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안녕
정강현 지음 / 푸른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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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안녕>은 일곱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단편집이다. 단편들은 모두가 죽음 내지는 사건들과 연관되어 어두운 단면을 그리고 있다.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사진관을 연 사진사에게 찍힌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셀프 타이머>, 점점 실명해가면서도 시에 대한 애정을 놓지 못한 전직 아나운서이자 라디오 디제이의 이야기를 담은 <시의 폐원>,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몰카의 범죄에 빠지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범되가 제일 쉬웠어요>,소아성애증 범죄자에게 아이를 잃고 13년 후 자신의 딸과 비슷한 유형으로 발견된 아이를 마주한 법의관의 이야기 <너의 조각들>,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그를 찾아 온 딸의 충격적인 고백을 담은 <문병>,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마포대교의 슬픈 운명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안녕>, 여자친구와의 이별 후 이별한 사람들을 위해 이별의 기억에 대한 물품을 보관해주는 이별박물관을 차린 그의 최후에 대한 <이별박물관>까지. 모든 이야기에서는 어두운 사회적인 모습과 더불어 싸이코패스의 잔인한 범죄에 대한 실상까지 엿보게 된다. 저자의 이력이 사회부 기자여서 그런지 모든 이야기들은 마치 뉴스에 보도되어 한두 번쯤 접했을 실제 이야기들과 흡사해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오며 그만큼 가슴 아픈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저자 역시 이 단편들은 모두 자신이 경험했거나 들은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니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나 단편들 중 마음에 와 닿았던 작품은 마포대교에서의 자살 이야기를 담은 <말할 수 없는 안녕>이다. 이 이야기는 마포대교의 시점을 통해 전개된다. 자살을 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 온 사람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을 마포대교의 시점으로 그려내면서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일가족의 자살, 타살을 가장한 자살까지. 소리쳐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마포대교의 모습은 또 다른 먹먹함을 느끼게 한다. 여전히 자살률에서는 단연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너의 조각들>이라는 작품 역시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이전에 많은 사람들을 분노에 휩싸이게 했던 몇 개의 사건들이 떠올라 더욱 가슴이 아프다. 한껏 예쁘게 피어올라야 할 어린 소녀에게 저지른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사건은 그래서인지 더욱 현실적이고, 그 현실적인 내용들에 다시금 분노하게 된다. 더욱이 법의관이자 한 소녀의 엄마였던 그녀의 이야기들이 울음소리처럼 아프게 마음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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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한 저자의 이야기들은 모두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사회의 심각성을 진실되게 일깨운다. 짧지만 힘이 있는 이야기들이 조금씩 짙게 여운을 남긴다. 저자의 다음 작품들이 기다려진다.

이 책은 붕괴된 세계에서 특정 선택을 해야만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인물들의 선택은 지금 우리 사회가 용인하는 도덕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206쪽, 작가의 말 중에서

 

나는 얼마나 더 이곳에 서 있어야 할까. 슬프고 외롭고 쓸쓸하고 억울한 죽음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마포종점이다. 도시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생을 종결짓는, 비루한 삶들의 종착지다. 내일도 다음 달도 내년에도 누군가는 나를 밟고서 죽음으로 뛰어들겠지.
-168쪽, 말할 수 없는 안녕 중에서

 

퇴근 시간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떠밀면서 휘청거리고 있었다. 지하철이 서로를 떠미는 힘으로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부산스럽게 서로를 떠밀고 있는 사람들은 수상한 신문지 뭉치가 여성의 치마 속을 들락거리고 있어도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다. 나는 그 묘한 쾌락이 좋았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이 사회가 쳐놓은 강고한 바리케이트 안을 마음껏 들락거리는 짜릿한 희열이.
-80쪽, 범죄가 제일 쉬웠어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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