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평점 :
30대 중반 여성인 내 입장에서 ‘권남희’라는 분은 작기이기보다는 번역자로 더 알려져있다.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 무레 요코,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번역자에 항상 등장하던 이름. 그 분이 쓰는 에세이가 궁금해졌다. 원본 책을 읽지 않고서는 번역이란 필터로 한번 걸러진 책을 읽는 기분이다. 그래서 때로는 영어나, 일본어, 독일어로 쓰여진 책을 보며 번역자 없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언어에 재주가 없던 나는 번역자가 사실 그대로, 그 작가의 느낌 그대로를 살려서 번역해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런 의미에서였을까. 마스다 미리 작품을 읽으며 작가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번역자가 생각하는 부분 또한 녹아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번역가의 에세는 처음이라 책의 소재는 신선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해서인지 책에서 삽입된 몇몇 내용들은 이미 알고 있고, 익숙한 것들이여서 읽는데 더 흥미로웠다. 그리고 ‘권남희’라는 작가의 인생 또한 살필 수 있었다. 외부 강연이나 특강을 힘들어하지만 집순이처럼 지내면서 살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에서 나와 닮은 부분을 볼 수 있었다. 아이를 키워가는 엄마의 입장으로써 아이를 지켜보는 시선과, 노견과 함께하며 사는 동반자로써의 삶도 살펴볼 수 있었다.
책의 내용도 굉장히 솔직했다. 같이 작업하시던 분들과의 일상이 에피소드가 되어 책에 담긴 게 몇 부분 있다. 이 책을 발간하면 함께 작업하던 분들도 글을 볼텐데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표현이 솔직 담백하다. 그래서 시원하고 보기 좋다. 작가의 서재. 번역가의 서재라고 해서 별 거 없다는 것 또한 기분 좋은 생각을 가져다줬다. 익숙한 공간이 주방 한 켠의 공간, 앞에는 TV가 놓여있고, 옆에 노견이 자고 있고, 딸이 TV를 보고 있는 그 공간이 작업하기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라는 데 뭣 모를 희열을 느꼈다.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번역했는데 그 분의 서재가 이렇게 소탈하다는 것이 인간미가 느껴졌다. 번역 일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본인은 번역 일을 사랑하시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배우 박정민이 쓴 책을 헷갈려서 <쓸데없는 인간> 어디 갔더라? 라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본래 제목은 <쓸만한 인간>이다. 나도 한번씩 제목을 헷갈린 적이 있다. 이렇게 어느 부분은 축소하고 확대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나이 50세에 덕질하는 모습도 좋다. 나도 지금 펭수와 박정민 배우를 덕질하고 있는데 덕질에는 나이가 상관이 없음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도 마스다 미리를 포함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권남희’ 번역자의 이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작품들을 볼때마다 이 이름을 더 찾고, 이 에세이 내용이 생각나서 다시 한번 웃음요인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따. ‘권남희’ 작가님의 글도, 번역도, 인생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