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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류근 지음 / 해냄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책을 처음 읽을 때 하도 ‘시바시바’만 나와서 왜 이렇게 욕을 많이 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류근이라는 사람의 트레이드 마크라는 것을 알고 나도 ‘시바’하면서 욕 한번 걸쭉하게 했다. 왜 이 분의 책을 이제야 접하게 된건지 모르겠다. 글을 풀어내는 방식이 상당히 재미있다. 재미있는 글을 쓰는 분이 아니라 글의 통찰과 혜안이 깊다. 술자리에서 토해내듯 하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작가에게 반가웠던 점은 충북 충주에서 자라났다는 점이다. 하하! 고향 사람 만났다. 그래서 충주에서의 기억들이 나도 이미 알고 있는 곳에 대한 향수여서 놀라웠다. 어떻게 같은 건물을 지나다니고 같은 거리를 걸었음에도 나는 그런 글들을 쓸 수 있는지. 난 왜 그런 글들을 담아내지 못하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저자가 충주의 향수를 이야기해줘서 반갑다.
“얘야,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칭찬과 긍정이 늘어가면 어른이 되고, 비난과 부정이 늘어가면 꼰대가 되는 법이나. 나이가 먹는다고 다 어른 되는 건 아니더라”
나이 먹어서 나잇값을 못하는 애어른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어른이 아니라 꼰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나도 누군가에게 어른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꼰대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절에, 추석 좋은 사람 과연 얼마나 될까. 같이 안 좋아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들 참 많다.”
내게도 명절은 반가운 날이 아니다. 그러나 TV에나 주변에서 고향을 내려간다고 기차표를 서둘러 예매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 가족은 자주 만나는 것보다 가끔 만나서 짧게 만나야 반갑고 더 길어지면 싸움이 나는 집안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명절 때 가족이 다함께 하는 생활을 하지 못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추석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로 받았다.
“엄마:그날 쌀을 사러 나갔는데 반 봉다리도 살 돈이 없었다. 외상도 너무 많아서 더 어떻게 애걸할 면목도 없더구나. 딱 국화 한 송이 살 돈이 있길래 그걸 샀지. 내가 나를 위로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거든.
나도 오늘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국화빵이라도 한 개 살까. 세상에 남겨진 내가 참 서럽다“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면서 국화 한 송이를 산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했는데 그것 밖에 살 돈 밖에 없었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우리집은 내가 어렸을 때 기초생활수급권자였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정부에서 쌀을 준다. 이름하여 정부미. 가끔 라면도 주고, 의료비도 감면해준다. 중학교때 급식도 굶은 청소년들을 위해 도시락이 배달왔다. 나는 수급권자의 혜택을 많이 받고 자랐다. 정말 딱! 굶어 죽지 않을만큼만 정부에서 도와줬다. 쌀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자주 배가 고팠다. 국화빵이라도 한 개 살까라는 작가의 말이 의도된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 묻어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꽃이 지는 시절엔 이래저래 눈물 조심하고 살아야 한다.”
작가는 감수성이 풍부해서 인지 눈물이 많다. 나 또한 감성이 풍만해서 이래저래 꽃이 지는 시절엔 눈물바람 조심해야 한다.
“때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사람이 있다. 살아보니 내가 그렇다”
현재 공황장애를 갖고 아무런 밥벌이를 하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기생하며 사는 나 또한 존재의 이유를 못 찾고 있다. 내 존재가 아버지에게 피해가 되지는 않는지, 내 주변인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는 건 아닌지 생각을 많이 한다. 내 존재에도 이유가 있겠지? 다시 마음을 다진다.
<함부로 사람에 속아주는 버릇>이 책을 읽고 저자의 문체에 반하여 <어떻게든 이별> 시집을 구매했다. 나의 고약한 버릇이 시집을 쓴 시인의 시는 별로 안 좋아하면서, 시인이 쓴 산문집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번이 세 번째다. 함축된 시의 의미를 잘 찾지 못하나보다. 김광석<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써서 더 유명한 시인 류근. 이 책을 마지막 읽어갈때쯤 그의 독특한 유머에 큰 소리내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많은 분들이 이 시인만의 유머코드와 문체에 또 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