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까지는 이집트 문명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고 간주되었다. 그러나 현재 이집트 학자들은 그에 앞서 수메르 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고학자들이 수메르 유적을 처음 발견한 것은1920년대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집트의 역사는 메네스 왕이 상(上)이집트와 하(下)이집트를 통일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기원전 3000년과 기원전 2850년 사이에 일어났다고 추정되는데, 이 무렵에 수메르는 이미 수세기에 걸친 도시문화의 역사를 축적한 상태였다. - P83

실현되었던 것이다. 이는 이집트인이 수메르인의 경험을 이용할 수 있는유리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인은 수메르 모델을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집트의실정에 맞게 모든 것을 뜯어고쳤다. 이 점은 상형문자로 알려진 초기 이집트의 문자와 수메르의 설형문자를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이집트인은 글자를 쓸 때 수메르인과는 다른 종류의 재료를 이용했을 뿐 아니라 상이한 음설기호들을 사용했다. 그 결과 문자의 실질적인 형태는 전혀 유사하지 않았다. 유일한 연관성이 있다면, 그것은 추상적인 말을 음절의 요소로 분해하여 소리를 기록한다는 발상이다. 마찬가지로 이집트의 미술도 수메르의 모델과는 별개의 것이다. 두 미술이 공유한 것은 규모가 크고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계산된 건축과 조각을 지향하는 관념 정도이다. 이처럼 이집트의 고급문화는 모든 면에서 독자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었다.
이집트와 수메르의 사회구조는 현저히 달랐는데, 아마도 이로 인해 초기의 이집트 문명이 완성도는 높았으나 그 기반이 취약했던 것 같다. 이집트에서는 모든 것이 왕이자 신인 존재. 즉 파라오의 궁정에 집중되어있었다. 수메르인은 신들이 욕구·성격·행동 면에서 인간과 유사한 특징을 가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여겼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집트인은 자신들의 왕을 신이라고 단정했다. 불멸의 존재인 왕은 다른 인간에게 영혼의 불멸을 부여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이것이 바로 파라오에게 복종하는 강력한 이유였다. 자비로운 신왕(神)은 현세에서 자신에게 봉사한 신하들에게 신이 가진 불사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영원한 충복으로 삼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반면에파라오에 대한 도전은 내세의 모든 희망을 날려버리는 무모한 행동으로간주되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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