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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없는 날 ㅣ 동화 보물창고 3
A. 노르덴 지음, 정진희 그림,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 왜 매일 테레비에서는 날씨를 말 해 주는 거예요?” “?”
난 어리둥절할 수밖에. 세상에 터무니도 없어라, 일기 예보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나.
다시 아이의 말, “날씨를 알아서 뭐 하는데요? 아침에 해가 있으면 햇볕이 쨍쨍한 날이고 비가 오면 비 오는 날인데 뭘.”
나는 아연했다. 계속 아이의 얘기를 들어 보았다. 아이 왈. 첫째,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알아 맞히는 게 너무 신기하다. 둘째, 신기한 것도 그렇지만 대체 그걸 알아내면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셋째, 자신이 생각하기에 하늘은 끝이 없을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알아 맞히냐는 것이었다. 난 멍했다.
'우리 아이가 과연 천재이냐 천치이냐?'
그러나 나는 계속 아이와의 대화를 진행시켜 나갔다. 처음부터 아이의 질문을 차단하고 의견을 무시한다면 아이만의 논리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푸셀 엄마도 그 점에서 나와 비슷했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잔소리 없는 날이라니? 이 황당한 제안을 푸셀의 엄마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옆집 엄마라면 당장 놀러 가서 "아유, 아유 푸셀 엄마 오늘 우리 수제비나 만들어 먹자구" 하고 말 걸고 싶은 엄마였다.
'잔소리 없는 날'을 만들자는 아들의 제안을 일탈적인 이벤트로 규정하지 않고 그냥 아이와 오가는 소통의 일부로 여긴 것이다. 아버지도 만만찮다. 푸셀이 공원에서 자겠다고 나가 버리자 공원 벤취에서 느긋하게 아이를 기다린다. 호들값 떨지 않고 무던하게 아이들의 발상과 눈높이 속으로 들어가주기만 한 것이다.
이 동화는 아이들 어른 모두에게 너무나 생생한 실용적 통찰을 준다. 어른에게는 아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깨닫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바로 그 점을,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논리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함과 동시에 어른들의 가름침에 대한 존중과 이해심을 말이다.
'어린 아이로부터 어른이 되는 것은 단 한 발, 단 한 걸음에 불과하다. 고독하게 되는 일, 자기 자신이 되는 일, 양친으로부터 떨어지는 일, 이런 일들이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는 첫 걸음인 것이다.’
이 말은 헤르만 헷세가 한 말이다. 이 말처럼 우리 어른들도 과거에 모두 아이였다. 자라면서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더미에 파묻혀 자아를 터득하고, 결혼을 하고, 노인이 되면서 '순간순간 그 나이 또래에 맞는 자기 자신'이 된다.
이처럼 옛날의 우리였던 어린 푸셀도 그 또래 세계에서는 진짜 자기 자신, 진짜 푸셀이 되었다.
어떤 아이도 이 동화를 읽으면 슬며시 얼마나 엄마, 아빠가, 가족이 소중한 존재인지 느끼면서 성장할 것 같다. 아이의 성장이란 별게 아닌 것 같다. 그냥 자신이 직접 무언가 일을 만들어 보고 결과가 나쁘든 좋든 하나의 생각이나 느낌을 얻으면서 사고력을 키우는 일 같다. 사실, 지식 위주 학습서보단 기본적으로 궁리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고력을 주는 문학서가 성장기 애들에겐 영양소처럼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런 동화류가 아주 적합하다고 느껴진다.
이 책은 애들이 슬며시 엄마 말을 잘 들을 것도 같다. 그러니 이 보다 더 좋은 동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와닿는다. 아이의 정신적 성장을 자연스럽게 나타낸 동화로 강추한다!
* 권유 대상 : 초등 2학년 이상 어른에게도 모두 권한다. 푸셀이 주정뱅이를 보면서 '저 사람을 비웃다니, 착한 사람일지도 모르는데.'라고 하는 등의 대사는 어른들에게 더 성찰을 주는 대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