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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로저와 대머리 해적 압둘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
콜린 맥노튼 글.그림, 김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전략) 로저는 점점 흥분되었습니다. "바로 이거야! 먼 바다로 달아나서 해적단에 들어가는거야. 어쩌면 아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른이 되어서 몸집이 커지고, 수염도 많아지고, 칼자국도 생기고, 주머니가 보석으로 불룩해지면, 돌아와서 엄마한테 큰소릴 탕탕 치는 거야. '하하하! 별거 아니군! 받아랏! 이것도!'......"
- 콜린 맥노튼, <즐거운 로저와 대머리 해적 압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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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대상으로 영국의 동화나 영화를 보면, '해적'에 대한 로망이 아주 뿌리깊게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건 많은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바다, 커다랗고 잘 빠진 배, 남자들만의 여행, 어딘가 묻혀 있을 보물, 사나이들의 결투, 의리, 배반, 죽음... (갑자기 또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생각나는군) 생각해보면 나도 어렸을 때부터 해적에 대한 소설을 좋아했지만 ㅡ 이를테면 스티븐슨의 <보물섬> 같은 ㅡ 그건 단순한 재미였고 가슴 두근거리는 모험담 중 하나였을 뿐이지, 해적과 해적생활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이 나의 내면에 뿌리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 '해적'이라는 단어는 유럽권 국가들에 비해 별로 함축하는 바가 없다. (기껏해야 왜구... 정도-_-) 제임스 매튜 배리의 <피터 팬>을 봐도 후크 선장을 비롯 해적이 나오고 심지어 웬디 남매들은 해적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지 않는가. <즐거운 로저와 대머리 해적 압둘>의 작가인 콜린 맥노튼 역시 영국 태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해적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던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주인공 로저는 꽤나 불행한 아이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실종과 함께 가난에 허덕이며 억세진 어머니. 어머니는 자신의 우울함과 짜증을 로저에게 화를 내며 풀곤 했다. 한 번도 웃지 않는 어머니. 그리고 로저도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항상 얼굴을 찌푸리고 있어서 동네 사람들은 반어적인 표현으로 로저에게 "즐거운 로저(Jolly Roger, 해적기라는 뜻도 있음)"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어머니의 잔심부름을 하며 무료하게 살던 어느 날 로저는 압둘의 해적선인 황금 궁둥이 해적선에 타게 되고, 그 곳에서 지저분하고 상스럽기 짝이 없는 ㅡ 그러나 어딘가 모자르고 순진한 ㅡ 해적들과 함꼐 생활한다. 해적들은 나중에 로저의 어머니집에 들어갔다가 오히려 붙잡혀서 노동 착취(?)를 당하고 깨끗하게 씻지 않는다며 구박을 당하기도 한다. 결국 여러가지 해프닝 끝에 졸리 로저는 실종된 아버지를 찾게 되고 (아버지는 바로 해적선의 요리사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실종된 이후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는 이야기.
어린 로저가 자기보다 훨씬 무섭고 덩치 큰 해적 아저씨들을 영리하게 가지고 노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온다. 모전자전이라고, 로저의 어머니는 해적들이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서 심부름꾼으로 썼다는 얘기를 듣고는 분노, 해적들에게 일을 시킨다. 그리고 해적들이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 몸을 깨끗하게 씻기 역시 억지로 시킨다. 로저가 해적들을 만나 겪는 신나는 모험담인 것 같지만, 사실 이 동화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어머니, 그리고 그런 어머니에게 학대 받는 한 어린 아이가 행복을 찾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웃었을 때, 로저는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얼마나 자주 웃어줄까? 로저가 모험을 떠나고 싶었던 건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는 게 즐겁지 않았기 때문인데, 모험을 통해 아버지를 얻고 어머니를 얻고 가정의 행복을 얻었으니 이걸로 족한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의 주인공들은 사실 불행한 아이들이 제법 많다.
출처 : http://blog.naver.com/dionysos83/30106230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