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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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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홉 살 인생, 고슴도치의 작가 위기철 소설가의 세 번째 소설 ‘껌‘을 읽고 있다. 제일 처음에 실린 단편 읽고 나서야 이 책이 단편소설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일 처음으로 나오는 단편은 ‘껌‘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매일 아침 껌을 씹어 멀리 뱉어내는 훈련을 한다. 입술과 혀를 단련하고, 기록을 세운다.
이해할 수 없는 이 행위를 읽고 있자니 모든 꿈은 껌을 멀리 내뱉는 도전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되든 안 되든 말이다. 돈이 따라와서 사람들이 존경하고 부러워하든, 전혀 돈이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한심하게 생각하든 꿈이란 같은 가치를 가졌다.

-
주둥이를 한 번 비틀 때마다 만 원짜리 지폐가 한 장씩 나온다면 그들도 고개를 끄덕일지 모른다. 그러나 주둥이를 아무리 쥐어짜 봐야 나올 것은 침밖에 없었다.
-‘껌‘ 중에서

우습거나 무가치한 것도 아니고, 고귀하거나 위대한 일도 아니다. 비웃을 것도, 칭찬할 것도 없다. 부끄러워할 것도, 뿌듯해할 일도 아니다.
꿈은 그저 껌을 씹어 멀리 뱉어내며 신기록을 세우는 정도의 일이 아닐까.

꿈과 도전은 자아의 확장을 가져다 준다. 성취가 주는 감격과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
8미터 62의 세계는 그가 아직 발을 디뎌보지 못한 세계인 것이다. 발을 디뎌보지 못한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는다는 사실! 감격은 바로 그런데서 오는 것이었다.
-‘껌‘ 중에서

나도 꿈이 있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자아가 이타적 사랑으로 완전히 비워지는 것 말곤 모두 의미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의 확장에 따른 희열은 오롯이 나에게만 속한 일이다. 나의 존재와 세계가 넓어지는 것도 소중하지만 얼마큼 가치가 있는 일일까, 진정 중요한 일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가 껌뱉기 훈련에 몰입하고 집중하고 노력한 만큼, 다른 생각않고 그림을 그릴 땐 열심히 그림만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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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바닷바람 맞으며 읽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지금이 시월이었다면 책을 읽다가 몇 번이고 바닷바람을 쐬러, 해변에 앉으러 뛰쳐나갔을 것이다.


2.
내게는 중요하지만 실은 잘 보이지 않는, 작고 사소한 일을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존재가 좋다. 프란시스 잠의 시처럼 일상을 사랑하게 해주는 이런 이야기들이 참 좋다.
마음 쓰였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부분이 많이 나와 있었다. 변화나 고요에 대한 것들. 예민하고 쉽게 지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도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일상에 매몰되는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알았다. 삶을 지속하게 하는 것은 공백이라는 것도. 의식적인 선택력을 위해, 진실한 깨달음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한의 생활을 단순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적혀있는 부분은 지지받는 기분이 들어서 특히 좋았다.


3.
삶에서의 괴로움은 항구적이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열정, 젊음, 생활, 사회적 위치... 작가는 해변에서 인생을 닮은 조개를 관찰하며 지나온 삶의 변화를 천착하며 받아들인다.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니, 기다리고 있던 다음의 삶이 여명처럼 밝아왔다. 그리고 변화를 대하는 태도가 더욱 유연해진 것 같았다. 지속할 수 없는 것을 지속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새로운 위치와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참 지혜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섬에선 과거와 미래는 차단되고 오로지 있는 거라곤 현재뿐‘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사람이 여행을 가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현재를 살기 위해. 여행은 현재를 살게 한다. 후회 가득할 때는 재삼재사 과거에 산다. 일할 때는 미래에 살게 된다. 일을 잠깐 쉬는 지금, 나는 현재를 살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부분에서 나오는 문장처럼 ‘언제까지 섬 생활을 언제까지고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 자리를 털고 해변을 떠나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내 자리가 어디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고요하고 친절하며 현재를 살게 했으면 한다. 그저 소망이다.


5.
어릴 적에는 무엇이든 변하는 것이 참 싫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던 사람을 상황의 변화로 자주 볼 수 없게 되는 것과, 처지의 변화와 거리의 변화 같은 것들이 말이다. 지금 여기에 나도 있고 그 사람도 있는데 그때의 나로서, 그때의 상대로서 보냈던 지난 그 시간이 다신 올 수 없다는 것이 뭔가 견딜 수 없었다. 그 견딜 수 없는 감정은 원망이었던 것 같다. 변하는 것에 대한, 시간에 대한 원망. 빛 바라게 하는 시간을 갈파하고 도로 찾아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언제까지나 그 시간 안에, 그 관계 안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끝까지 시간 앞에서 고집부리고 강변했다면 나는 매우 불행했을 것이다. 또한, 릴케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완전무결한 공유‘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종일 붙어있는 것이 행복하고, 떨어지면 불안했다. 아주 먼 옛날에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성숙하다˝와 같은 의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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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주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완독했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마음이 차분해야 가능하구나, 싶었다. 요즘 하는 거 없이 마음만 방향 없이 달리고 있었는데, 아주 좋은 진정제가 되어주었다.

2.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야고의 지혜와 오셀로의 단순함이었다.
악하고 교활한 이야고. 그러나 무릎을 ‘탁‘ 칠만한, 오래 기억하고 싶은 대사는 이야고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용감하고 인정받는 멋있는 장군 오셀로. 그러나 그의 ‘수수하고 탁 트인 성품‘과 ‘겉으로만 정직해도 진짜 그렇다고 생각‘하는 면은 이야고가 그를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휘두르기 딱 좋은 모습일 뿐이었다.
오셀로의 데스티모나에 대한 믿음과 이야고에 대한 믿음의 크기와 수준이 같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그를 진실로 사랑하는 데스데모나와 겉과 속이 너무나도 다른 이야고를 똑같이 믿고 좋아하는 오셀로의 모습은 꼭 분별없는 나의 모습인 것만 같아서 괜히 부끄러웠다. 똑같지 않은데 그는 똑같이 여겼다. 양과 뱀을 똑같이 대했다.

3.
데스데모나는 오셀로가 겪은 위험 때문에 그를 사랑한 것이고, 오셀로는 데스데모나가 자신을 동정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한 거라고 오셀로는 말한다. (데스데모나의 오셀로와의 사랑에 대한 생각은 극 중에 나오지 않으나, 그녀는 오셀로의 ‘무엇‘ 때문이 아닌 무조건적 믿음과 사랑을 보인다.)
‘무엇‘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것은 낭만적이면서도 위험하다는 경고를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듣곤 한다. 예전에 ˝네가 사랑에 빠진 상대방의 ‘어떤 점‘ 때문에 네 발등을 찍게 될 것이다.˝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의미인지는 대충 알 것 같았지만, 그럼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선택할 수가 있나? 아직 나는 이성의 무엇을, 왜,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내게 잘해주면 좋아했을 뿐이었다.
계속 생각하다 보니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소수이며, 대다수의 사람은 사랑 이후에 깨닫게 되어 곧 사랑에 빠질 어린 젊은이들에게 알려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4.
오셀로는 왜 이야고의 말에 흔들렸을까. 그는 ˝내가 왜 결혼했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자기가 생각해도 그녀가 그럴만한 사람이기에? 이야고의 말이 너무도 그럴듯하니까? 왜 우리는 믿음이 흔들릴까. 그리고 그는 왜 사실을 먼저 확인하지 않았을까...
이미 의심과 질투에 휩싸여버리면 사실확인이라는 것이 무의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33쪽을 보니, 의심이란 원인제공과 무관한 제 마음의 문제였다.
사랑하는 사이는 믿음이 있어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믿음직하지 않은 걸 억지로 믿으려 노력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상대를 믿는다는 것이다.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감정적으로 사랑했을 뿐, 그녀를 겪어보지 못했던 게 아닐까.
오셀로가 주변 인물들에게 베푸는 칭찬과 신뢰와 사랑은 표면적이다. 그랬기에 이야고의 거짓된 이야기에 데스데모나에 대한 믿음이 와장창 부서진 거겠지. 이야고가 진짜 어떤 자인지, 데스데모나가 진짜 어떤 여인인지 알지 못했고, 알기 위해 별 노력을 하지 않았다. 사실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듯한 증거 없는 험담에 믿음이 흔들린다면 상대가 그럴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거나, 상대를 잘 모르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결국 제 마음의 문제.

5.
유순한 데스데모나는 오셀로가 오해하여 그녀를 심하게 대할 때도 ˝내가 이런 취급 받는 건 당연해, 지당하지.˝라고 말한다. 이 극에서 머리를 쓰는 건 이야고 뿐이다.
무조건 자기 탓으로 돌리는 건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원인을 찾고, 믿을 사람을 믿어야 한다.

6.
읽는 내내 그저 나는 이야고에게 놀랄 뿐이었다. 이런 게 뱀처럼 지혜롭다는 건가 싶었다. 이야고와 같은 자들이 악한 마음과 더 많이 빼앗기 위해 갖은 꾀를 내듯이, 그리스도인 또한 선을 위해 그정도로 지혜로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
극 중에서 상대를 관찰하는 것도 이야고 뿐이다.
다른 인물들은 자신이 가진 믿음의 크기대로 상대방을 믿고, 생각한다. 마음에 휘몰아치는 감정대로 상대방을 의심하고 확신한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보지 않고 제 믿음대로, 감정대로 생각한다.
오셀로가 어리석다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크고 작은 일에서 이런 실수를 범한다.
제 그릇의 크기가 아닌 상대방의 모습 그대로가 믿음의 근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8.
하나님을 믿는 것 또한.

9.
그들을 비극으로 몰고 간 것은 오셀로일까, 이야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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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경고 - 복음주의 대각성 신학과 청교도 구원론에 근거한 조직신학 종말론
노병기 지음 / 예영커뮤니케이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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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경고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주님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읽으며 느꼈던 것은 그 많은 그리스도인이여, 제발 진정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이 책은 믿지 않는 자를 향한 경고가 아니고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들을 향한 경고이다.
˝너 그러다 지옥 간다.˝, ˝에이 천벌 받을 녀석!!˝ 이런 식으로 정죄하는 게 아니라, ˝기름 있으신가요? 어서 준비하셔야 해요.˝, ˝흰 예복이 있으신가요? 이건 정품이 아니네요. 저쪽에서 정품으로 다시 꼭 준비해놓으세요!˝ 하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자 노병기 목사님께서 자신은 이신칭의를 믿지만 거룩한 삶이 뒤따라야한다고 강력하게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았다. 사람은 연약하므로 믿음이 있으면 적당히 죄지어도 되고 거룩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과 쟁론하기도 힘든 일일 텐데 말이다.
거룩한 삶을 강조하는 그 마음과 동기를 잘 생각해보니 바로 사랑이었다. 바로 사랑이었다! 무너진 하나님 나라 성벽을 보고 주야로 울며 기도드렸던 느헤미야의 마음인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가치관을 갖고 사는 것이 배도다.˝ 라고 적힌 부분을 보며 나는 무엇을 옳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속기도 쉽고 대충 애매하게 넘어가기도 쉽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확실히 버리기로 작정하셨을 때 미혹의 영을 보내신다고 하셨다. 그 인자하시고 영원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말이다.

모두 함께 확실히 거듭난 후 거룩한 삶을 살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깨어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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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은 주인공의 장례식장에서 시작한다. 그의 유년시절, 찬란한 젊음, 세 번의 결혼, 실수, 사랑이라 믿었던 순간, 조그만 이기심, 수술, 은퇴, 평생의 꿈, 수술을 거쳐 마지막 수술대에서 눈을 감는다. 이렇게 끝난 이야기는 다시 책의 처음과 이어진다. 나는 책을 다 읽고서 자연스럽게 다시 앞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또다른 이의 삶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책의 제목은 에브리맨, 보통사람이라는 뜻이다.

2.
우리에게 옳은 것이었는지 비교할 수 있는 또 다른 생이 없더라도 결혼이나 많은 선택은 결과를 통해 곧 알 수 있다. 그러나 죽음 같은 경우는 어떤가. 좋은 죽음이란 무얼까.
인류는 우주나 인체, 자연의 순환, 인생의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관찰하며 꽤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 티끌만하지만 본질 대부분을 알게 된 것처럼 방대한 지식이 쌓였다. 많은 시간이 흘러 기술이 바다 속, 하늘 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낼만큼 발전하더라도, 연구하고 반복해도 알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죽음일 것이다. 두렵고 겸손해지는 사실이다.

3.
무연고자로 죽는 것이 정말 비참한 죽임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혼자였을 리가 없는데, 쓸쓸히 혼자 죽는 것이 비참하다. 슬퍼해주고 추억해줄 사람 하나 없는 것이 비참하다. `화가의 마지막 그림`이라는 책을 보면 꽤 많은 화가가 이런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것을 보면 명화는 칭송받는 것 만큼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 싶다. 미술사에 의미 있는 작품을 남기면 무얼 하나. 작품을 통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아도 살아있을 때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했는데. (기억하고 싶지 않았거나)
그리고 가장 최악의 죽음은 한 사람이 죽으며 그의 삶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죽음이 최악의 죽음이다. 살면서 추구했던 목표, 소망, 노력 같은 것이 한순간에 먼지보다 더 의미 없게 변모하는 순간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그의 소중한 것들은 남겨진 사람이 뒤처리해야 할 짐이 되고, 그가 품은 평생의 소망은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가 평생 처음부터 없었던 신기루에 온 생을 바쳐 살아왔던 것처럼.

4.
삶이 찬란하고 영화로웠을수록 늙어감과 무능하게 죽어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가 보다. 반짝거리는 어리고 젊은 시절은 기뻐하고 만족하며 다가오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시간`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젊음의 영광이 찬란할수록 목적 없는 노년의 낮과 불확실한 밤이 견디기 힘든 것이다.

5.
이 책 마음에 든다. 평범한 이기심의 말로를 정말 잘 보여준다. 주인공의 삶을 통해 흔한 욕정과 조그만 이기심이 나비효과처럼 삶에 불어오는 파장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특별한 주인공이 아닌 보통 사람의 이야기이다.
기뻐하며 열심히 사랑하고, 감사하고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 하루를 선하게 살고 싶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음을 기억해야겠다.

6.
최근 (심리적으로는 머나 혈육은) 가까운 이의 죽음과 가까운 이들의 소중한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죽음의 때와 그 이후를,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어떤 이가 스쳐 가듯 얘기해주신 것처럼 나는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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