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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역사를 만들다 - 예술이 보여주는 역사의 위대한 순간들 ㅣ 전원경의 예술 3부작
전원경 지음 / 시공아트 / 2016년 6월
평점 :
<예술, 역사를 만들다>는 예술 스토리텔러 전원경이 들려주는 ‘예술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예술의 역사가 아닌, 각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그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낸 역사와 예술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전문가 리뷰를 통해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자 의뢰한 리뷰 입니다. 첫번째 리뷰자는 칼럼니스트 정재웅님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도서 선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조지 클루니가 제작, 감독, 각본, 주연을 모두 맡은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이라는 영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각지의 미술품을 약탈하고 독일이 패하거나 본인이 사망할 경우 그 모든 예술품과 문화유산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린 히틀러에 대항해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미술사학자 프랭크 스톡스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설득하여 역사와 예술 전공자들을 모아 조직한 특수임무부대인 “모뉴먼츠 맨(Moments Men)”의 활약을 서술한 동명의 역사책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주인공 프랭크 스톡스는 이런 말을 한다.
“인류가 살아온 모든 역사에서 사람들이 이룩한 문화를 파괴하면,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어버리지. 그것이 바로 히틀러가 원하는 거야(If he destroyed entire generation people’s culture, it is that they never existed. That’s what Hitler wants).”
프랭크 스톡스의 이 말 그대로다. 인류가 지구상에서 문명을 이룩한 이래 살아온 흔적은 역사와 과학으로 증명하고 밝혀낼 수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인류가 만든 미술, 음악, 건축 등 문화유산이다. 인류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경외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만약 불국사와 석굴암이 없어진다면, 팔만대장경과 고려청자가 없어진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신라 혹은 고려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역사는 기록만큼이나 유형의 문화유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 맥락에서 피라미드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를 조각한 조각상 및 당시 평민들의 생활상을 묘사한 조각이나 고대 그리스의 제우스와 아테나 같은 신을 형상화한 석상이나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를 그린 병부터 시작되는 인류의 모든 유·무형의 문화유산은 인류가 살아온 흔적을 증언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당대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역사를 만들지만, 반대로 예술에는 그 당대의 모습이 반영되기 때문에 역사가 예술을 만들기도 한다. 즉 인류가 살아온 궤적으로서의 역사와 그 인류가 만든 문화유산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며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온 흔적을 증명한다. 예술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예술비평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문화콘텐츠 산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원경 교수의 이 책 『예술, 역사를 만들다』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저술된 책이다. 우리는 흔히 예술은 당대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과 분리되는 예술만의 독특한 사조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상당수의 사람들은 유럽의 역사적 흐름과 분리되는 별도의 흐름으로서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예술 사조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예술 사조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그 전 시대의 예술 사조에 대한 하나의 안티테제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타난 것이다. 예컨대 고대 이집트의 미술 – 피라미드, 미라, 스핑크스, 사자의 서, 아부심벨 등 – 은 고대 이집트의 자연환경과 그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제정일치 사회 및 내세를 중시하는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은 고대 그리스의 경우 폴리스와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 고대 로마의 경우 공화정과 활발한 정복활동 및 실질적이고 강건함을 중시한 사회적 체제와 밀접하게 연관되는데, 전자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및 인간의 형상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이상화한 신상으로, 후자는 콜로세움, 개선문, 포룸 로마눔의 건축물 등 공공건축물로 형상화되어 나타났다. 즉 한 시대의 예술 –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 – 은 당대 사회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이다.
예술의 이러한 사회상을 반영하는 모습은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시작된 중세는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이 중요하게 작용한 시대였다. 이는 유럽뿐만 아니라 비잔티움 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는데, 이러한 종교적 성향으로 인해 활발하게 제작된 것이 현재까지 많이 남아있는 성화다. 상술한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에서 중요한 예술작품으로 등장하는 것이 “헨트 제단화(Ghent Altarpiece)”다.
‘어린 양에 대한 경배’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걸작은 어린 양으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사람들을 나타난 하부의 패널과 전능하신 하느님, 성모 마리아, 세례 요한 및 아담과 이브를 나타내는 상부 패널로 구분된다. 이러한 패널의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은 당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강력하게 규율한 그리스도교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세계관을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지게 된 것은 로마제국의 붕괴 이후 유럽을 지배하게 된 게르만족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는 문맹들이 많았기에 성경의 이해를 위해 그 내용을 그림으로 보여줄 필요성이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성화는 단순한 미술작품이 아니라 성경의 내용을 눈에 보이게 표현하여 사람들의 신심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레고리안 찬트로 대표되는 성가 역시 성경의 내용을 사람들이 귀로 듣고 입으로 따라 부르게 할 목적에서 나타났다. 천국을 지상에 구현하는 수단으로서 만들어진 성당 건물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 예술은 그리스도교적 세계관과 성경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목적에서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현재 보는 그리스도교 세계관이 투영된 중세시대의 예술 작품은 하나의 프로파간다인 것이다. 이처럼 예술은 당대 사회를 반영하고, 다시 반대로 당대 사회는 예술에 의해 규율된다.
이러한 예술의 특징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예술사조가 바로 르네상스와 고전주의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재생” 혹은 “문예부흥” 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하나의 예술 사조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고전 시대를 다시 살려낸 것이다. 오랜 중세를 거치면서 잊히다시피 했던 고전 시대의 가치를 살린 것은 십자군 전쟁 및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 아말피 등 이탈리아 해양 도시국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이슬람 세계와의 교역이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은 이슬람 세계가 간직하고 있던 고전 시대의 저작과 예술을 접할 수 있었고, 이슬람과의 교역을 통해서는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처럼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새롭게 접한 고전 시대의 가치를 되살려낸 것이 바로 르네상스다. 피렌체는 바르디, 페루치, 아치아우올리 등 일찍부터 중세의 초기업(Medieval Super-Company)이라 불린 금융기업들이 왕성하게 활동한 도시다. 전성기의 메디치 가문조차 바르디 가문이나 페루치 가문에 비하면 소규모에 불과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하여 메디치 가문은 예술 활동을 후원했고, 그 결과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라파엘로 산치오 등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메디치 가문뿐만이 아니다.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들, 심지어 교황까지도 이러한 예술가들을 후원했는데,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시스티나 성당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등 프레스코화, 그리고 역시 라파엘로가 그린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초상화와 레오 10세와 메디치가 두 추기경의 초상화가 그 결과물이다. 이 중 가장 이질적인 것이 시스티나 성당에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인데, 교황의 서명실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습을 그릴 정도로 이 시기가 사상적으로 자유로웠음을 알 수 있다. 즉 르네상스는 이슬람과의 교역과 활발한 상업 및 금융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이탈리아에서 고전 시대 문화를 접하면서 나타난, 중세와 종교개혁 시기 사이의 짧은 사상적 자유 시기에 나타난 예술이자 그 예술이 나올 바탕이 된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경제적 배경이다. 만약 십자군 전쟁을 통해 이슬람 세계와의 교류가 활발해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교류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없었다면, 그리고 그 부를 통해 예술 활동을 후원하지 않았다면 르네상스는 나타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즉 르네상스는 하나의 중세시대의 안티테제로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예술 사조가 아니라 당대의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환경이 뒷받침 되었기에 나타날 수 있었던 예술 사조인 것이다.
고전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자크루이 다비드와 베토벤으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양식은 프랑스 대혁명 및 나폴레옹과 그 궤를 같이한다. 자크루이 다비드의 살롱전 입상 작품인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공화정 로마의 초창기, 이웃 도시 알바 롱가와의 대결을 앞두고 아버지로부터 칼을 받는 호라티우스 가문의 세 형제를 묘사하고 있다.
오직 애국만이 존재하는 이 작품은 예술 작품이기 이전에 프랑스 대혁명의 사사을 보여주는 하나의 프로파간다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는 자크루이 다비드의 다른 그림들 –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과 나폴레옹의 대관 –에서 더 강하게 드러난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자신감 넘치는 혁명의 상징으로서 젊은 장군 나폴레옹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폴레옹의 대관 역시 프랑스 제국의 상징이자 그 자체로서 나폴레옹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베토벤으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음악은 그 이전 시기 바로크와 로코코의 궁정음악에서 벗어나 시민들의 수요를 위해 음악을 작곡하는 혹은 작곡가 개인의 느낌과 생각과 사상을 표출하기 위한 활동의 결과다. 베토벤은 그 이전 시기에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개인 악장이었던 하이든이나 잘츠부르크와 빈의 궁정 악장으로 있으면서 귀족과 왕족의 수요를 충족시켜줘야 했던 모차르트와 달리 시민들을 위해 작곡을 하고 시민들 앞에서 공연을 했다. 즉 부르주아 계층의 성장이 베토벤으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음악이 나타나게 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처럼 고전주의 역시 계몽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나타난 프랑스 대혁명 및 부르주아 계층의 성장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예술 사조이자, 반대로 그 프랑스 대혁명과 부르주아 계층의 이상을 표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술 사조다.
고전주의 이후 나타나는 낭만주의, 인상주의, 큐비즘, 추상주의 모두 마찬가지다. 예술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활동이 아니라, 당대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과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인간 활동이다. 앞에서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을 언급하며 예술은 인류가 살아온 흔적이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예술은 그 자체로도 인간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주지만, 그보다 더 큰 가치는 우리가 살아온 과정과 우리가 살아가는 것,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고갱의 작품명이기도 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바로 예술 그 자체이자 예술이 지향하는 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이것을 긴 호흡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랜만에 읽은 흥미로운 예술사와 역사를 다룬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