목소리는 실제 내가 당했던 것보다도 아주 더 심한 박해와 핍박을 받았을 거야.

선생님에 대한 평가 중에 일찍부터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지적인 여성’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수전 나는 그게 일종의 욕이라고 생각해. ‘아마도’란 말도 그렇고 ‘여성’이란 말도 그렇고 말이야. 그 말에는 여성이란 본디 지적이지 못하다는 전제가 들어 있는 것이고, ‘아마도’란 여성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 들어 있잖아?

으음, 듣고 보니 그렇군요. 선생님은 1960년대부터 사회적, 정치적 이슈와 관련해서 쭈욱 계속해서 나름대로 직접 행동을 취해 오셨습니다. 1980년대의 한국에는 일본어 한자말에서 빌어온 ‘활동가’란 말이 쓰이곤 했습니다. 지금 그 활동가들 중 일부는 죽고, 일부는 먹고살면서 애 키우느라 바쁘고, 일부는 국회의원이 되고, 또 일부는 아직도 사회운동 및 시민운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액티비스트’로서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엑스(ex)-활동가들의 현재 모습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요?

수전 야, 그런 걸 왜 내게 묻냐? 너희 일은 너희가 가장 잘 아는 거지. 세상이 바뀌면 바뀌는 만큼 변화를 해나가되, 최초의 그 곧고 아름다운 마음가짐과 ‘합리적 핵심’에 해당하는 관점을 지켜나가면 되는 거잖아.

물론이지요. 하지만, 자기 일에 파묻혀 살다보면 자신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놓치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요. 또 한 해가 저무는데 세상이 더 나아진 것 같지도 않고요. 그래서 그런 거지요.

수전 그렇다면 한 수 가르쳐 주지. 가령 언론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시사저널> 사태 해결에 나서는거야.

앗. 선생님, 어떻게 그 문제를 알고 계신가요?

수전 바로 위에서 네가 날 소개하면서 “작가라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니? 사장이 사전에 편집국 구성원들과 아무런 얘기나 논의 없이 기자가 쓴 글을 윤전기에서 인쇄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멋대로 빼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잡지를 만들어 온 기자들이 참 대견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참 안쓰럽다.

네. 문제는 다른 일간지들이 이 중대한 사태에 관해 제대로 보도를 하고 있지 않아서 국민 대다수가 사정을 모른다는 겁니다(*이번에야 보도가 되었다. 그리고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일종의 굳건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게지요. 사태는 정말 심각합니다. 소위 ‘편집권 독립’이라는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겠습니다만, 경영주가 제멋대로 기자의 글을 삭제하는 것은 일제 시대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수전 말로 안 되는 경우에 쓰라고 화염병이 있는 거야.

켁. 선생님,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수전 그러니까, 내 말은 연말에 망년회 대신 ‘몰로토프 칵테일’파티를 하라는 얘기야. 너희 한국에 활동가가 그렇게 많았다면서.



네에~(푸훗). 아무튼 선생님, 한국과 한국의 언론 상황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찌 보면 매우 창피한 일입니다만, 사람들 만날 때마다 이런 사실을 널리 알려주세요. 그리고, 대충 50년쯤 뒤에 선생님 계시는 나라로 저도 살러 가겠습니다. 그럼, 다시 뵐 그때까지….(문화비평가 이재현)

07. 0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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