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의 어디 쯤에서였을 거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그 때의 나는 햇살과 고독만 배부르게 먹고 있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해도 전적으로 하나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고,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힘에 겨워서. 내 옆에 현자라도 한 명 있어서,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하면 된다고 말해 줬으면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살던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와도 하나가 될 수 없고, 누구도 전적으로 나를 이해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나만의 인생이 존재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어디에도 마음을 기댈 수 없고, 또 어디에도 기대지 않을 때가 비로소 자신 인생의 출발선이이라고.

집도 마련하고, 아이도 다 키우고, 돈에 크게 쪼들림도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이 되자 이제야 누구의 눈도 아닌 자신의 눈으로 사심없이 인생을 바라보게 되었기에 오히려 더 진지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선생님, 이 나이에 무슨 큰 행복을 바라겠어요. 그냥 쓸쓸하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오히려 그 분들이 부러웠다.그 분들의 고민은 행복의 기반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천명관의 세일링이란 단편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는 말하자면 행복해지길 원하기보다는 단지 불행해지는 게 두려운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

적어도 나처럼 그렇게 느끼지는 않는 것 같으니까. 솔직히 어머님들처럼 아름답게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는 생각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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