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링 마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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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단절』은 ‘종말’의 종말을 선언하며 시작된다. 새로운 서막이 열렸다고 말하지만, 줄어들 일만 남은 아홉이라는 숫자는 그 서막이 긍정적이지 않을 거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주인공인 캔디스는 출판 컨설팅 업무를 맡은 담담자로, 대형 출판사들의 의뢰를 받아 아시아에 있는 공장에 성경 제작을 발주하는 상품 코디네이터이다. 소설은 선 열병(Shen Fever)에 의한 종말 전후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코로나 전에 완성된 이 책은, 마치 현 시대를 미리 엿본 듯 지금의 모습과 닮아 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졌지만, 선 열병에 감염된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

 

선 열병 감염자들은 마치 좀비와 같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뿐(문득 살인청부업자나 사이코패스와 같이 심상찮은 루틴을 가진 자들은 어떻게 되었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지를 잃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마치 이빨 없는 좀비랄까! 목적없이 행동만 반복하는 감염자의 모습이 일상 속 끊임없이 루틴을 반복하는 현대인, 특히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 같아 슬펐다. 『단절』은 작가가 시카고 눈사태로 교통과 직장이 마비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재난이 닥쳤을 때 회사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해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90년대 장마로 홍수 났을 때 물길을 헤쳐 출근하던 한국의 직장인짤이 떠오르는 건 왜지)

 

책을 덮으며, 나는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활동이 제약된 요즘, 나는 집-회사-집을 반복하고 있다. 워커홀릭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외에 특별한 관심사도 없다. 고착화된 나의 루틴 속에, 소설 『단절』이라는 사건(?)을 끼워 넣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나만의 쳇바퀴를 어느정도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을 위한 성장 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단절』은 조너선 메이버리의 『시체와 폐허의 땅』을 떠올리게 했다. 진짜 좀비가 나오는 『시체와 폐허의 땅』과 함께 읽어보는 걸 추천하고 싶다.

 

-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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