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걷다 - 폭풍의 언덕을 지나 북해까지
이영철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우리나라도 제주도를 비롯하여 많은 지역에서 ‘길’이라고 하는 곳들이 하나씩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너도나도 자연을 벗 삼아 여유롭게 걷는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굳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관광 코스를 둘러보지 않아도, 꼭 맛있는 맛집들이 즐비한 북적이는 곳을 가지 않아도 사람들은 자연을 함께 둘러보고 구경하고 조급해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걷는 길을 택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오히려 여행의 참된 묘미가 아닐까 싶다. 늘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자연을 바라보며 아무런 고민도, 생각도 하지 않고 스스로를 그대로 방치해 둘 수 있는 가장 자연적이고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편안한 상태.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 여행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여행에서 교통편을 이용하여 다니는 것보다 오히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몸이 피곤하더라도 걸어 다니는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나 낯선 곳에서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들을 걸어가면서 눈에 담는 풍경들이 이색적이면서도 설렜다. 그래서 여행 중에는 꼭 다리가 퉁퉁 부어서 힘들어 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교통편을 이용해 편하게 다녔던 여행보다 걸어 다니면서 보았던 것들이 많이 기억에 남았다. 후에 그때의 여행을 생각하더라도 유명한 관광지에서 보았던 것보다 걸어 다니면서 보았던 풍경이나 장면들이 더욱 기억에 생생하게 남곤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을 걷다>라고 하는 영국의 도보여행길 코스가 눈에 들어왔다. 더욱이나 아름다운 대자연의 영국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그곳에 걷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하게 아름답고 설레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북부 지방을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횡단하는 315미터의 도보여행길인 ‘코스트 투 코스트 워크(CTC)’.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는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이 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대략 가늠해 보는 거리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인천 월미도에서 강릉의 정동진까지 정도의 거리라고 하니, 그 거리가 상당할 것이라는 감이 잡혔다. 특히나 이 길의 묘미 중 하나는 영국 정부가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한 세 개의 국립공원인 ‘레이크 디스트릭트’와 ‘요크셔 데일스’ 그리고 ‘노스요크무어스’를 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세 개의 챕터로 나누어 각 국립공원별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첫 시작에는 주요 경로와 이동시기, 주의사항이 적혀 있는데 보라색 빛의 헤더꽃이 만발하는 8~9월이 적기라고 하니 떠난다는 그 시기가 좋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하루하루 저자가 걸어간 일정들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만났던 여행가들, 혹은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와 일상과 함께 그야말로 황홀한 대자연의 사진을 함께 담아내고 있어 보는 내내 대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일게 만들었다. 수많은 여행 책들을 읽으면서, ‘아, 기회가 되면 꼭 가봐야지!’하고 생각한 책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책은 단연 나를 사로잡았다. ‘기회가 되면’이 아닌, ‘꼭 가봐야 겠다!’라고 확신을 주었다. 그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영화 <와일드>를 보면서도 트래킹을 꿈꾸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꿈을 꾸게 된다.

 

문득 책 속의 이 글귀가 생각난다. 몸이 지치고 힘이 들어 타박타박 힘든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문득 길 한쪽에 써 놓은 낙서 하나.

“Why are you walking?" 그대 왜 걷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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