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카르페디엠 34
수잔 크렐러 지음, 함미라 옮김 / 양철북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분노로 손을 떨면서 책장을 넘긴 적은 없었다(사실 몇몇 책 속 인물들이 나를 짜증나게 한 적은 있지만 분노까지는 닿지 않았었다). 나는 원래 화가 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차분해지는 편인데, 손이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굳이 감추지 않는다. 이 책이 2012년에 초판이 나왔다는 것이 가장 화가 났다. 쌍팔년도 얘기가 아니라는 뜻이니까.

책이 배송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45분 전이고, 책을 읽기 전에 잠시 소파에 앉아 노닥거렸으므로 읽는 데 걸린 시간은 기껏해야 30분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사람이 아닌 사물에게 분노를 느낀 것도 참 오래간만이다(가장 최근에 나를 빡치게 한 사물은 한 시간 반 동안 열어보겠다고 낑낑거리게 한 잼 통이다).

책의 내용은 가정폭력을 겪는 두 아이와 폭행현장을 목격한 한 소녀, 그리고 애써 무심한 척 하는 주변인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이들의 멍과 폭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소녀는 주변의 무관심과 무신경에 더 큰 두려움과 분노를 느낀다. 나는 이번에도 책 속의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어, 소녀의 극단적인 행동을 두둔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납치. 서른을 눈앞에 둔 내가 과연 그렇게 과감하고 극단적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으나, 만약 [긴급출동 SOS 24시]에서나 봤을 법한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진다면 과연 가해자를 가만히 둘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금방 바뀌었다. 나는 내가 정의롭거나 착하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있긴 하나 상당히 오래 전 일이고, 착하다는 생각은 정말로 접은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사람의 도리라는 것은 어느 시점에서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도리라는 것이 결국에는 선대부터 내려오는 허상일 뿐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내 목숨과 생존만을 위해 남을 괴로움에 빠트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 하물며 본인의 스트레스 해소나 쾌락을 위해 남을 괴롭히는 행위라니... 원래가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졌다고 해도(실제로 고양이는 쥐를 잡아놓고는 죽이지 않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더라마는) 인간이랍시고 옷을 입고 집 안에서 책을 읽으며 살아왔는데 짐승과 똑같이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싶다. 나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올까봐 누군가에게 해로움을 끼치는 가해자를 못 본 척 해주는 사회. 이건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다. Not In My Back Yard. 사회적 병폐가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들. 이기심.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이기심이지만, 그리고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지만, 가능할 때까지는 무시하고 살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