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버지니아 리 버튼 지음, 홍연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치치는 혼자서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젠 이렇게 무거운 객차들을 모두 끌고 다니는 일에 질려 버렸어. 나 혼자서만 달린다면 훨씬 쉽게, 훨씬 빨리 달릴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모두들 멈춰 서서 나를, 그래 맞아, 나만 쳐다볼 거야. 그리고 이렇게들 말하겠지. '멋진 기관차인데! 정말 빠른 기관차다! 참 예쁘고 귀여운 기관차네! 저것 좀 봐, 저 혼자 달라고 있어!' 하고 말이야." 다음 날, 짐 아저씨와 올리 아저씨, 그리고 아치볼드 아저씨는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치치는 선로 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치치는 생각했어요. "그래, 바로 지금이야!" 치치는 혼자서 냅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치이 치 칙칙폭폭! 치이 치 칙칙폭폭!

- 버지니아 리 버튼,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중에서

 

*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들은 확실히 자동차, 기차, 자전거 등 '탈 것'을 좋아한다. 우리 아기는 돌도 되기 전에 미니카에 많은 흥미를 보이더니 자동차를 나타내는 "빵빵"이라는 단어를 엄마, 아빠 다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신기했던 나는 어이구, 이 녀석 나중에 레이서가 되려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모를 일이고... 이 동화의 작가인 버지니아 리 버튼 역시도 '탈 것'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이 그림책을 썼다고 하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론지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잘 생긴 자동차나 기차에 대해 가지는 아이들의 로망은 다를 것이 없나보다. (생각해보면 탈 것이 주인공인 만화가 얼마나 많은지!)

 

1937년에 출판된 이 그림책의 원제는 "Choo Choo"이다. 한국말로 얘기하면 '칙칙폭폭'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칙칙폭폭을 나타내는 의성어가 기관차의 이름으로 쓰였으니 번역할 때 '치치'로 한 것 같다. 그림은 <작은 집 이야기>처럼 부드러우면서 역동적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검은색 콩테로 그려서 그림이 흑백이라는 것이다. 석탄을 먹고 돌아다니는 기관차 이야기와 흑백의 그림은 아주 잘 어울린다. 작고 앙증맞은 기관차 치치는, 자신을 돌봐주는 아저씨들 덕분에 항상 매끄럽게 윤이 난 상태로 사는데, 하루는 객차를 끌지 않고 혼자 돌아다니면 더 멋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서 멋대로 도망을 쳐버린다. 치치의 예상과는 다르게도, 사람들은 혼자 돌아다니는 치치를 보며 도망치기 바쁘고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던 치치는 낯선 곳에서 지친 상태로 외롭게 남겨진다. 그리고 치치가 외로워하며 후회하던 그 순간 짐 아저씨가 그곳까지 치치를 쫓아와서 데려간다. 짐 아저씨와 함께 자신을 데리러 온 열차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뿌우~"하고 기적을 울리는 치치가 어찌나 귀여운지.

 

치치가 구불구불한 선로를 돌아다닐 때에는 그림책의 활자들도 선로처럼 구불구불하게 춤을 춘다. 오랜 기간 동안 아무도 가지 않은 낡은 선로 위를 달리는 치치의 심정은, 기괴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어둡게 그려진 숲 속 덤불과 그믐달만으로도 충분히 표현된다. 커다랗고 굵은 나무와 상대적으로 겁먹은 치치는 얼마나 작게 표현되었는지... 치치의 소리에 놀라 도망치는 토끼와 그 크기가 비슷할 정도. 커다란 열차에 이끌려 치치가 다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모두 환호하고, 치치를 돌봐주던 아저씨 셋이 춤까지 췄다는 장면에서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건 어쩌면 그림책 버전의 '돌아온 탕아' 이야기가 아닐까? 치치가 예쁨받았던 것은 치치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뽐냈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들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린 아이들은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처럼, 예쁨 받고 싶어서, 더 돋보이고 싶어서, 어리석어 보이는 일을 할지도 모르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이가 제 자리를 찾으려고 돌아왔을 때 기쁨의 춤을 추며 반가이 맞아주는 일일 것이다.

 

위에 내가 옮겨적은 본문은 두 페이지에 걸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책 역시도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글자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돌인 아기를 앉혀놓고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흑백의 그림이 마음에 드는지 반응이 꽤나 강렬했다. 특히 치치가 점프해서 도개교를 건너는 장면에서는 '우오오!'하는 소리까지 냈다. 다채로운 색상의 그림책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소박한 흑백 그림책도 아이들에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 http://blog.naver.com/dionysos83/301050109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