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라 부를 수 있을까
홍재원 지음 / 일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청춘이라 부를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청춘이라면 한번씩 해봤을 법한 질문이다.

대학이란 곳에 대한 설렘과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을 가지며 고등학교를 지내왔고 ,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대학은 기대했던 설렘보다, 또 갈망했던 자유보다

더욱 더 무거운 책임감이 존재하는 곳이란 걸 느껴버리곤 다시 교복이 그리워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 사람들에게도 너희는 청춘이니? 라고 묻는다면 ,

과연 다들 응. 이라고 크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청춘이기에 사랑도하고 청춘이기에 사회와 싸워보려 하는 

그런 서울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어렸을 때 서울대 근처에 살아서 그런지 서울대하면 나에게 친근한 느낌이 든다.

 항상 ㄱ,ㅅ,ㄷ을 상징화한 교문을 지나 어디론가 갔었고

또 그 앞 주차장에 있는 버스를 개조해 만든 분식집의 우동을 자주 먹으러 갔었다.

그 땐 서울대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아니 그 이상의 학교인 줄 생각도 못했다.

그저 초등학교처럼 우리 동네 사람들이 다니는 학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사를 와보니 다들 내가 살던 그곳,

아니 그곳에 있었던 학교 바로 서울대만을 바라보며 공부한다는 것을 점차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는 어차피 서울대 갈 학생이 아니기에

일찍이 서울대의 관심을 껐던 수험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서울대생들의 이야기를 듣는게

다른 대학생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 아닌 마치 다른 세상 속 사람들 같이 들린다.

마치 소설에만 있는 그런 학교처럼,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도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서울대생은 무언가 다르다.

그런데 이 책 또한 그런 마음으로 다가왔다.

역시 , 서울대생은 무언가 달라

그런데 문득 책을 읽다보니 단순히 서울대생이 아니라 시대적인 영향이 더 컸기 때문일까?

그래서 다르게 느껴진 것일까? 하는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내가 들었던, 또 내가 원하던 대학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를 생각하고 변화하려는 ,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길 원하는

그런 사회를 위해 투쟁하는 학생들이었다.

 

학생운동은 근현대사 책에서나 봐왔던 얘기였다.

가끔 문학자료로나 사용되던 소설에나 있던 얘기였다.

그런데 그런 사회를 지금에와서 접하니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듯했다.

과연 이들을 청춘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 질문들을 그들이 아닌 내게 자꾸 해가면서 읽게 되었다.

이들은 청춘이라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그럼 난? 난 청춘이라 부를 수 있나?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하며 읽는 가운데 어느새 내가 아닌 사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자살하고, 기사화되지 않았을 뿐 서울대생들도 자살했다고 한다.

고등학생들도 등급하나에 자살을하는 이 사회는 대학은 곧 모든것이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잔소리, 친구들과의 등급다툼, 선생님들의 간섭 , 통금시간 그런것들이 모두 끝나는 곳.

하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 본 대학은 독립의 시작이며 자신이 몸담을 사회를 꾸준히 생각하기를 시작하는 곳.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며 더 옳은 사회로의 발전을 꿈꾸기 시작하는 곳이었다.

이들은 더 배우고 더 싸우길 원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 배우려하지 않은 채 목소리만 높여갔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배움과 그 실천을 알려준 이들에게

난 마자막 책장을 덮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청춘이었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