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들.
세상의 표면을 뒤덮고 있는 수억만 개의 얼굴들.
아마도 제각기 천차만별이겠지.
이미 존재했던 것들,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것들도 하지만 자연은-자연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만-끊임없는 노역에 지친 나머지
해묵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재활용해서
과거에 이미 사용했던 얼굴들을
우리에게 다시 덮어씌웠을지도 모른다. - P16

우리 사이엔 다른 점이 너무나 많다.
단지 두개골과 안와(眼窩)
그리고 뼈들만 동일할 뿐. - P23

바람에 실려 온 먼지 조각은 그들 앞에선
깊은 우주 공간에서 날아온 별똥별,
손가락의 지문은 광활한 미로,
그곳에서 그들은 집결한다.
자신들만의 무언(無言)의 퍼레이드와
눈먼 일리아드, 그리고 우파니샤드를 위해. - P32

그는 좀처럼 대화에 동참하지 않는다.
대신 쭈글쭈글해진 봉투에서 꺼낸 편지를 읽고 있는 중.
아마도 그 편지는 여러 번 읽은 듯하다.
편지지 귀퉁이가 이미 닳아서 해져 있는 걸 보면.
그러다 편지지 틈에서 말린 제비꽃잎 하나가 떨어졌을 때
아, 이런!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탄식하며
그것을 붙잡으려 허공으로 손을 내밀었다. - P56

어쨌든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
내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므로
_미완성 육필 원고부분 (147쪽)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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