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의 슬픔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장 클로드 무를르바 지음, 김동찬 옮김 / 청어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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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왕위 다툼에 희생된 왕자의 아들이 아이를 막 낳은 한 가정의 품에 전해지고, 부모들은 친아들을 알렉스, 양아들을 브리스코라 명명하며 키운다. 두 아이는 서로를 영혼의 쌍둥이로 여기며 자라난다. 그러나 아버지를 해쳤던 자들이 다시 브리스코를 납치해가면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형제는 이별하고, 8년을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자라나게 된다. 그 사이 알렉스의 모국 프티트테르는 브리스코를 납치해간 장군이 지키는 그랑드테르의 침략으로 복속되고, 그랑드테르는 대륙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18살이 된 알렉스는 브리스코를 만나기 위해 징병에 지원하여 입대하지만, 대륙의 아름다운 여인 리아를 만나 사랑의 탈영을 하며 고생길을 떠나다 아군에게 붙잡혀 그녀와 헤어지게 된다. 총살령을 기다리는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놀랍게도 잃어버렸던 형제 브리스코였다. 펜리스로 개명한 브리스코는 장군에게 입양되어 훈련을 받고 그의 부하로 군에 들어온 것이었다. 알렉스는 재회에 감격하나, 브리스코는 형제를 기억하지만 우린 더 이상 형제가 아니라며, 탈영한 병사를 풀어줄 수는 없다고 떠나버린다. 8년의 세월에 형제는 너무 변해버렸다. 그런데 대륙의 역습으로 그랑드테르가 패배하고, 알렉스와 리아는 그 틈을 타 도망친다. 둘은 열심히 서로를 찾지만 드라마틱하게도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알렉스가 7년을 헤매고 고향 프티트테르에 돌아왔을 때, 그와 리아는 재회하게 된다. 한편 브리스코는 양어머니에게서 자신의 숨겨진 과거를 모두 듣는다.

판타지소설이라고 타이틀이 달려있긴 했지만, 마녀와 유령의 등장을 제외하면 이 소설은 판타지스러운 색채가 묻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대개 판타지소설들이 그렇듯 박진감이 넘치는 영웅의 일대기나 신비로운 마법의 세계같은 내용이 아닌, 그저 한 편의 동화같은 이야기다. 줄거리 상으로는 출생의 비밀과 왕위 다툼의 음모와 전쟁이 곳곳에 있지만, 정작 책을 읽으면 흐름이 너무 잔잔하고 고요해서 신기할 정도다. 작가는 역사적 흐름에서 눈을 거두고, 그 안의 개인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알렉스는 전쟁터의 영웅이 아니다. 연인을 위해 목숨 걸고 도망치는 탈영군인에 불과하다. 중책을 맡은 것처럼 보이는 브리스코도 결코 역사의 중심에 서있지 않다. 군기를 위해 무고하고 쓸모없는 이들을 탈영범으로 몰아세워 희생시키는 군부에 대해 의문을 품는, 그러나 형제를 피신시킬 용기가 없는 나약한 소년에 불과하다. 이렇듯 역사의 중심이 아닌 주변에 선 인물들을 따라가며 흐르는 이야기는 두 형제에게 닥친 시련의 잔혹함과 부당함을 부각시킨다.

요즘 드라마라면 출생의 비밀로 인해 서로 가족임을 모르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르고도 남을 이야기를, 작가는 그저 다르게 자라난 두 아이가 각기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형제는 전쟁터에서 만나서 감동하긴 하지만 메마른 감동이다. 너무 오래 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히려 현실적인 모습이 더욱 가슴을 짠하게 하고 안쓰럽게 만든다.

이 책은 굴곡 없이 차분하다. 하지만 그 차분함이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난 후에도 여운이 길게 남아 잊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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