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쇄 찍는 법 - 잃은 독자에서 읽는 독자로 땅콩문고
박지혜 지음 / 유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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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의 최대 적은 공허다. 출판이라는 의미의 사슬 구조에서 의미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은 공허뿐인데, 공허가 찾아온 순간에는 돈이고 나발이고 출판 인생은 끝났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때부터 남은 선택은 하나다. 사장이라면 돈 주고 똘똘한 직원 뽑아 책 만들게 시키고 나는 건물이나 보러 다니는 것이고, 직원이라면 어차피 내 돈으로 만드는 책 아니니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해 주기로 마음먹고 월급보다 조금씩 부족한 수준의 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순간의 나를 출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상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매출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 공허해지는 상황이다.” - 박지혜, <중쇄 찍는 법>, 116쪽

<중쇄 찍는 법>을 완독하고, 한겨레출판학교의 ‘팔리는 책 연구회’ 강의를 들었다. <중쇄 찍는 법> 저자인 멀리깊이 출판사의 박지혜 대표님이 다섯 번에 걸쳐 진행하는 특강이다. 책과 강의계획안, 그리고 이번 강의를 통해 짐작하는, 대표님이 힘주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 열과 성을 다해 잘 만든 책은 독자들이 알아본다, 팔린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남으리라는 것이다.

‘공허’를 피해 퇴사했다. 번아웃이란 말로 표현했지만 말이다. 아직 편집자 일을 더 하고 싶고, 잘하고 싶단 마음이 남아 있어서 떠났다. 다른 일도 그렇겠지만, 출판은 일하는 의미를 찾지 못하면 지속하기 어렵다.

그런데 <중쇄 찍는 법>을 읽으며, 이번 강의를 들으며 큰 위로를 받았다. 기획과 마케팅에 집중하고, 편집은 외주로 돌리라는 압박이 공공연하게 확산되는데(“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여전히 열과 성을 다해 책 만드는 일은 중요하고, 그 가치를 반드시 누군가 알아본다는 이야기를 오랜만에 들었기 때문이다. 책 사는 사람은 줄어들고 소장 가치 높은 책이 중요해지는데, 기본기를 닦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기본기와 몰입 없이 그런 책을 어찌 만들 수 있는지 모르겠다. 부족한 기본기를 더 닦고 한 권 한 권에 더 집중하고 싶은데 그럴 새가 없었다. 한동안 ’팔리는 책이 좋은 책‘(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결국 책을 잘 만들어야 한다‘라는 믿음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역시 기본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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