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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새로운 작가의 발견이다.
그녀의 문장에 매료됐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지만 문장의 매력을 반감시키지는 않았다. 대화는 하나도 없는 서술체, 자서전 같은 구조, 수많은 은유, 역사적 사실 등이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문학이다 라고 느낄 수 있는 문장의 힘이었다.
읽기 힘들게 만들어진 제본에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던 작품이다.
아니 에르노는 낯선 작가다. 노벨상 수상, 『단순한 열정』이라는 논란이 많았던 영화의 원작자 정도로만 알고 작품은 처음 접했다. 『그 해 봄의 불확실성』을 읽으면서 인용된 작품이기에 더구나 다음 달 토론 모임에서 다룰 버지니아 울프도 같은 제목의 책이 있기에 궁금증이 생겨 잡아 보았다.
『세월』은 프랑스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2차대전 전에 태어난 ‘그녀’를 통하여 전후의 프랑스 사회, 지식인층, 정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프랑스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쓰여진 단어, 어휘가 정확하게 무엇을 은유하거나 의미하는 지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작가의 시각은 명쾌했다. 그 시대에 자랐고 공부했기 때문에 50년대 프랑스의 지성, 공산주의, 페미니즘, 성에 대한 자유, 카톨릭에 대한 저항 등을 몸에 익혔다.
우리는 시대가 낳은 인간이다. 책을 읽어 가면서 우리나라의 70년대부터 시작한 청년문화와 닮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146쪽 나이, 직업과 사회계층, 이익, 오래된 죄의식에 따라 우리는 혁명을 자기 기준대로 이용했고 축제, 쾌락, 지성의 명령을 마지 못해 따랐다
153쪽 5월의 이념들은 물건과 오락으로 전환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5월의 이념이란 1968년 프랑스 68운동을 의미하는 듯 하다. 드골체제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된 대학생들의 저항운동으로 이후 전 세계의 청년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결국 중도좌파 정권이 집권하게 만든 사회운동이었다. 혁명적 이념이 변질되었다고 저자는 말하였지만 이탈이아, 일본을 비롯한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컸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80년대로 다가왔으니까.
우리 시대와 너무 유사하여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혁명을 이용한다. 누군가가 흘린 피는 살아 남은 이의 이익에 묻혀 버린다.
141쪽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고, 일하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우리는 모든 것을 시도해도 아무것도 잃을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1968년은 세상의 첫 해였다.
2025년에 대하여 같은 말을 하고 싶다.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타인을 의식하지 않기. 내 안의 검열 장치를 끌 것. 두려움에서 벗어날 것. 결과의 위력을 포기하면 많은 일을 시도할 수 있다.
이즈음에 읽는 아니 에르노는 적절하다. 끝까지 서술형인 문장이 사람을 끄는 흡인력이 있다. 사실과 경험에서 나오는 많은 것들이 진솔하게 와 닿는다. 신선하다.
매혹적으로 읽힌다.
책의 뒷면에는 본문의 내용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써있다.
210쪽 <여자의 운명 같은 것>에 대한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 속에 떠올랐다. 역사 속에서 그녀의 내면과 그녀의 외부에 흐르는 시간을 느끼게 해주는 모파상의 『인생』 같은 어떤 것, 존재와 사물들의 상실, 부모, 남편, 집을 떠나는 자식들, 팔아 버린 가구들 속에서 끝이 날 <완전한 소설>을
아니 에르노는 이렇게 결심한 것처럼 여자의 일생을 스냅사진을 모티브로 그려내고 있다. 그 여자의 일생이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그때의 프랑스 사회, 문화가 일생 속에 포함되어 있다.
아니 에르노의 역량은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된 개인의 삶을 몇 개의 어휘와 그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들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