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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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엘런 버넷은 소설가로서 보다 극작가로 더 유명하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조지 3세의 광기>, <히스토리 보이스>등의 희곡을 썼고, <어느 멋진 날>, <조지왕의 광기>, <귀담아 들어라>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는 2007년에 발표되어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세계 삼 십여 개 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여기서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란 영국의 여왕을 가리킨다.

만년이 되어 책읽기의 즐거움에 빠진 영국 여왕을 가정하여 소설을 전개시켜 간다. 웰시코기를 키우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으로 상처 입고, 검소한 생활 방식은 실재 여왕의 모습을 가져온 것이고 일부분은 작가 자신이 만든 이미지도 포함되어 있다.

옮긴이는 이 책이 책읽기에 대한 우화라고 이야기 한다. 주인공인 여왕이 서서히 책에 빠져들고 어떤 책 뒤에 다음에 읽을 작가와 책의 목록이 이어지는 과정은 책읽기를 즐기는 독자라면 공감할 이야기다. 여왕의 책읽기는 그냥 읽기에서 메모하는 독서로 나아가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나가는 단계로 발전해나간다. 또한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의 작품도 ‘독서의 근육’이 발전하고 나서 읽었을 때 쉽게 이해가 되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 갈 때는 기쁨을 느끼기까지 한다.

어느 수요일, 여왕은 개들이 짖고 있는 마당에서 이동 도서관 차를 발견한다. 운전사 허칭스와 주방에서 일하는 노먼을 만나고 책을 빌리려고 하자 자신이 어떤 취향의 책을 좋아하는지 모른 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은 특별한 곳에 관심을 쏟아서는 안되는 본분을 가진 여왕이 이동 도서관에서 빌린 책읽기에 관심을 두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왕의 책읽기는 시작부터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지 못한다. 비서관인 케빈경은 여왕의 직무에서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를 하게 된다. 여왕 자신도 자신이 책에 몰두 하게 된 이유를 의아하게 여긴다. 즐거움보다는 의무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본분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사실 여왕은 답을 알고 있었다.

여왕은 노먼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국민을 아는 것이 왕의 의무이기 때문인 것 같아.” (39쪽)

노먼에게는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책에 몰두하는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책읽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책이 초연 하기 때문이라고 여왕은 생각했다.

책은 독자를 가리지 않으며,

누가 읽든 안 읽든 상관하지 않는다. (39쪽)

책은 누구에게도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독자는 누구나 평등하다. (~)

익명이 되는 흥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흥분, 평범해 지는 흥분.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여왕은 이제 자신도 모르게 그 흥분을 갈망하고 있었다.(40쪽)

처음 책읽기의 재미에 빠진 사람들과 여왕은 하등 다를 바 없었다. 나아가서는 자신의 황혼기를 풍성하게 해줄 무언가를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책도 있었고 마음에 드는 책도 발견하게 된 여왕은 읽기에서 메모로, 사색으로 발전해 나갔다.

여왕에게 독서란, 작가에게 글쓰기와 같은 의미였다.

즉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작가가 글을 쓸 숙명을 받아들이듯,

여왕은 책을 읽을 숙명을 인생의 이 황혼기에 받아 들여야 했다. (57쪽)

여왕의 독서에는 체계가 전혀 없었다.

한 권을 읽으면 그 책에 따라 다음 책으로 이어졌고,

두 세권을 동시에 읽을 때도 많았다.

메모를 시작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그 뒤로는 늘 손에 연필을 들고 책을 읽었다.

읽은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은 그대로 베끼는 것이었다. (58쪽)

독서에 몰두하면서 여왕은 삶과 책 사이의 괴리를 깨닫게 된다. 독서는 인생을 풍요롭게도 하지만 80세가 넘은 자신의 삶을 뛰어 넘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다.

여왕은 점차 자신의 삶과 경험이 독서에 도움이 된다고,

책은 읽는 이의 삶과 경험을 넘지 못한다고 느꼈다.(84쪽)

책읽기는 실천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이 늘 문제였다.

여왕은 늙었지만, 여전히 실천가였다.(117쪽)

본분에 충실하고 실천을 중요시 하는 여왕은 결국 글쓰기의 단계까지 나아간다. 이전처럼 책을 많이 읽기 보다는 한 권의 책을 읽고 더 많은 사색과 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책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하여 확신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저 공책의 제목일지라도 뭔 가를 적을 때에는 한때

책을 읽은 뒤에 그랬던 것처럼 행복을 느꼈다.

단순한 독자로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독자는 관람객과 마찬가지인 반면,

쓰는 것은 실천이며, 실천은 여왕의 의무였다.(118쪽)

책은, 아시겠지만, 행동을 촉발하지는 않습니다.

책은 대게 자신이 이미 하기로 마음 먹은 바를,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하기로 마음먹은 바를 확인 시키기만 하죠.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려고 책을 찾습니다. (131쪽)

이 책은 가볍게 쓰여진 문장 속에 번뜩 이는 지혜가 엿보인다. 80세의 여왕을 화자로 정한데는 인생의 노회함을 표현해 보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작가 자신도 그 나이와 비슷하다. 아마도 작가는 책읽기, 공부, 글쓰기에 대하여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유머를 섞어가며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는 효과가 있었다. 처음 책의 재미에 빠져든 사람과 책읽기를 계속 해온 사람 모두에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니까.

말하자면, 책은 책으로 끝나는 겁니다.(131쪽)

이 말은 책 속에 빠져서 현실과 멀어지지 말라는 작가의 경고처럼 들린다. 자칫하면 현실 도피의 방편으로 독서를 선택하는 사람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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