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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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잭 더 리퍼>에서 살인마 잭은 이렇게 말하면서 극을 시작한다.

“1888년 런던에는 낭만이 있었어.”

 ‘낭만’에 대하여 많은 책들이 말하고, 음악이 낭만을 노래하고, 그림에서도 낭만이 넘치던 시대가 있었다. 21세기 들어오면서 ‘낭만’은 구태의연함과 자리를 같이하고, ‘현실 도피’ 와 맥을 통하게 된다. MZ세대는 촌스러움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 에이모 토울스는 낭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볼세비키 혁명 당시의 러시아 귀족의 입을 빌려. 미국의 현대 작가는 왜 이 시점에서 낭만을 말하는 걸까?

 작가인 에이모 토울스는 「모스크바의 신사」가 두 번째 장편이다. 20년 동안 금융업에 종사하다가 2011년에 발표한 「우아한 연인」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 전업 작가의 길은 걷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소설 배경을 20세기 전반으로 삼는다. 「우아한 연인」이 1937년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삼았다면, 「모스크바의 신사」는 1922년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제정 러시아에서 소련으로 넘어오는 모스크바를 무대로 했다.

볼세비키 혁명 당시 구시대의 귀족이었던 로스토프 백작은 혁명을 찬양한 시 덕분에 목숨을 건지지만 본인이 거주하던 매트로폴 호텔을 벗어 날 수 없다는 연금형을 선고 받는다. 이 소설은 백작의 이런 ‘종신 연금형’으로 시작되는 호텔 생활을 그리고 있다. 호텔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종업원들과 투숙객들의 이야기가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시대는 가차 없이 변한다.

필연적으로 변한다. 창의적으로 변한다.

그렇게 시대는 변하면서 케케묵은 경칭과 사냥용 호른뿐 아니라

은으로 만든 호출종과 자개를 입힌 오페라글라스,

그리고 이제는 쓰임새가 없어진 온갖 종류의

공들여 만든 물건들을 골동품으로 만들어버린다. (81쪽)

 백작은 특유의 낙천성으로 변해버린 시대와 상황을 적응해 간다. 새로운 친구인 아홉 살 니나를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바꾸기도 한다.

“습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거나 아니면 활력이 주는 탓에

우리는 갑자기 몇 몇 익숙한 사람들과만 사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단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지금 단계에서

너처럼 멋진 새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을 굉장히 행운으로 여겨.”(100쪽)

 「닥터 지바고」가 겹쳐지지 않을 수 없다. 혁명이 또는 시대의 변화가 개인에게 어떻게 다가 오는가에 대해 완성도 높게 그려 놓은 작품이다. 파스테르냐크는 이 책을 1950년대에 썼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 인이었다.

이에 반해 「모스크바의 신사」는 21세기에 쓰여 졌다. 그것도 미국인에 의해. 은퇴한 투자 자문가는 왜 러시아 귀족에 대해 썼을까? 그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시각으로.

 우리나라에서 이 책은 빌 게이츠와 버락 오바마가 추천도서로 이름을 언급하면서 유명해졌다.

 미국인들은 향수를 느끼는 걸까? 유럽의 벨 에포크가 19세기말 20세기 초였다면 팍스 아메리카나가 전성기를 이뤘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스물두 살 무렵의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에게는

불편하다거나 방해된다거나 심란하다는 따위의 말이 해당되지 않았다.

백작은 예상치 못한 그 어떤 것의 출현도 그 어떤 발언도 그 어떤 변화도

여름 밤하늘의 폭죽처럼 다 환영했다.

경탄과 환호의 대상으로 환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가 않았다.(중략)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 자신의 승인도 없이, 예고도 없이, 허락도 없이-

틀에 박힌 일과가 

그의 일상생활 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244쪽)

 이제 더는 젊지 않았다고 느끼는 로스토프백작처럼 미국인들은 자신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의 ‘낭만’에 대하여 쓴 이 책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 한 권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의 곳곳에서 러시아 귀족의 가면을 쓴 미국의 WASP를 느꼈다면 너무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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