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아홉
흘러가는 달빛의 뒤꿈치에 부딪쳤는데도 멍이 든다
스카프처럼 목덜미에 차르르 감기는 바람에도 멍이 든다
멍 때리며 걷다가 튀어 오른 흙무더기에도 걸려 멍이 든다
내가 몇 살이지? 내게 물어보았을 뿐인데 멍이 든다
너 뭐 하는 인간이냐? 누가 다그치지 않았는데도 멍이 든다
내가 나 같지 않아 멍이 든다 확인해 보려고
손가락으로 쿡쿡 눌러 보는 자리마다 멍멍하다
이미 나를 다 써 버린,
먹통인 내가 녹슬어 간다.
구멍 뚫린 자물통처럼 맹 하게 녹슬어 간다 - P33
내리막길
앞만 보고 올랐던 길
내려올 땐 다리가 꼬여
뒷걸음으로 내려온다
두서없이 밀어 넣어
구겨지고 접힌,
더러는 끊어지기도 한 길들이
후들후들 풀어지는 걸 바라보며
거꾸로 걷는 내리막길
호흡에 걸려
박자 놓치고 바닥 놓치고
까딱, 낭떠러지처럼 무너질까
반걸음씩, 반걸음씩, 걸음을 맞붙이고 걷는
지천명,
몸과 마음이 서로 부축해 주느라
서로를 향해 잔뜩 기울었다
- P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