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본 것, 들은 것, 겪은 것은 시간과 함께 휘발하며 잔여물을 발생시킨다. 우리 모두가 잘 알듯, 이미지와 이야기는 눈과 귀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호흡, 소화, 심장박동, 관절과 근육의 반응 동작 등 몸 전체의생리에 영향을 미친다. 즉시, 또는 사후적으로 시청각과 무관한 기관들이 비정상적으로 민활해지거나 걱정스럽게 아둔해진다. 이미지와 이야기에서 촉발된 감각에 감정과 사고와 욕망이 뒤엉킨 잔여물을 우리는 기억이라 이름 지었다. - P28

너의 솔방울, 나의 단풍잎, 나의 문갑 속 너의 찻잎,
네 뜨락의 라일락, 나의 시향지, 박새가 떠나간 너의 새둥지, 네 식탁에 올려둔 나의 방울무, 눈을 비비면 너의뺨 위에 너의 눈썹, 너의 필통 속 나의꿩 꽁지깃, 너의눈사람, 나의 입김, 내 망막에 서린 네 창의성에, 네 주머니 속 나의 열쇠, 행갈이가 잘못된 시어, 옛날의 낙서에서 오려 이 글에 붙인 문단, 내 유리병 속 너의 하얀 산호, 너의 음반에 나의 지문, 너의 문장 옆 나의 별.

지우지 않기 부끄러워하지 않기. - P48

책인데 체 같은 책도 있다. 책에 최종의 말들을 인쇄하기 전에 무수한 초고, 다시 쓴 말, 고친 말, 지운 말,
덧붙인 말, 덧입힌 말들이 생겨난다. 이 책을 읽으면 그말들이 고운 체에서처럼 하얗게 떨어져 쌓인다. 그리고이 책은 바로 이렇게 최종의 말들 이전의 말들을 체로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 P88

집의 책들을 다 처분할까 고민하는 찰나 그것들은각각 자개빛 물고기 비늘로 변한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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