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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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처럼 한자리에서 뚝딱 책을 읽어버렸다.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았었는데, 간간이 입소문 따라 찾아 읽게 되는 책들이 참 좋다. 다행이다.
 처음에는 프롤로그를 읽고 당황했다. 사랑을 얘기하는 인용구들을 얼핏 주워들은 것 말고는 책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이런 책일 줄 몰랐다.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재난 소설일 줄이야.
 이 소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한 전 세계적 재앙에 놓인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 싶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진짜 이렇게 되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비현실적인 미래에 현실을 잘 녹여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마스크를 하고 걷고 있음에도 숨 쉬는 것조차 죄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 소설이 어쩌면 비현실적이지 않을 수도, 혹 그다지 먼 미래를 이야기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2. 결국엔 사랑.
 소설의 인물들에게 주어진 재난은 나아질 기미 없이 치국으로 내닫는다. 그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 '도리'와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지나'까지 모두의 삶은 처참하게 짓 밟힌다. 앞서 언급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 말고도 '류'의 가족이나 '건지'와 같은 많은 인물이 나오는데, 이유 없이 찾아온 이 재앙은 모두에게 지금까지 한국에서 쌓아왔던 돈과 자기 관리, 명예, 치열한 삶 그 모든 것이 다 쓸모없던 것임을 말한다. 오히려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버려야 했던 가족과 사랑이야말로 이 상황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정답이라고 말한다.

3. 그럼에도 사랑.
 내 세계관에서는 과연 인간의 사랑이 많은 영화와 같이 특히 이 소설이 말하듯 그렇게 인간을 숭고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랑이 말고는 그 상황을 버티게 하는 건 없는 것 같다. 한 개인이 처한 상황을 바꿀 힘은 없어도 그 상황을 함께 겪는 사람에게 우리라는 이름으로 잠깐의 봄을 선물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4. 아주 오래전, 한 소설을 읽고 그 주인공이 계속 마음에 걸려 책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안부를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다 서서히 다른 책들에 그 자리를 내어주기를 십 년. 이 책 역시도 인물들의 내일이 궁금했는데, 이런. 두 책 모두 같은 작가였다니. 이렇게 등장인물들이 책에 갇히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소설을 읽을 대면, 작가는 단순히 글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만드는 사람인 것 같다. 적어도 내 책장에서는 외롭지 않은 두 권에 책이 나란히 놓여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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