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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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성장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문득 부모는 조부모 사이의 징검다리가 아니라 끈, 핏줄로 이어지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징검다리는 돌 하나가 없으면 건널 수 없지만 부모의 부재에도 끈은 계속 이어지니까 말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심지어 아빠가 할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셨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할머니에게 특별한 애정이 없었고, 효도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깨닫고 깊은 후회를 했다. 이 책의 제목이 남다르게 와 닿았던 이유다. 지금 할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건 죄송한 마음뿐이다.

 

얼마 전에 소설 <아몬드>를 읽었다. 이야기의 소재와 전개가 독특했던 기억과 아는 이름이라고는 손원평 작가뿐이어서 책의 마지막에 실린 <아리아드네 정원>을 먼저 읽었다. 미래의 실버타운이 배경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흥미 있는 소재였다. 실버타운이 제도화 되는 것이 안정적인 노후의 한 방법이라고 여겼는데 청년과 사회적 부담이 그 제도를 위협하는 슬픈 이야기였다.

220쪽에서 늙어간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던 걸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라는 문장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는유행가 가사가 떠오르는 늙음에 대한 위로의 말이 되었다.

 

<어제 꾼 꿈>은 외로운 노년의 쓸쓸함이 물씬 풍겼다. 조카 손녀가 만든 마법의 스프는 동화에나 나올만한 참신한 이야기였다. 아주 오래 전에 동심으로 읽었던 시절을 떠올리자니 현실보다 더 아름답게 가꿀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동화와 노년의 생은 같은 맥락 같다. 제발 모두의 노년이 그러하기를 바라는 마음 한 점 더한다.

 

<위대한 유산>은 주제를 파악하지 못했다. 위대한 유산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불타버린 저택으로 물질의 덧없음을 유추해야 할까? 게다가 할머니보다 아주머니가 부각된 줄거리도 제목과 어긋난 느낌이었다.

 

가장 인상 깊게 여정을 따라 갔던 작품이 <11월행>이다. 두 엄마와 두 딸의 12일 템플 스테이. 나도 딸과 엄마를 모시는 여행을 해야겠다는 동기를 심어주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시각은 왜 늘 어두운 걸까? 섬세한 관찰력을 지닌,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점이어서 그럴까? 인생이라는 무대가 밝은 면만 존재하진 않음을 알지만, 거부감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대부분의 소설 속 시점은 어두운 면을 자꾸 들춘다. 하긴 그것이 소설의 매력이다.

 

낯선 이름의 작가들 작품을 술술 읽어갔던 이 책을 이제 딸에게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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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혼자가 아닌 시간
코너 프란타 지음, 황소연 옮김 / 오브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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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열자마자 작가의 말에서

-우리를 서로 이어주고 연결해 주는 건 바로 인생의 보편적 경험이다.- 라는 글귀가 먼저 와닿았다.

젊음의 치기 중 하나가 기존의 것에 대응해서 자신의 것, 새로운 것에 더 가치를 두면서 갈등을 야기하는데, 일찌감치 인생의 진리를 터득한 이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 때가 되면 다 알게 된다는 흔해빠진 상투적 문구는 진실이었다.-p92

이 책을 읽는 내내 20대의 젊은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때가 책 사이사이, 여기저기에 있다. 덤으로 사진 감상의 재미도 쏠쏠하다.

-사람들은 날마다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 힘이 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른다.-p121

-배운 것과 정반대로 다른 사람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p177

나는 요즘 들어 친구들과 나눈 대화가 ‘회사에 충성하면서 살 필요 없어. 나를 먼저 챙기고 내가 행복한 일을 해야 해.’인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길을 잃은 사람이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길을 잃어봐야 그래야 여정이 시작되는 거잖아- p213

길을 잃은 후 다시 길을 찾는 것이 여정의 시작이다. 왠지 내 인생이 위로받는 느낌.

-타인을 위해 나를 바꿀 수도 없고

나를 위해 타인을 바꿀 수도 없다-p256

타인을 원망하지 말고 잘 타협하며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는 나의 깨달음을 뒷받침해 주는 문장이다.

개인 방송의 많은 구독자를 소유하고 있다는 저자는 IT 세대의 면모를 지녔으면서 기성세대다운 문장들을 쏟아놓아서 많은 이들이 공감할만한 책이다. 게이라는 점은 많이 특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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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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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느낌이 어둡다. 더구나 전국이 코로나로 끙끙 앓고 있는 요즘인데 40년 전에 코로나 19’를 예견한 소설이라는 문구가 띠를 두르고 있다. 그런 요소들이 역설적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도 있다.

11살 아들을 저세상으로 보낸 엄마 마음을 묘사하는 이야기의 시작이 모성본능을 자극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몰입의 지수가 높았다.

450페이지나 되는 두께의 이야기는 단 4일 동안 일어났던 얘기다. 그 속도에 박진감도 있고 주인공 티나의 여자로서의 삶과 꿈, 사랑 이야기도 나름 공감을 이끌어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물건이 움직이는 서스펜스 영화의 장면 같은 내용이 이어지면서 판타지 소설인가 싶기도 했고, 심리소설 같기도 했다. 코로나 19를 예언한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 등장할지 궁금증이 극에 달할 때쯤은 이야기는 거의 결말 부분에 와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화학 무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출되었다는 얘기는 이 소설에 기인한 걸까? 40년 전 작품인데 우한 400’이라는 바이러스 명칭이 등장하는 건 우연치곤 대단한 일치다.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하루 만에 죽었고, 단지 티나의 아들 대니만이 생존했다는 소설 같은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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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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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소설에 대한 호기심에 만화 <코코>의 장면을 떠올리며 책장을 열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빅 엔젤이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엔젤의 비참했던 청년시절, 미국으로 밀입국한 후의 이야기, 페를라와의 사랑이야기는 이 소설의 시대적 지역적 배경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움이 있다.

소설 중반부터는 빅 엔젤의 배다른 동생 리틀 엔젤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한 번 쯤 언급된 어머니의 심정을 책 너머로 헤아려 보았다. 리틀 엔젤의 엄마 또한 행복하지 않았을 그 가족 구성에 빅 엔젤의 페를라의 형제자매, 각각의 배우자와 조카들까지 가계도를 그릴 수밖에 없는 방대한 이야기다. 빅 엔젤의 형제보다는 적고 배다른 형제도 없지만 내 동생들 셋과 그 가족, 엄마의 이야기를 한다면 이만큼 방대해지겠다고 여기니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한 남자의 생을 이어간 이야기가 두꺼운 책만큼이나 다양하다. 마지막 생일을 앞둔 사람이 자신의 생을 돌아본다면 어떨까?

임종을 앞두고

너희들과 지낸 시간들은 행복하기만 했다.”라고 하신 아빠의 말씀이 떠올랐다.

지나간 시간은 미화된다. 미움의 감정에 이해라는 미덕이 스며든다. 좋았던 순간엔 더 많은 연민과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빅 엔젤의 마지막 생일파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축하는 나누는 모습을 보며 엄마나 남편의 생일파티를 한 번 쯤 성대하게 치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이라는 의미 말고 즐겁고 행복한 축하의 말을 나누는 사랑의 생일파티.

외국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느끼는 정서가 다른 농담이나 상황이 다소 어리둥절하고 산만한 느낌은 여지없었다. 번역이 자연스럽지 않은 탓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인디오와 브라울리오의 출생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미니라든지, 페를라에게 보낸 편지 구절이 나오는 등의 어지러운 맥락을 따라 가기가 힘들었다. 술술 읽을 수 없어서 자주 뭔가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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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레폴레 아프리카
김수진 지음 / 샘터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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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행기는 아니지만 가이드북 같고, 아프리카 여행의 욕구를 자극한다. 용감한 30대의 여기자가 반 년 간 체류하면서 겪은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아프리카에 대해 나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커다란 대륙에 여러 나라가 있지만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의 나라로 역고 있다. 원주민들은 각각의 특징이 있지만 모두 검은 피부라는 것, 기온이 높아서 의복을 제대로 갖추지 않는 다는 공통점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사막의 이미지가 강하다. 물이 부족한 땅이기도 하고, 뜨거운 태양이 한몫 더 거든다. 그래서 짐바브웨를 폭포의 나라나고 하는 것이 낯설었다. 빅토리아 폭포는 처음 발견한 영국 사람이 영국 여왕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하지만 원주민들이 부르는 천둥 치는 연기라는 이름이 훨씬 더 공감이 된다.

 

첫 나라 에티오피아와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친숙한 명칭들이지만 실제로 알고 있는 건 거의 없다. 각종 커피 생산국이라는 것과 6·25전쟁 참전국이었다는 정도다.

그곳에도 인터넷카페가 있고, 테러의 위험 때문에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어느 규모 이상의 건물을 출입하려면 짐 검사를 한다고 한다.

보훈의 달 6월을 맞아 TV에서 6·25 , 에티오피아 파병부대가 모든 전투에서 전승을 기록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저녁 칵뉴부대 이야기를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우연을 여러 번 겪었다. 실재했던 일은 언제 어디서든 거론되므로 그런 우연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지은이의 여행 중 하이에나에게 낙타고기를 먹이로 직접 주었던 것과 낙타시장을 갔던 것이 인상에 남는다.

그리고, 원시부족 카로족이 사진을 찍으면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 사진 찍어달라고 조르기까지 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원시부족하면 물질과 거리가 먼 순수함이 떠오르는데 문명인들이 그들에게 물질만능주의를 전파한 것이 씁쓸했다.

 

평화콘서트를 열어야할 만큼 평화를 갈구하는 내전이 빈번한 나라 남수단. 이태석 신부의 봉사활동으로도 알려진 나라에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등장했던 한빛부대도 만났다. 주민들을 위해 의료, 구호, 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르완다의 좌표가 인간의 심장 위치와 비슷하다고 아프리카의 심장이라고 한다는 르완다. 벨기에 식민지 시대에 생긴 부족 간의 갈등이 65,000명 대학살이라는 비극을 만들었다니 놀라웠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6·25와 통일 후의 광경을 혹시나 하고 떠올렸지만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남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에서 작가는

인생에서 여러 경험과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생각과 느낌이 차곡차곡 쌓이고, 이러한 것들이 다시 삶의 안내자가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가장 강하게 다가온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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