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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생사와 시공을 초월해 작별하지 않는 마음
20년도 더 지난 일인 것 같다. 가족들과 대구 가창의 한 골짜기로 피서를 가기로 했다. 계곡에서 물놀이도 하고 계곡가 평상과 파라솔 아래에서 닭백숙을 먹을 수 있는 흔한 피서지. 그 일이 없었다면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았을 평범한 가족 휴가. 그런데 가창 계곡으로 접어들자 할머니가 달라졌다.
“와 이런 데를 오노. 세상에 갈 데가 없어가 이런 데를 오나.”
갑자기 가기 싫다고 하시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고, 좋은 말로 달래 드리면서 피서지에 도착했다. 도착한 뒤에도 할머니는 뭐가 마음에 안 드시는지 계속 불편해 하시며 어울리지 못하셨고 분위기가 애매해지고 말았다. 당시 내 기억은 거기서 그치고 말았는데 몇 년 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거서 사람이 을매나 많이 죽었는줄 아나?”
부잣집 딸이었던 할머니에겐 똑똑하기로 동네에서 소문난 언니가 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집에서 야학을 하고 신문을 발행하는 데 참여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도 그런 언니의 행동이 왠지 불안해서 모임 하는 방에 돌을 던지거나 집에 오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언니는 보도연맹 가입자가 되어 어디론가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어른들이 쉬쉬하는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가창 어드메로 끌려간 것 같다고 했단다.
가족 휴가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는 사이, 사학도가 되어 역사적 사건으로만 배운 보도연맹 사건이 할머니의 아픔을 매개로 나와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할머니에게 그 사건은 바로 손위 언니를 잃게 한 사건이었고, 수십 년이 지나서도 좀처럼 가족에게 털어놓지 못할 만큼 생생한 상처였던 것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4·3사건을 배경으로 삼는다. 주인공 경하는 손을 크게 다쳐 입원한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고 혼자 남은 새를 돌보러 폭설을 뚫고 그의 제주 집으로 향한다. 폭설과 강풍, 어둠 속에서 두통에 시달리며 경하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인선의 집에 간신히 도착한 경하는 분명 병원에 있을 인선과 마주한다. 실재인지 영혼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인선의 가족사를 알게 된다. 인선의 아버지는 당시 온 가족을 잃고 감옥살이를 해야 했고, 어머니는 부모와 동생을 잃고 오빠의 생사마저 알 수 없게 되었다. 학살 이후 어머니의 삶은 오빠의 행적을 찾는 데 바쳐진다. 수십 년이 지나 마침내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 현장에 이르렀지만 오빠의 마지막 행적지라고 추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과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은 인선의 어머니에게서 인선에게로, 인선에게서 경하에게로 전해진다. 인선도, 경하도 이것이 못내 힘겹지만 밀어내지 못하고 이어진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소년이 온다》와 함께 보았을 때, 국가 폭력과 희생자 문제를 자신의 소설을 매개로 현재의 독자와 잇는다는 것도 한강의 주요한 문제의식이지 않을까 싶었다. ‘동호’를 영혼으로 등장시켜 희생 당사자의 애달픈 목소리를 직접 전한 점,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인선이 영혼의 형태로 등장해 가족사를 전한 점이 눈에 띄었다. 생사와 시공의 경계를 넘어 면면부절 마음을 잇고 사건을 재현하는 소설가의 방식이 사실관계의 재현을 바탕으로 삼는 역사학도로서 인상 깊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라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가 떠오르는 건 과연 우연일까.
그 말을 막 들어신디 명치 이신 데 이디, 오목가심 이디, 무쇠다리미가 올라앉은 것추룩 숨이 막혀서. 내가 죄지은 것도 어신디 무사 눈이 흐리곡 침이 말라신디 모르주. 몰른다곡 내보내야 하는 것을 알멍도 이상하게 대답을 하고 싶었져. 꼭 내가 그 사름을 기다렸던 것추룩. 누게가 이걸 물어봐주기만 기다리멍 십오 년을 살았던 것추룩.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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