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도시
은기에 지음 / B&P Art&Culture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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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이곳이 바로 녹색도시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제목이 녹색도시인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제목이 녹색도시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피를 흘리거나 치명상을 입으면 서서히 식물화된다. 사람이 식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완전히 식물이 되어버리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녹색도시>에 나오는 사람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서로 힘을 합치거나 독립적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식물을 죽여 식물이 뱉는 과일로 생명을 연장하기도 한다. 이 책은 '정태우'라는 사람의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는 이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다.

생존을 위해 태우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식물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이 책을 나 자신의 해석으로 정리해보았다.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들의 힘'. '인간은 살기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라는 큰 주제로 정리할 수 있었다.

[ 인간은 살기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 ]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선 순간,

순응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순응이란 포기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바가 여기서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익숙해져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 식물은 물론 사람도 죽인다. 그들은 순응한 것이다. 자신들의 생활에.

그리고 그 순응은 포기가 아닌 생존을 위한 방법일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비도덕적인 '인간 사육 농장'을 만드는 행위를 보인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어떤 짓도 하는 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 자신도 그곳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더군다나 내 가족이 그렇게 변한다면?

나는 이 책에 등장한 정태우처럼 그들을 죽일 수 있을까? 또는 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이 책에서 정태우는 여러 사람들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정의로움, 때로는 부정의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람이다.

나는 그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두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선과 악이 공존한다. 그러나 선을 선택할지 악을 선택할지는 본인이 정하는 것이다. 나는 정태우라는 인물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정태우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태우라는 인물은 이 책에 등장하는 '보스'라는 인물과는 달리 정의로운 사람이다.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하면서도 남을 위할 줄 안다. 하지만 그 역시 어떤 상황에서는 비도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들의 힘 ]

그렇소. 공동의 위험을 향해, 공공의 적을 향해, 마음을 모은 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지요.

우리의 모습이 이렇게 흉측해졌다고 하나, 우리는 분명 이성을 잃지 않은 존재요.

우리가 힘을 합쳐봤자 결국 식물로 변해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소.

그렇다 해도, 우리는 끝까지 살아야 하오.

죽을 때 어쩔 수 없이 죽더라도.

<녹색도시> - 14화 '마지막 준비' 중

이 말이 녹색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꿋꿋히 자신의 생각과 믿음대로 살아간다. 이 모습은 꼭 녹색도시가 아니어도 우리의 삶 속에서 보이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 오든 우리는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식물 또한 마찬가지다. 식물, 식물화 되는 인간, 인간. 모두 각자의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생존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일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니까.

각자가 살기 위해서만 노력했었던 사람들이 공공의 적을 위해 맞서 싸우려는 모습을 보고 나는 우리의 삶 속에 꼭 필요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이라는 하나의 적에게 여러 인간들이 모여 싸우려는 모습, 분명 식물들에게 대항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녹색도시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를 믿고 식물에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스포가 될 수 있기에 말하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은 더 이상 '나'가 아니다. '우리'가 된 것이다.

정태우라는 인물의 행적을 보면서 나는 여러 생각을 해보았다.

정태우는 처음에는 혼자 살아간다. 그러다 한 무리에 들어가게 되고 그 무리에서 벌어지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맞서 싸운다.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되고, 다른 무리에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된다.

그는 혼자였다가 함께였다가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분명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세상은 모두가 함께 살고 있다.

식물에게 대항하는 힘, 분명 우리 각자가 아닌 모두라는 이름에서 나오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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