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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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의 첫 문장. ˝새 원장이 부임해온 날 밤, 섬에서는 두 사람의 탈출 사고가 있었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있는 섬으로, 그곳에서 원장의 권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조백헌 원장이 세상에서 쫓겨나고 죄인 취급받는 그들에게 천국을 만들어주려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것들과 드러나는 것들의 이야기이다.

2. 책의 분위기와 인물들의 첫인상은 소설 태백산맥이 떠올랐다. 조백헌 원장은 심재모, 이상욱 보건과장은 김범우. 황희백 노인은... 이름이 기억 안 난다. 김범우가 상담하러 많이 갔던, 마을에서 영향력 있는 어르신이었는데. 암튼.

3. 책에서는 `동상`이라는 키워드가 꽤 중요하게 등장한다. 이상욱 보건과장은 조 원장이 부임해 왔을 때부터 그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를 지켜본다. ˝그가 꿈꾸는 낙원에다 자신의 동상을 걸게 해서는 안 되었다˝ 라는 생각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조 원장이 동상을 지닌 자인지, 지니지 않은 자인지를 탐색한다.
대충 동상이란 공명심처럼 자기 의를 쌓고자 하는 것을 말하는데, 굉장히 은밀한 마음의 동상까지 다루고 있어서 읽다가 놀랐다.
원생들에게 있어서 마음에 세워진 동상은 인간을 우상화하는 것을 표현한 듯했다.

4. 제일 슬펐던 장면.
부모와 떨어져서 지내는 미감아들이 부모님과 면회하는 장면. 이 내용도 실화일 줄이야...
한센병 치료제 DDS가 1940년대 개발됐다고 하는데, 이 소설은 1970년에 쓰였나, 배경인가 하는데도 아직도 병에 대한 오해가 많고, 병을 죄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다.
그리고 책에는 자세히 묘사되어있진 않지만, 그들이 섬에서 목숨을 걸고 헤엄쳐서 탈출하는 이야기도 마음이 아팠다. 허락을 받고 자유롭게 섬을 드나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서 이 섬을 나가고 싶었던 그들의 절박한 마음. 삶보다 더 간절한 사람으로서, 라는 것. 병이 다 나았어도 벚꽃잎 같은 상흔이 눈가에 남은 그들은 사람에게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한 번 그 병에 걸리면, 완치된 다음에도 안락한 군중 속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5. 과거 주정수 전 원장의 2차 확장공사에서 드러난 야욕과 자신을 성과를 위한 목표. 자신의 처지를 돌보느라 동료 원생들의 처지를 배반하는 원생들의 대표, 평의회 사람들. 이웃과 섬사람에게 갚아야 할 은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환들을 괴롭히고 다니는 이 순시. 이 순시에게 보복하여 매정한 단종수술을 당한 마을 청년들.
무엇이 인간을 이렇게 만드는 걸까. 권력에 대한 욕심? 권력에 대한 두려움? 권력 그 자체? 권력을 통해 드러나는 것일까, 권력으로 인해 변하는 것일까?

6. 지난하고 모진 세상에서 좌절과 불신만 할 수 없는 게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에 그것뿐이라면 정신병에 걸리고 말겠지.
믿고 싶고 희망을 품고 싶다, 좋은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소록도 사람들도 희망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본능을 억제하지 못했다. 이걸 이기적으로 이용한다면 정말정말정말 나쁜 사람...

7. 조 원장은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동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인물로 그려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맞고, 원장을 경계하는 이상욱과 예민한 원생들로부터 그가 동상을 세울 수 없도록 지켜지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 소설 안에서 조 원장은 자신도 몰랐던 동상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을 계속 발견한다. 이것을 보고 우리나라 정치 상황이 많이 떠올랐다.
소록도, 작은 나라 같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작은 대한민국일 수가 있을까? 상처가 많은 우리나라. 한이 많은 우리나라. 우리가 과거를 잊고 권력이 있는 자들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천국을 만들게 될 것이다. 우리가 경계해주지 않으면. 이상욱처럼 하나하나 지켜보고, 과거의 상처를 계속 환기시키는 것에 게을러지면 안 된다. 원생들처럼 잘 따르다가도 그가 야망으로 변모하는 것 같으면 처음 약속을 들고 몰려와야 한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선택했으니까.

8. 스스로 알아차리지도 못한, 드러나지 않은 이기적인 욕망과 행동의 방향을 두고 조백헌이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가능성만으로? 그렇다면 황 노인과 이상욱을 포함한 섬사람들의 원장을 향한 의심은 지나친 경계가 아닌가.
소설은 중간까지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소설의 끝나갈 때쯤에 황 노인은 조 원장을 인정한다. 오히려 그를 믿지 못했던 자신들이 사랑이 없던 거라고.
조 원장과 환자들의 관계를 인간관계로 볼 것이냐,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볼 것이냐, 구원자와 구원받는 자로 볼 것이냐에 따라 함의가 매우 달라질 것 같다. 길지 않은 한 권의 책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니. 심지어 재미도 있어!

9. 윤해원. 병적인 인물. 누군가 병에 걸렸을 때, 그의 가족이 걸릴 수 있는 가장 큰 마음의 병을 보여주는 인물.

10. `인간적이다` 라는 말 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남들과 같아지고 싶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내 이름으로 해내 보고 싶다. 의심한다. 상처받는다. 잊지 못한다. 잊는다...
이상욱은 인간적이다. 과거의 상처에 지배받는다.
원생들은 인간적이다. 의심하나 또다시 믿는다.
조 원장은 인간적이다. 마음속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동상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11. 달과 6펜스를 읽고 꿈을 좇는 것이 속물적 근성과 다를 바 없는 욕구 중 하나라는 생각을 정리한 적이 있다. 꿈을 좇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여기에 권력까지 더해진다면? 히틀러 탄생?

12. 나는 처음부터 조 원장에게 믿음이 안 갔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계속 아무 말도 안 했으면, 분노도 내보이지 말고 물어보지도 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했다. 뒤로 갈수록 이상욱 과장을 통해, 황 노인을 통해 자신의 진짜 마음의 방향을 발견한 조 원장이 그 마음을 선택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 시작의 동기보다 순간의 선택이 더 고귀한 것이고 믿음직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믿음으로서 모험을 하기보다는 온존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

13. 원생들은 병 때문에 마음이 이미 사람이 아닌 듯하였다. 자신들도 자신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사람으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소망만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사람은 자신으로서 의미 있게 존재하기보다는 주변과의 관계로부터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14. 내가 한센병 환자가 된다면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진짜 용서하고 감사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상처받지 않은 듯이 살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그들의 경험과 상처는 상상 초월이다. 한센병뿐 아니라 비이성적인 차별로 마음이 성치 않은 사람들이 많다. 나는 세상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음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아가다 보면... 그래도, 그러나.

15. 왜 기독교는 보통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많이 그려질까?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을 한 것도 있고, 그렇게 보이기도 해서인 것도 있겠지? 그래서 거룩한 구원의 저자 노병기 목사님은 ˝이성적인 것이 가장 영적이다˝라는 말을 하셨다.
조 원장의 설득에 자신들의 행동하고 선택하는 이유를 하나님 지상명령으로 치부하고 마는 나약한 나환자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인들을 비웃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하지 않은 약속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땅에서 냉대 학대받지 않고 살 땅을 스스로 만드는 것, 사업이 성공하고 건강해야 하는 것. 그들도 원장처럼 명분이 필요했고, 그 명분을 모호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거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내가 붙들고 있는 소망이 이런 게 아닌지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이다.

16. 소설 중간에 기독교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밀양을 봤을 땐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땐 교회에 다니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도 기본 전제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용서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저래? 저건 진짜 뉘우치고 용서받은 게 아니지. 라고 생각했다. 그 행동에 다시 한 번 용서를 빌어야 할 판이었다. 물론 영화는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용서한다고 하는가`에 대한 분노가 그려졌지만, 그 범죄자가 진짜 자신의 죄성을 알고 죄를 뉘우치고 용서받았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어서 그게 참 이상해 보였다. 영화처럼 소설도 믿는 자들만의 하나님을 얘기한다. ˝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우린 너를 심판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결해라.˝라고 말하는 황 노인과 원생들. 후덜덜...
어떤 면에서는 당신들의 천국이란 제목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당신들의 천국으로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신들의 천국. 우리와 똑같이 죄를 지으면서도 믿는 당신들은 용서받고 당신들은 갈 수 있다는, 그 당신들의 천국.
실제 삶이 어떻든 믿음의 고백이 마치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고, 특권이라는 생각을 하는 자들이 많다. 더 많아지겠지.

17. 이상욱은 조백헌에게 그들에게 선택적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일의 선택이 열려 있지 않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필생의 천국이란 견딜 수 없는 지옥이라고. 그렇게 소설은 사랑의 방법을 이야기한다. 얼마나 행복해 보이느냐보다 선택과 변화가 행복의 요소이니, 낙원보다 우선인 것은 자유이고, 자유보다 사랑과 용서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이상욱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행복을 점지해주는 것으로는 상대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그의 말이 마음에 가장 와 닿았다. 상대방에게 유익할 것 같은 일이 아닌, 실제 상대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18. 당신들의 천국. 한스러운 제목이다.
조원장의 원생들을 싸잡아 지칭하는 ˝녀석들˝에서 나는 이미 `당신들의 천국`을 보았다. 흥분하면 곧바로 반말로 소리치고 총을 꺼내 드는 원장을 보며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 누구를 위한 것인가? 왜 이리 화를 내는가?
그리고 고양되게 하고, 자신감을 주고, 활기를 갖게 하고, 좋아하게 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되나. 자꾸 사업 사업... 지금 주면 안 되나 천국을. 이 섬사람들의 행복은 어디서 찾아져야 하는가. 현실이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조 원장의 최대 실수는 그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안다.

19.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섬과 사람의 비밀이 한꺼풀, 한꺼풀 벗겨진다. 그리고 소설의 많은 것이 실화이다. 조 원장도 실제 모델이 있다고 한다.
아래는 소록도에 관한 웹페이지.
http://m.terms.naver.com/entry.nhn?cid=43737&categoryId=58189&docId=3347413
매우 농밀한 소설이다. 그런데도 읽는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많은 문인의 존경을 받는 이청준 작가의 소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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