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나 불평 없기를
ㅡ프롤로그



나에게는 병이 없습니다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병이 있습니다 쓴다 이것이 나의 병입니다

쓰다 만 시 살다 만 사람 먹다 만 밥 울다 만 울음 돌려주지 못한 나의 병이 있습니다

틈으로 바람 불고 틈으로 자동차 달리고 틈으로 풀이 돋고 틈으로 꽃이 지고 틈으로 가던 길이 오는 길이 되는 나의 병이 밤처럼 깊어 갑니다

갈증이었습니다 봄은 활짝 열린 여름도 비슷하였습니다 가을은 어중간히 걸쳐 입은 반코트처럼 한쪽으로만 흘러내립니다
몸이 살기 위하여 숱한 이사를 감내하던 늙은 노동자의 손바닥을 말없이 쓰다듬어 줍니다 고맙다 한 번도 소리 내어 인사한 적 없는 나의 병 있는 곳을 벼락처럼 깨닫습니다 - P11

일요일과 화요일 사이에
눈이 내렸다 첫눈이라고도 했다
월요일이라고도 했다
바람에 실렸다고 풍설이라고도 했다
보이는 것마다 희끗희끗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서울로 가야 하는데 모든
‘첫‘에는 거품이 섞여 있었다
모든 미끄러움의 시작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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