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있습니까 - 영화감독 김종관의 60가지 순간들
김종관 지음 / 우듬지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길을 걷다 마주친 풍경, 계절, 사람, 아름다움…

눈과 마음으로 기억한 그 모든 사라지는 순간들.

 

 

“누군가를 쫓은 경험이 또 있다. 시부야에서의 일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를 사려고 기다리던 나는 창밖으로 익숙한 얼굴이 지나가는 것을 얼핏 보았다. …결국 그에게 달려갔을 때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애초에 시부야에는 절대 있을 리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도 가능성 없는 어느 곳에서 문득 아는 사람을 보았다 착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누군가를 쫓는다. -30쪽”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사라지는 것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기억밖에 없다. 영화는 잊혀질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이다. -113쪽”

 

“…흑백의 사각 프레임 안에 그 시절의 골목이 보이고 영화는 사라질 샤미센과 미싱소리를 기억하고자 한다. 기억이나 자취를 중요하게 여기는 영화를 보다가 이제 이런 영화가 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문득 생각하니, ‘영화의 중요한 시간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은 아닐까’ 또 한 번 아쉬움이 스친다. -133쪽”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곁에서 사라져가는 찰나의 순간들. 하루에도 몇 백 번, 몇 천 번이고 지나치고 기억하는 순간순간들. 그 모든 조각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어내는 작가의 글에 괜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기도 하고, 괜히 심각하게 인상을 쓰며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책 속에 담아낸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빛바랜 듯한 사진은 사람의 감정을 더욱 끌어당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렇다 할 멋스러운 사진은 아니다(개인적인 생각으로).

하지만 빛바랜 느낌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흔한 일상의 느낌이 잊고 있는 찰나의 순간을 일깨운다. 거대한 산을 바라보느라 고개를 들고 뻣뻣하게 목을 세우고 살아온 건 아닐까. 그 아래 풍경은 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모르는 사람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쳐 지나가기를 반복한다. 그것 역시 사라지는 순간들이다. 때론 그 순간에 기분이 좋기도 하고, 때로는 그 순간에 화가 나기도 한다. 인생은 이처럼 시시때때로 갑작스러움을 동반하니 말이다. 감성이 메말라 허전하고 텅 빈 것 같은 스산함에 모호한 경계선에 서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던 요즘, 이 책으로 사라진 감성을 일깨우게 된다. 아름다움, 사람,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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