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협려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이덕옥 옮김 / 김영사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역자는 이 책의 주요 독자층을 중학생 정도로 여긴 것 같다. 고려원에서 옛날에 나와 절판된 지 오래인 신조협려의 번역은 고등학생부터 성인층까지를 고려한 듯한데... 사실 나는 신조협려의 광팬이다. 두 가지 판형으로 스무 번은 읽었을 것이고 2006신조협려를 비롯해 영상물도 모두 보았다.

신조협려는 단순히 무협 로맨스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상 신조협려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감정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고독이다. 주인공 양과는 어렸을 적에 부모를 잃고, 세상에 태어나 사랑과 관심이라고는 사부인 소용녀에게밖에 받아본 적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16년간의 긴긴, 소용녀에 대한 기다림이 당위성을 가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성격은 장난을 좋아하고 쾌활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외곬수의 그것이다. 혹은 반항아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성향은 소용녀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계속해서 방해를 받으며 한쪽팔이 잘리는 등 역경을 겪으며 더욱 강화되는데, 주인공의 고독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주인공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이 책, 김영사 판에서는 신조협려에서 너무나 중요한 그 양과의 타고난 고독감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 양과 뿐 아니라 역시 세상에 친척도 부모도 없는 홀홀단신 소용녀의 감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섬세하고 복잡한 감정을 김영사판에서는 잘 느낄 수가 없고 고려원판에 비해서 무척 단순하게 느껴진다.

신조협려의 백미라고 하면 양과가 16년간 소용녀를 기다리다 드디어 디데이가 되어 절정곡 절벽에서 며칠을 기다리다가 결국은 소용녀를 만나지 못해 절망하며 부르짖다 절벽으로 몸을 날리는 바로 그 장면이 아니겠는가? 다시 봐도 고려원의 번역은 참으로 적절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은데, 김영사판은 많이 아쉽다. 예를 들면-고려원판: "그러나 나는, 그러나 나는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잠들지 못해 꿈조차 꾸지 못했어!"  김영사판: "그러나 나는 사흘 밤낮을 자지도 못했으니 꿈에서조차 볼 길이 없지." 고려원판: "16년동안 당신은 적적하지도 않았단 말이오?" 김영사판: "16년 동안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또한 양과가 절벽으로 뛰어들 때는 고려원판: "그의 두 발이 붕 뜨는가 싶더니..." 김영사판:"양과는 벌떡 일어나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이와 같이 고려원판 번역이 나름의 고독과 은유가 살아있는 반면 김영사판 번역은 좀더 직설적이면서 되도록 쉽게 번역하였다. 외곬수 다혈질인 양과의 성격이 좀 더 완곡한 대사로 표현되어 있는데 8권 내내 이러하니 주인공의 성격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소용녀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고려원판에서는 차갑고 이지적인 분위기로 잘 묘사되어 있는데 김영사판에서는 그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하고 좀 더 평범한 십대 소녀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캄캄한 석실 무덤속에서만 자라면서 감정을 억누르는 무공을 익히다 보니, 어른스럽고 세상물정을 잘 모르지만 이것 아니면 저것인 극단적인 성격의 소용녀인데 그러한 소용녀의 대사들을 너무 쉽게 표현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어 버린 것 같다. 현대적으로 번역하려다 보니 중요한 것을 빼먹은 것 같다. 김영사판의 소용녀는 애교를 부리면서 '몸을 비비꼬며' 예쁘게 눈을 흘기면서 "너 나빠! 미워!"라고 말하는 소용녀인데 이 부분은 너무 심했다..........

또한 양과가 소용녀를 부를 때 김용의 원본에서는 "고모"라고 부르는데 발음은 "고고"라고 중국에서 손위의 여자 어른을 부르는 말이다. 원작에서 양과가 편한대로 부르기 시작한 이 호칭 때문에 나중에 서로에게 연애감정이 생긴 이후에도 남들에게 그들이 친척간이라고 오해를 받는다든가, 손윗사람으로만 여기는 듯한 호칭 때문에 서로간의 애정을 확인하기 힘들어지는 등 오해가 많이 생기는데, 고려원판에서는 양과가 소용녀를 "아가씨"라고 부른다. 김영사판에서는 "선자"라고 부르는데 이는 번역자의 임의로 그렇게 번역하였음을 밝혀두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선자"라는 호칭으로는 원작에서의 호칭 때문에 생기는 오해들을 설명할 수가 없으므로 차라리 "아가씨"나 혹은 그냥 원작대로 "고모"라고 부르는 게 나았을 뻔 했다고 생각한다. 이 호칭 때문에 김영사판에서는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너무나 오랫만에 나오는 신조협려 완판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으나, 신조협려를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부분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을 좀 더 깊이 이해해야 하지 않았을까. 또한 중국 시조들을 번역한 부분에서도 고려원판 번역이 한층 운치와 깊이가 있다.  아쉽다,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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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lotine 2006-11-23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신 님 의견을 충분히 인지하면서 책을 읽어봐야겠네요.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